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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0.07.04본문
‘나’를 버리라.
에덴의메아리 7권 chapter 9 발췌
기독교는 수도(修道)의 종교가 아닙니다. 굳이 수도라는 말을 갖다 붙이자면 바울처럼 날마다 죽고 사는 작업이라고나 할까요.
그러나 이것은 세상에서 말하는 수도와는 판이합니다. 세상의 수도는 나를 가꾸고 살리는 것이지만, 기독교의 그것은 나를 버리고 죽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독교는 학문적인 종교가 아닙니다. 아무리 신학 체계가 잡혀 있고 성경을 좔좔 외워도 자기가 빳빳이 살아 있는 사람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자기가 유식함을 내세우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신앙의 초보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믿음은 주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주 안에 있고, 주가 내 안에 계시는’ 경지가 그것입니다. 이렇게 되려면 ‘자기’가 살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자기를 죽였을 때 비로소 자기가 영으로 화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성령의 조화입니다. 즉 텅 빈 자기 속에 성령이 들어와 심사와 언행을 주관할 때 자기는 반신반인으로 화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주와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2:20) 하는 경지가 그것입니다.
여기 이르기 위해서는 우선 ‘나’를 앞세워서는 안 됩니다. '내가 잘했다. 내가 열심이다. 내가 똑똑하다. 내가 유식하다. 내가 장로다. 회장이다.' 하는 이 모든 자의식은 주의 십자가 앞에 모조리 내동댕이쳐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자기를 아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죄의식이 앞서게 마련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새까만 죄 덩어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죄인으로서의 겸허한 태도가 인간 본연의 자세입니다.
주님도 땅에 계실 때에는 언제나 당신을 낮추고 하나님을 앞세웠습니다. 하물며 우리 인간이야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일 주께서 자기를 의식했더라면 십자가를 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마26: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