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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4.06.27본문
Part 03. 새벽별이 빛날 때
Chapter 15. 부활과 재생
나는 지금까지 해를 거듭하면서 부활절을 맞이할 적마다 부활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교계에는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가 육신을 입고 다시 살아난 것으로 생각합니다.
만일 주님이 육을 입고 그대로 다시 살아나셨다면, 나사로가 죽었다가 살아난 것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것은 부활이 아니라 재생(再生)이며, 육을 그냥 입고 있으므로 이 육은 조만간 다시 죽게 마련입니다.
부활이란 썩을 것이 썩지 않을 것으로 다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고전15:42) 육을 가진 인간은 흙으로 빚은 썩을 존재이며, 죽어서 흙으로 다시 돌아가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신령한 영체이지만 잠시 우리와 같은 육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땅에 오시려면 불가불 육을 입어야 하고, 하늘나라에 오르려면 육을 버리고 신령한 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 세계와 이 땅의 생활 조건은 이처럼 큰 차이가 있습니다.
주님은 육을 입고 땅에 오셨으므로 굶으면 시장기도 느끼고 세월이 지나니 늙기도 하였습니다. 만일 주님이 이런 육을 그대로 지니고 부활했다면 하늘나라에 올라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주님뿐만 아니라 우리도 물론 육을 그대로 가지고는 하늘나라에 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살아서 하늘나라에 갈 때 홀연히 변하고, 죽은 자들은 썩지 않을 것으로 다시 산다고 말했습니다.(고전15:51-52)
주님은 썩을 육신을 입고 계시다가 썩지 않을 신령한 본래의 원체로 돌아갔으므로 부활 이전과 이후는 그 형상이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러기에 무덤을 찾아간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을 동산지기로 보고, 엠마오로 가는 두 청년은 주님과 동행하면서도 어떤 길손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주님은 이미 육을 입은 옛날의 주님이 아니라, 그때그때 형편에 따라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변신(變身)이 자유 자재한 신령한 몸으로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이 닫힌 방에도 자유롭게 출입하고,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불쑥 나타나시곤 했습니다.
주께서 의심이 많은 도마에게 못 자국이 난 손바닥을 만져보게 하신 것은 잠시 그렇게 변모했을 뿐이며,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생선을 잡수신 것도 마찬가지입니다.(눅24:42-43)
부활 후의 주님은 이와 같이 육에 매인 조건이 아니라, 육을 초월한 영체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썩을 것이 썩지 않을 것으로 사신 것이 주님의 부활이라면, 썩지 않을 것이 썩을 것으로 죽은 것이 곧 아담, 하와의 사망입니다.
그리하여 그 후손들에게 죽음이 임하게 되었지만, 죽지 않는 신령한 영체로 회복될 수 있음을 처음으로 보여준 것이 바로 주님의 부활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주의 피 공로로 썩을 것이 썩지 않는 신령한 몸으로 변하여 영원한 그 나라로 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본래 신령한 영체로, 육신을 입어도 죽지 않을 요소를 지니고 계셨으므로 사망과는 관계가 없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설사 십자가에 못 박아 육의 장막은 헐어 버릴 수 있어도, 거기 담긴 신령한 영체는 아무 손상도 입지 않습니다. 이것이 우리와 다른 하나님의 아들의 참모습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신령치 못한 몸이라, 그냥은 영생에 이르지 못합니다. 주의 피로 거듭나야 합니다.
부활하신 후의 주님은 본래의 형상인 하나님의 아들로 돌아가 영광의 주님으로 환원되었으므로, 잠시 육을 입고 나타났다고 해서 붙잡아다가 다시 십자가에 처형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되지 않고, 33세의 피투성이 주님으로 부활이 아닌 재생되었다면 주님은 소크라테스나 플라톤과 같은 철인(哲人)과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기독교는 아무 가치도 없으며, 우리가 예수를 믿으려고 애쓸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부활이 육적인 재생이라면, 하늘나라에는 늙은이, 어린이, 다리병 신, 소경, 언청이 등이 우글거려 이 세상과 비슷할 것입니다.
지상에서 악의 세력을 발등상 시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면 마지막 일곱째 나팔 소리와 함께 유사 이래의 억조창생이 일제히 일어나 심판대 앞에 서게 됩니다. 이때 마귀 편에 선 자들은 그 죄상의 비중에 따라 마귀의 형상을 많이 닮기도 하고 적게 닮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편에 선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신령하게 이루어진 정도에 따라 하나님의 형상을 많이 닮기도 하고 적게 닮기도 하는 것입니다.
어쨌든 하늘나라가 이루어지려면 심판을 거쳐야 하고, 심판을 거치려면 하나님의 뜻이 먼저 이루어져야 합니다. 첫째 부활에 참여하여 지성소에 가 있는 영혼들이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시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하나이까?”(계6:10) 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 심판이 베풀어지기를 고대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피를 신원한다.’는 뜻은 물론 원수를 갚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오늘 뜻 깊은 부활절을 맞이하여 부활의 참뜻을 다시 한 번 되새기고, 우리도 주의 뒤를 따라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그 나라에 갈 수 있도록 더욱 힘써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