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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1.03.08본문
주의 뜻을 따르라.
에덴의메아리 7권 chapter 1,
1995년 3월 12일 낮예배 말씀 발췌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불러 세웠으며, 결코 아브라함 자신이 하나님을 찾아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로부터 지시를 받습니다. “뭐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그 지시에 의해서 움직여지는 발자취래야 신앙의 운동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하기 싫어도 해야 하고, 하나님께서 원치 않으시면 하고 싶어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기본자세입니다.
색시가 신랑이 필요할 때 신랑이 귀중한 거고. 신랑이 색시를 필요로 할 때 색시가 귀중한 거지. 자기가 어떠한 그 상대방을 위해서 한다는 건 그렇게 귀중성이 되질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소중히 여길 때는 ‘하나님의 신이 우리에게 있어야 되겠다.’ 할 때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이 귀해집니다.
우리 마음과 우리 여건에 ‘하나님이 계시든 안 계시든, 뭐 주님이 계시든 안 계시든 나와는 상관이 없다.’ 할 때, 우리 마음에 하나님과 주님은 귀해지지를 않습니다. 이게 인간의 본능입니다.
바로 이겁니다. 신앙의 운동은. 하나님이 우리를 필요로 하실 때, 우리의 존재가 하나님께 가치가 되는 거지. 있으나 마나 이러한 존재로서 하나님이 우리를 보실 때, 우리 인간은 하나님께 사실상 귀중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신앙의 운동은 하나님이 필요로 하시느냐, 아니냐 하는 뜻이 중점을 이루게 되는 겁니다.
아브라함이라는 존재가 언뜻 보면 그냥 살아가는 인생 같지만 그게 아닙니다. 하나님을 위한 일평생이었습니다, 그 사람의 생활은. 똑같이 밥 세 때 먹는다고 남하고 똑같은 게 아닙니다.
바로 오늘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들어온 여러분들이, 각 세상에서 남들처럼 살아가면서도, 하나하나의 움직임이 사람을 위한 생활이 아니고 하나님을 위한 생활로서 발자취가 남는 비결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요구하시고 요구하셨던 바를 시행하는 겁니다. 인간 위주가 아니고 누구의 위주입니까? 하나님 위주라는 겁니다, 언제나.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계19:8) 하고 읽어 드렸습니다. 그러면 성도들의 옳은 행실은 누구의 지시를 따르는 걸 말하는 겁니까? 우리 생각대로 하는 겁니까, 여호와의 지시입니까?
주의 뜻을 성도들이 준행했을 때 그것을 “옳은 행실이다.” 그러는 겁니다. 자기의 마음대로, 자기 뜻대로, 자기 계산대로, 이렇게 사는 건 옳은 행실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