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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2.01.17본문
선한 싸움
계시록강해 22~27쪽,
1993년 9월 5일 낮예배 말씀 발췌
인류의 역사는, 아담, 하와의 범죄로 말미암아 잃어버렸던, 옛 에덴동산을 되찾기 위해, 하나님과 마귀가 싸우는 과정입니다.(행3:21)
크고 작은 세상 싸움에도 일정한 ‘룰’(규례)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과 마귀의 싸움에도 피차에 범할 수 없는 룰이 정해져 있습니다. 예컨대, 인간의 죄는 주의 보혈이 아니고서는 씻을 수 없다는 점도 정해진 룰 중 하나입니다.
우리가 특히 유의해야 할 것은, 하나님과 마귀의 싸움은 세 차례에 걸쳐 일어나며, 여기에 인간이 개입된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과 마귀가 인간의 육체를 중간에 놓고 싸우는 구약 시대의 첫째 싸움과 하나님과 마귀가 인간의 혼을 두고 싸우는 신약 시대의 둘째 싸움, 그리고 하나님의 영과 마귀의 영이 직접 겨루는 마지막 셋째 싸움. 이렇게 세 차례의 싸움이 일어나며 현재 우리는 둘째 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삼은 후, 마귀의 손에 들어간 땅을 회복하고 영광을 받으시고자, 인간의 육신을 통하여 마귀와 싸우셨습니다. 이 경우에 이스라엘 민족을 등 뒤에서 밀어주신 것은 여호와요, 이방인을 도와준 것은 마귀였습니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 들어오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주께서 십자가에서 산 제물이 되시고 부활 승천하여 ‘다른 보혜사 성령’을 보내 역사하시게 되므로, 하나님과 마귀도 인간의 육체를 가운데 놓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혼을 가운데 두고 싸우게 됩니다.
하나님과 마귀 사이에 인간의 혼이 개재하므로, 인간은 자유의지(自由意志)에 따라 스스로 여호와의 편에 설 수도 있고 마귀의 편에 설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믿음이 반석 위에 서기까지는 마음에 번민이 그치지 않습니다.
바울이 자기 자신을 가리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롬7:24)라고 탄식한 것은 이런 영적인 투쟁 과정에서 승리와 패배가 한결같지 않은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 싸움은 구약 시대처럼 할례를 받지 못한 이방인을 육적으로 무찌르는 싸움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마귀를 대적하는 싸움(약4:7)이요, 바울이 말한 ‘선한 싸움’(딤후4:7)입니다.
지금 여러분을 사로잡으려는 마귀 세력은, 여러분이 한 명이라면 100명, 1000명의 힘을 가지고 여러분들을 말아먹으려고 합니다. 그 100명분의 지배를, 여러분 한 명의 힘을 가지고 몸부림친다고 벗어나느냐? 못 벗어납니다.
이때는 그 100명분의 힘 못지않은 힘이 여러분에게 와서, 싸워 몰아내 줘야, 그때 비로소 마귀 세력이 물러나가는 겁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필요로 하시는 무기와 같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뜻을 도와달라고, 그 도와주는 조건을 만들어 달라고, 하늘에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겁니다.
그럼 이러한 은혜 받으면 누구를 상대로 해야 됩니까? 마귀를 상대로 해야 합니다. 마귀가 불리해지는 조건을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우리가 충성을 해야 되는 겁니다.
그러니 얼마나 힘듭니까? 이 세상을 어둠이 주장하고 있는데. 자기에게 도전하는 것들이 와서 움직일 때 그걸 마귀가 가만히 보고 있겠습니까? 엄청나게 괴롭힙니다.
그 괴롭히는 중에도, 성령이 보호하시면서, 이끌어 주시면서, 싸우게끔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의의 면류관을 쓰라.” (딤후4:7-8)는 말이 있는 겁니다. 싸움이라는 거. 영적인 싸움이라는 거. 이 점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