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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2.06.18본문
신념의 인간
1987년 10월 25일 낮 예배말씀 발췌
저는 여러분들에게 ‘신념’이라는 말을 때로는 쓰고 싶은 사람입니다. 왜 그런고 하니, ‘믿는 것’이라는 것과 ‘믿노라 하는 것’은 종류가 다릅니다.
주의 종은 그것을 주시해 봅니다. ‘이 사람이 참 믿는 사람인가, 믿노라 하는 사람인가?’ 바로 이점에서 여러분들을 보고 있는 겁니다. 저는 믿는 사람을 원하지, 믿노라 하는 사람을 원치 않습니다.
그것은 연조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상입니다. 10년이 됐든 20년이 됐든 30년이 됐든, 믿노라 하는 상태에 사는 사람은 계속 그 상태입니다.
하루를 믿어도 진실로 믿는 사람의 신앙은 그 믿는 데에 하나의 자세가 갖춰집니다. 그렇지 못하는 사람은 계속 믿노라 하는 상태에서 움직여집니다.
우리는 육의 생명을 지니고 영을 추구합니다.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부모님이 낳아 주셔서 세상을 살아가는데. 나이 들고 싶어 드는 것도 아니고, 늙으니까 늙는 거고. 도리가 없습니다.
발버둥 쳐도 소용없는 이 문제의 해결점은 바로 성서에 있는 대로 우리가 영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뿐입니다. 그럼 이 영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과연 나 자신을 얼마나 혹사시키고 있는가?”하는 문제를 두고 우리는 투쟁을 해야 합니다.
이 ‘혹사’라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사람은 절대 못 하는 일입니다. 그것은 자신을 죽이는 일인데, 자신은 하나뿐인데, 한 세기 후에 또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우리가 해결점을 찾는가?
“기다리던 성도 만나 얼마나 기쁠 건가? 만나자 천성 문에서. 아, 즐거운 그 모임.”(합동찬송가 535장) 전 이 찬송을 부를 때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을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천성 문에서 만나는 것, 이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이겁니다.
그런데 그 목표를 삼고 나가는 과정에서, 사실상 많은 분들의 생활이 그렇게밖에 안되는 그 흐름의 리듬을 타고 신앙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근심이 됩니다.
오늘날 우리 역사가 외부로부터 핍박, 조롱을 받아도 그것 때문에 겁낼 건 없습니다. 이 시대는 죽이는 시대가 아닙니다.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실질적인 것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인간성이 어떻게 개조가 되며, 신앙생활에서 어떻게 첨단적인 정신자세가, 따르는 양떼들에게 신앙적으로 부여되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알곡성전’이라고 하고 ‘알곡’이 안 되면, 그건 ‘알곡성전’과는 무관하게 됩니다. 그러면 ‘알곡’이 되는 최대의 비결이란 무엇인가?
인간이 인간이 아닌 차원에 도달을 해야 됩니다. 우리는 인간을 놓고 싸우는 게 아니고 신과 교류해 나갑니다. 내가 신과 친해지려면 내가 신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사람인데 어떻게 신이 되는가? “그리스도와 합한 사람은 한 신이 된다.”(고전6:17)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합해야 한 신이 되는데 그리스도와 합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 할 적에 부수적인 문제가 나옵니다.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조건이 나옵니다.
그 조건을 과연 “현실 속에서 우리가 적응을 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서, “신과 하나가 되느냐? 못 되느냐?”하는 결론이 나오는 겁니다.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받고, 진실한 자라야 된다.”(계17:14)라는 말씀을 여러분들은 아셔야 됩니다. 그것이 핵입니다.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입고, 진실해지기까지 3단계를 거칩니다. 그 3단계가 되기까지는 가만히 있는 우리가 아닙니다. 우리는 조건이 달라집니다.
신의 조건이 변하지 않는 가운데, 인간의 조건도 변하지 않고 생활할 수 있다면 그것을 시간을 두고 만들어 올라가겠는데. 인간들은 그러지를 못합니다.
학생 때 순진한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이 부르심을 받고, 빼내심을 받을 여건이 되려고 하면 벌써 이 사람은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들어가야 되고, 대학에서 빚어지는 여러 가지 현상들 때문에 신앙을 만들지 못합니다. 이성을 만나게 되고. 자꾸 변합니다.
그러니 그 단계 올라가기 전에 이미 돼 있던 것도 후진이 됩니다. 이렇게 생활환경이 인간을 자꾸 끌어내립니다.
돈이 없을 때 다르고, 있을 때 다르고. 회전의자 돌아갈 때 다르고, 사업이 잘될 때 다르고, 망할 때 다르고. 자신은 시집 장가 가야지, 부모 돼야지, 뭐 정신 없습니다. 정신이 거기에 뺏깁니다. 그래서 만날 그 자리에서 맴돕니다. 이렇게 다 풍비박산이 납니다.
그러니 그런 생활환경이 변화무쌍한 속에서도 부르심을 받고 빼내심을 받고 진실해지기까지 변치 않고 뛰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 있을 것인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보통 어려운 게 아닙니다. 이것을 만들어서 이루어야만, 개인은 개인 대로 역사는 역사 대로 성취가 됩니다. 이것을 해야 할 분들이 바로 남이 아닌, 여러분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