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권] Part 03 - Chapter 0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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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2.02.28
[3권] Part 03 - Chapter 0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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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3. 역사의 증인들  

Chapter 05.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3)


5) 사라의 죽음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나이 127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보기 드문 미인이요, 내조자로서 오랫동안 동고동락(同苦同樂)해 온 아내를 잃은 아브라함의 슬픔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인정상 있을 법한 일이기는 합니다마는, 신앙적으로 생각하면 의아하게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으로부터 일찍이 믿음의 조상으로 부름을 받고, 하나님과 직접 간접으로 대화를 나누면서 하나님의 각별한 은총을 받아 왔으며, 아내 사라만 하더라도 한평생 영화를 누리다가 127세라는 장수를 하고 세상을 떠났는데, 그 죽음을 그렇게 애통하게 여길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찮은 우리네도 영생을 믿으므로 혈육이나 측근이 죽었다고 해서 울고불고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로 알고 있는데, 믿음의 조상이 아내가 죽었다고 해서 비탄에 잠기다니, 도무지 알고도 모를 일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아브라함은 아내의 죽음을 그처럼 슬퍼했을까요? 그는 남달리 눈물이 많은 사람이었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그는 영의 세계를 잘 몰랐던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여러분은 믿음의 조상이 영을 모르다니?” 하고 의문을 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건 사실입니다.

 

아내 사라가 죽었을 때 아브라함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인생이 허무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데서 오는 충격이었습니다. 죽으면 그만,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구나 하는 절망감은 믿음 가운데서 얻게 마련인 소망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브라함의 신앙관은 빈약한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는 신앙에 대해, 다만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한평생 편안히 잘 살면 된다는 정도로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브라함의 잘못도 아닙니다. 당시에는 여호와께서 당신의 사람을 통하여 육적으로 역사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뿐만 아니라 구약시대의 역대 하나님의 종들의 신앙은 아브라함의 수준을 별로 넘어서지 못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위치에 대해서는 성경에 선지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20:7) 그런데 하늘나라의 서열은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하는 것”(고전12:28)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가 선지자보다 서열이 앞서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불러 세우시고, 영적으로는 선지자의 위치에 놓아두신 것입니다.

 

나는 양의 문이라,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10:8) 좀 과장된 표현 같지만, 주님의 피 권세가 아니면 구원의 길이 막히며, 따라서 아브라함이나 모세, 예레미야 같은 하나님의 사람도 죽으면 썩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강조한 말씀입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아무도 주의 보혈의 은총을 입지 않고서는 그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 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이리로다.”(16:10-11) 주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심으로써 많은 선지자나 성도들이 다시 살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을 가리킨 말씀입니다. 이것은 주께서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시는 순간, 구약시대 성도들의 무덤이 열려 승천한 것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27:52)

 

주께서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19:30)는 말씀은 이와 같이 성도들의 서열에 변동이 있을 것을 가리킨 것입니다. 그러니까 먼저 하나님을 가까이한 자의 서열이 나중 따르는 자보다 뒤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은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도 행하겠고, 나보다 더 큰 일도 행한다.”(14:12)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물론 그 사람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힘입어 되는 것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바울이나 베드로 같은 분은 주께서 못하신 일도 하였습니다. 바울이 자기의 직분을 모세의 그것보다 더 크게 본 것도(고후3:7)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 와서는 죽어 가는 사람을 살리는 성령의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그리하여 사도나 교사들을 통하여 은혜를 받은 사람은 구약시대에 선지자나 사사를 통하여 은총을 받은 사람보다 훨씬 앞서기 마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