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뜻을 같이 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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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1.06.09
[진실] 뜻을 같이 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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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을 같이 하는 자

 

198789일 예배말씀 발췌

 

 여러분들의 사상과 개성을 주의 종이 가르치는 데 응하지 않고 자신의 이미지만을 앞세워서 나갈 때, 주의 종이 최고 어려움을 느낍니다. 그걸 제일 힘들어하는 거예요.

 

 베드로는 율법주의자였습니다. “선지성인들이 다 세를 냈는데 주님도 내셔야 할 것 아닙니까?” 하자면 주님의 존재는 실질적으로 선지자와 달라요, 똑같아요? 베드로가 볼 때 똑같은 겁니다. 말로만 메시아니, 독생자니 했지 사상은 그렇지 않았다 이겁니다.

 

 ‘이긴자다, 이긴자의 역사다.’ 해서 여기에 몸 담아가지고 무릎을 꿇었다 할지라도 꿇었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그 다음에는 사상이 문제다 이겁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보는 시야가 차이가 있는 것처럼, 믿음이라는 건 이게 차이가 있는 겁니다.

 

 성경 66권에 나오는 깊은 진리의 말씀을 여러분들한테 물 쏟듯이 쏟아놔도 핵심적인 게 안 되면 다 그림의 떡이에요. 소용이 없다 이겁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나사렛 예수가 사랑하는 제자들을 3년간 이끌고 직접 동거동락하며 같이 다니셨다 할지라도 그들의 사상을 고칠 수가 없었습니다. 사상은 정신적인 문제예요. 육체적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사상은 신념입니다. 그야말로 철학이고 자연입니다. 그건 인위적으로 안 된다 이겁니다. 그것을 될 수 있게 만들어 놓는 것이 바로 다른 보혜사 성령인 겁니다.

 

 그러면 깊이 들어가서, 다른 보혜사 성령이 왔다 할지라도 다른 보혜사 성령은 사상을 같게 만들기 위해서 오는데, 사상이 같아지지 않았다면 성령은 헛수고로 돌아갑니다. 그 성령은 그 사람을 상대로 해서 실패한 겁니다.

 

 그 성령이 와서 실질적인 감동을 받았다 하는 경우에는 사람의 마음이라든가 생각이라든가 움직임은 실질적으로 사상관념이 거기에 적응해 나가는 사상으로 변해야 됩니다. 또 거기에 적응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 된다 이겁니다.

 

 그 노력하는 자체를 뜻에 순응한다고 볼 수 있는 거예요.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갈 것이 아니라 하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간다.”(7:21)

 

 뜻이 있는 곳에는 무엇이 있다? 길이 있는 겁니다. 반드시 뜻이 있으면 장애물이 있다 할지라도 길이 만들어집니다. 이러한 신앙의 장성한 의식 구조를 우리가 배워야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께 당장 훌륭해지라는 말, 하지 않습니다. 허나 우리가 그렇게 되고자 노력은 해야 된다 이겁니다.

 

 눈물 흘려야 된다 이거예요. 발버둥 쳐야 된다, 가슴을 쳐야 된다 이겁니다.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써야 된다 이거예요.

 

 우리 역사 안에서 신앙적인 독특한 기질이 있어서 열심히 하나님의 역사에 충성하고 변치 않고 하는 사람들은 말할 수 없이 고맙고.

 

 또 그 이상 고마운 사람은, 너무나도 어렵고 낙심할 수 있는 여건과 시련이 많았는데도. 그 낙심 속에서 그래도 견뎌내서 주의 일에 그래도 다시 새 용기를 가지고 충성하는 사람들을 볼 때에. 저는 그걸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