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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2.05.06본문
희생과 사랑
1986년 10월 4일 새벽예배 말씀 발췌
“누가 주의 뜻을 알아서 가르치리요, 주의 마음을 품은 자가 아니면 누가 주의 뜻을 알겠으리요? 가르쳐 주는 자가 없이 어떻게 믿으며, 믿지 않으면 어떻게 구원을 받겠느뇨?” (롬10:14-15) 일찍이 바울이 한 말입니다.
성직이라는 것은 대우받는 게 아닙니다. 희생을 하는 겁니다. 희생이라는 것은 정신적인 걸 뜻합니다. 희생이라는 건 대가를 바라는 게 아닙니다. “내가 이렇게 했으니 나중에 이걸 이렇게 해 줘야 좋아한다.” 그게 아닙니다.
주님을 위해서 충성한다는 건, 주님이 나한테 갚아 주시길 기다려야지, 상대가 나한테 해주길 바랄 때는 주님의 일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받을 것을 그 사람을 통해 다 받은 다음에, 또 주님 앞에 가서 받을 게 뭐가 있겠습니까?
주님을 위해서 했으면 주님이 상 주실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B라는 사람한테 잘 했으니까, B라는 사람이 자기한테 잘해 주지 않으면 야속하게 여긴다는 건, 주를 위해서 한 게 아닙니다. 그건 그 사람을 보고 한 겁니다.
여러분이 왜 주님을 위해서 충성한 다음, 주의 종이 여러분들을 따뜻하게 대해 주고 안 대해주는 문제로 섭섭함을 갖느냐 하면, 여러분들 자신이 그 대가 자체를 현실에서 받으려고 하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그게 참 어려운 얘기입니다. 보통 힘든 게 아닙니다.
사실상 자기가 잘 한 것 같은데 상대가 자기를 알아주지 않을 땐, 그것처럼 섭섭한 게 없습니다. 그러나 그걸 이길 줄 알아야 합니다.
“아, 이게 아니다. 내가 눈에 보이는 것을 위해서 한 게 아니다. 앞으로 내가 주님 앞에 칭찬 받고 주님 앞에 상 받고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를 물 한 그릇이라도 대접하며 따뜻하게 대한 거지, 당사자한테 받고자 한 게 아니다.” 하는 기본 의식구조가 만들어져 있으면 절대 신앙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저도 여러분들과 똑같은 길을 걸은 사람입니다. 다 겪은 사람인데 내가 왜 그걸 모릅니까? 저도 다 겪어본 사람인데.
그러니까 사랑이라는 것의 진실성은 신앙 안에서 만들어집니다. 절대 주를 의지하는 뜨거운 마음 없이는 인간의 힘으로 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고, “주님이 어떠한 고통을 겪어서 어떠한 광경 속에서 이기셨는가?” 이걸 목표로 거기에 타깃을 두고, 자기도 거기에 준해서 신앙생활을 해야겠다는 심정으로 일을 해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평상시에 움직일 때, 여러분들 머리 위에 높으신 주님이 항상 계시다, 주님의 역사 안에 몸을 담고 있는 나로서 말 한 마디가 주님의 역사에 얼마만큼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의식 구조로 느끼면서 생활한다면 하나님의 역사 안에서 막말은 못할 겁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그걸 잊어버리고 생활하고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생활하다 보니, 본인도 모르게 범죄하고, 지나고 나면 후회하고 말로 범죄하고. 사람과 사람끼리 범죄한 것도 아니고 주의 역사를 가로막는 범죄가 되게 되고. 이러한 문제가 나옵니다.
아무리 상대가 천하에 나쁜 짓을 했다 할지라도, 확인해서 알아보기 전엔 논하면 안 되는 겁니다. 남의 말을 하기가 그렇게 힘든 겁니다. 결정 내리기가.
내가 논할 문제가 아닙니다. 감히 내가 논하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말 한 마디라도 주님의 귀를 거슬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으니까 논하지 않는 겁니다. 자기 위에 어떤 독특한 인물을 섬긴다는 자세가 있을 때, 그런 행동이 가능한 겁니다.
왜 고생을 하고 수고를 하고서 그 수고한 일에 대해서 자기가 자기의 공로를 헐어 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합니까? 그것처럼 어리석은 게 어디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