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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1.06.07본문
사랑
1978년 3월 5일 예배말씀 발췌
“너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이웃을 인하여 죄를 당치 않도록 그를 반드시 책선하라.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레19:17-18)
이 말씀은 하나님이 아무에게나 주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백성이요, 은혜를 받은, 하나님의 귀중성을 아는, 믿는 형제들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이방인들은 이 말씀에 해당치 않습니다.
그럼 무엇 때문에 여호와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가? 왜 이것을 지키라고 강조하시는가? 이것을 우리는 알아야겠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 하려면, 인간이 하나님께로 가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로 오셔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을 적에, 내가 하늘로 올라가는 게 아니라,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신이 내 속에 들어오도록 해야 합니다.
그 마음속에 형제를 미워하는 순간. 겉으로가 아닙니다. 표 나는 게 아닙니다. 쥐도 새도 몰라도 형제를 미워하는 순간에 여호와의 신은 떠납니다. 틀림없습니다. 같이 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역사에서 미움이 싹트기 시작하고 원망과 불평이 생기면, 그 역사에서 하나님이 떠나시는 것입니다. 같이 하시지 않습니다. 그런 것이 손톱만큼이라도 있는 곳은 여호와께서 원치 않으십니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마라. 너희가 참고 견뎌도 한 번 두 번이 아니라, 끝까지, 죽는 순간까지 참아라. 끝까지 참아라.”(살후3:13, 살전5:14)
왜 주님께서 모욕을 당하면서 끝까지 자기를 죽이는 원수들을 위하여 축복기도를 하셨는지 알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지지 않기 위하여.
거기에 저주를 내리면 지는 것입니다. 참고 견디고 또 견뎌야 합니다. 그 일이 누구의 것이냐면 여호와의 것인 고로. 하나님이 하라 하신 고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날이면, 실패가 됩니다. 그래서 끝까지 참아야 합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자기를 때리고 돌로 쳐 죽이는 원수들을 바라보며. “하나님이시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오.”(행7:60)
돌무더기 속에서 자기 골통을 부셔버리는 그네들을 위하여 축복기도를 하는 원인도, 그렇게 하는 것이 성령이 담길 수 있는 비결이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마귀는 참고 견디는 마음자세가 흩뜨려지게, 견디지 못하게 조종하는 것입니다. 억울하고 분하고 원통한 마음을 주어서, 서서히 원망과 불평을 하도록 만들어버리는 것입니다.
여기에 조종을 받는 순간, 하나님은 섭섭하여 떠납니다. 끝까지 참고 견딘다는 거. 갖은 모략과 중상과 어려움 속에서도,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라는 걸 알았으면 어떠한 괴로움 속에서도 한 마디 불평을 입 밖에 토하지 않고 끝까지 참고 따라가는, 그런 사람이 아니면 주 앞에 서지 못하는 겁니다.
사도 요한이 이상 중에 주의 세계를 가서 계시를 받고 울면서 편지를 썼습니다. “빛 가운데 있다 하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아직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느니라.”(요일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