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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2.03.18본문
주의 고난에 동참하라.
에덴의메아리 7권 chapter 9, 13 발췌
예수를 믿는 것은 쉽고도 어렵고, 어렵고도 쉽습니다. 자기가 살아 있으면 어렵고, 자기를 죽이면 쉬운 것입니다. ‘자기를 죽이다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릴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요6:63)는 말씀 그대로, 육은 흙으로 돌아가고 영이 사는 것입니다. 나를 죽이라는 ‘나’는 이 흙으로 돌아갈 나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나의 육체는 물론이고, 나의 자랑, 나의 영광, 나의 인격까지도 주 앞에서 버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사도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고 말했습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좇아 십자가를 놓치고 사랑을 저버리면 영적으로 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 일신의 괴로움을 그대로 받아들여 주의 고난에 동참하려고 하지 않으면 입에서 원망과 한탄이 새어나오게 됩니다. 이것을 이기지 못하면 하늘 군병이 될 자격이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이런 어려운 고비를 감당해낼 수 있을까요? 그 비결은 주의 힘을 빌리는 것입니다. 흔히 이런 경우에 자기 힘으로 버티려고 하기 때문에 실패하게 됩니다.
주의 힘을 빌리는 방법은 기도와 찬송으로 문제 해결을 주께 맡기고 자기는 하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주님, 저는 지금 이러저러한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제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으니 이길 수 있는 능력과 용기를 주옵소서!” 하고 주께 의지하고, 여기에 해당되는 찬송을 부르십시오.
이와 같이 나는 뒤로 물러서고 주를 앞세우는 것은 물론 어떤 역경에 처하여 고난을 당했을 때만이 아닙니다. 이것은 언제 어느 때나 믿는 자로서 마땅히 취해야 할 근본 태도입니다.
그리하여 자기 자신에게 닥쳐오는 시험을 하나하나 이겨 나갈 때 마귀는 차츰 범접을 못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고 번번이 쓰러지면 마귀는 그 허점을 노려 언제나 침범하는 것입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마27:46)(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것은 주님의 마지막 신음소리였습니다. 주님은 뼈가 부서지는 고통 속에서 저절로 “어찌하여 이렇게까지 고통을 당해야 합니까?” 하는 하소연이 흘러 나왔던 것입니다.
여기 ‘버리셨나이까’라는 말씀을 놓고 논란이 많지만, 이것은 결코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주님을 버리며, 따라서 주님이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요컨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는 육을 입은 주님의 인간적인 절규였으며, 주님에 대한 예언을 담은 시편22편을 읊은 것입니다.(시22:1)
우리는 주께서 당하신 이 십자가의 고통을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낙심하거나 불평하는 것은 주의 고통을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아무리 큰 고난이 닥치더라도 그것은 주의 십자가의 고난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 발의 핍니다.
그러니 주의 뒤를 따르려는 우리에게 못 참을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주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않다.”(마10:38)
여러분은 주의 고난에 동참하여 십자가를 지고 계십니까? 만일 자기 몫의 십자가를 지고 있지 않다면 아직 이 역사에 손님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