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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1.08.30본문
옥토가 되기까지
1984년 4월 1일 낮예배 말씀 발췌
우리는 평상시 말씀을 들어서 “체계를 세운다.” 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에 필요한 주님의 안타까운 심령을 각각 그 마음속에 심어주는 시대이기에.
뇌리 속에 심어져 내려오는, 조상 대대로 핏속에 섞여 내려오는, 그 사상 관념이 밀려 나가고 새로운 주의 것이 담겨지는 이 일에는 전쟁보다도 더 치열한 투쟁이 필요한 겁니다.
인간이 자기의 타고난 개성을 고친다는 건 죽기보다도 힘든 일입니다. 변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노력이나 성실한 태도도 귀하지만, 그보다 더 귀한 것은 위로부터 오는 은혜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세상을 이길 자가 누구냐? 성령과 물과 피로 거듭난 자가 아니냐?”(요3:5) 했습니다.
이렇게 거듭나려면, 거듭나기 전에 갖추어야 될 인간의 심리가 있다 이겁니다. “어떠한 자세 속에서 위의 것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가?” 이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이 만들어지지 않고 그러한 기초가 마음속에 터전을 잡지 못하면, 20년을 믿어도 자기 개성 자체로서의 예수를 섬기는 것일 뿐. 주의 것을 받아서 주를 섬기는 자세는 만들어질 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타고난 고집과 아집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자기의 모든 것을 백지화시키고 주의 것을 자기의 것으로 심는 작업이란, 자기의 노력과 하늘에서 주시는 은총이 결부되어서, 하늘과 지상의 움직임이 하나로 이루어지는 상태에서야 비로소 결실이 맺어질 수 있습니다.
주님은 “던지는 말씀을 씨앗이다. 그 말씀을 받는 인간들을 밭이다.” 하시며, 비유를 드셨습니다.(마13:3-8)
우리 주님의 씨앗이 옥토에 떨어져야만, 삼십 배, 육십 배 혹은 백 배로 결실을 맺는 고로. 옥토가 되질 않으면 씨앗이 떨어져도 제대로 결실을 얻지 못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겁니다.
그렇다면 결실을 맺기 위해 우리 마음의 밭을 옥토로 만드는 것이 시급한데. 그 어느 누구도 마음을 처음부터 옥토로 만들 수는 없다 이겁니다. 왜 그런가?
인간은 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죄악에서 나서 죄악에서 죽게 되어있는 고로.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어머니 모태에서 태어날 때부터 죄악을 지니고 있는 인간이기에.
죄악이라는 자체의 관념이, 다시 말해서, 보고 느끼는 세상의 사상과 이념이 뇌리 속을 지배하는 것이 인간의 속성입니다. 그러면 부모로부터 가지고 나온 이런 모든 것이 실질적으로 사라질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
바로 “하늘에서 주시는 씨앗, 복음의 씨앗, 말씀의 씨앗, 성령의 씨앗이 나에게 어떻게 적용이 되느냐?”에 따라, 내 속에 있는 것이 뽑혀나갈 수도 있고 그대로 있을 수도 있는 겁니다.
죄악에서 태어나 죄악에서 죽는 인간의 그 죄악을 없애버리고, 다시 태어나게 하는 그러한 작업이, 바로 위로부터 오는 씨앗과 나 자신과의 연결 속에서 새로이 창조되는 거예요. 그것을 가리켜서 새로 지으심(거듭남)을 받는다고 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의 감동을 입은 가운데, 자기에게 어떠한 괴로움과 어떠한 어려움이 오더라도 끝까지 변치 않고. 주위가 어떻게 변하고 달라져도, 나에게 어떠한 슬픔이 와도 나에게 어떠한 억울함이 오더라도, 말 한마디 없이 참고.
하나님의 역사를 위하는 자세로, 역사의 티끌만한 거 하나 건드리지 않고, 자기 자신을 희생시켜가며 상처투성이가 되더라도 주의 역사에 지장이 없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침묵하며 경건한 자세로 끝까지 충성하고 변치 않는 자를 가리켜. “옥토다.” 인정을 해버립니다.
그것은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에요. 앞으로 이 역사를 마무리 짓는 시점에서 점수를 매길 적에, 이런 식으로 매긴다 이겁니다.
마른 땅에 샘물이 터져서 사막에 물이 흐르는 것처럼. 여러분들 메마른 심령들이 촉촉하게 젖어져서 움터나는 꽃봉오리처럼 여러분들 마음도 아름답게 움터나서. 새 사람이 되고 착한 사람이 되고 진실한 사람이 되어주시기를, 저는 바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