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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4.06.26본문
Part 03. 새벽별이 빛날 때
Chapter 10. 처음 사랑을 되찾으라!
계시록에 보면, 주님이 이상 중에 사도 요한을 통해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처음 사랑을 버렸다.”(계2:4)고 말씀했습니다. 이것은 주께서 에베소 교회 교인들이 처음에는 열심히 믿었으나, 차츰 열기가 식어가는 것을 책망한 말씀입니다.
사람은 무슨 일에나 처음에는 일종의 호기심에 끌려 열의를 보이지만, 그것이 오래 가지 못하고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차츰 시들해지기 쉽습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여서, 처음에는 누구나 열을 올리지만, 차츰 냉랭해지고 힘이 빠집니다. 믿음에 김이 샌 것입니다.
주님은 이것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겨,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덥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계3:16)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믿음에 김이 새지 않았는지, 수시로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믿음을 튼튼히 키우려면 알기도 해야 하지만, 아는 데 그쳐서는 안 됩니다. 마음이 언제나 주님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합니다. 믿음은 이론보다 행동이 더 소중합니다. 즉 그 믿음으로 심장이 항상 고동치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치는 알겠는데, 가슴이 싸늘하게 식어 있으면 몸뚱이는 움직이게 되지 않습니다.
은혜가 떠났기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거죽만 남아, 믿는 시늉을 할 뿐입니다. 그는 계산을 앞세워 주의 일에 앞뒤를 재고 대가를 요구하며 손해나는 일을 하려 들지 않습니다. 하물며 주를 위해 자기를 희생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주를 잘 믿고 못 믿는 것은 우선 그 마음의 열도로 알 수 있습니다. 성경 66권을 줄줄 외워도 마음이 냉랭하면 그는 주님과는 상관이 없는 자입니다.
여러분, 남녀의 사랑에 제일 소중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정열입니다. 즉 상대방을 뜨겁게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 없이 서로 만나 선물이나 주고받는다면, 그런 싱거운 사랑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것은 벌써 사랑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말로는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주님 이외의 것, 즉 세상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주님을 참으로 사랑한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에게 이론이 살아 있어도 주께서는 같이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가슴이 냉랭해지면 이보다 더 괴로운 일은 없습니다. 이것은 은혜를 받아본 사람은 잘 알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서 은혜가 떠나는 것은 마치 아편쟁이에게 아편이 떨어진 것과 비슷합니다. 적절한 비유가 아닐지 모르지만, 아편쟁이는 아편을 맞지 못하면 맥을 못 씁니다. 그래서 아편이 떨어지면 집안에 있는 물건이라도 팔아서 아편을 사들입니다.
신앙도 은혜가 떠나 냉랭하면 어떻게 해서든지 다시 은혜 줄기를 잡아야 합니다. 은혜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오직 하나님과의 연결을 위해 발버둥을 치게 됩니다. 옆을 볼 사이가 어디 있겠습니까?
누구나 자기 믿음은 자기가 제일 잘 압니다. 여러분은 마음이 후끈 달아 있습니까, 싸늘하니 식어 있습니까? 혹은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뜨뜻미지근합니까? 그렇다면 하루 속히 열을 가할 방도를 강구해야 합니다. 그런 뜨뜻미지근한 사람은 주께서 제일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일이라면 팔을 걷고 나서던 시대로 속히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과 은혜로 연결되면 모든 것을 참고 견디며 질투, 비방, 불평 등이 다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몇 시간씩 계속해서 찬송을 불러도 싫증이 나지 않습니다. 기도가 저절로 입에서 흘러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주의 멍에가 조금도 무겁지 않습니다. 그래서 은혜가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은혜 가운데 젖어 있습니까? 거울에 얼굴을 비춰 보는 것처럼 신앙의 거울에도 자주 자신을 비춰보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 가리라.’ 하고 와보니, 그 집이 비고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니라.”(마12:43-45)
이것은 은혜 받은 자가 은혜를 쏟은 후에 되어 가는 심령 상태를 지적한 말씀입니다. 본문 말씀에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 갔다는 것은 심령이 일곱 곱절이나 더 더러워진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에덴성회는 앞선 역사에서 은혜를 받았다가 쏟았거나, 혹은 실망하고 떨어진 사람들을 다시 씻어 세우는 곳입니다. 그런데 7배나 더러워진 심령을 다시 깨끗이 씻어 세우려면 일곱 곱절이나 힘이 드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종은 그만큼 어려움을 겪어야 합니다.
하루에 받은 은혜를 쏟은 후에 다시 씻어 세우려면 한 주일이나 걸린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러므로 말씀도 7배나 깊은 내용이 담겨 있어야 하고, 은혜도 여기 비례해서 강해야 합니다.
이런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접어들지 않고는 혼자서 아무리 애써도 되지 않습니다. 부흥 집회에 나가 몇 주일씩 단식하고 밤을 세워가면서 기도하여도 감감무소식입니다. 그렇게 노력해서 은혜 받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계시록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시대입니다. 오늘의 주님은 모든 성도들이 당신을 위해 희생해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 믿는 태도를 바로 세워야 합니다.
다니엘은 마지막 때에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케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라.”(단12:10)고 했습니다. 오늘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연단을 받아 정결케 되어야 합니다. 연단이란 주의 십자가에 동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사람이 아니면 주 앞에 떳떳이 서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긴자를 만나 쉽사리 은혜 받을 수 있다고 해서 평탄한 믿음을 가질 생각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