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 Part 01 - Chapter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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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2.11.04
[4권] Part 01 - Chapter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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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1. 흰 돌의 증언   

Chapter 9. 하나님의 도와 이긴자의 도 (1)



1) 말씀은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성경은 쓰기는 사람이 썼지만, 사실은 성령이 개입하여 쓰게 하신 것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성령을 받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내용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성경도 여느 책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야 성경도 사람이 종이에 글자를 적은 책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거기 담긴 내용은 다릅니다. 그것이야말로 진리입니다.

 

여러분은 성경을 놀랍고 두려운 마음으로 읽습니까? 거기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한 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옛날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며 또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경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믿습니까?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성경 말씀을 100%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거기에는 가감이 있을 수 없고, 무슨 조건이 따를 수도 없습니다. 문자 그대로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옵니다. 처참한 전쟁 이야기 속에 심오한 사상이 깃들어 있는가 하면, 평범한 대화 속에 서릿발 같은 경고가 가려져 있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어느 한 구절도 무심히 보아 넘길 수 없는 것이 성경입니다.

 

하루는 주님을 따라 전도에 나선 제자 한 사람이, 부친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장례를 치르기 위해 집에 다녀와야겠다고 주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이것은 자식된 도리로서 당연한 일이며, 주님은 마땅히 허락해주셔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대답은 뜻밖이었습니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들이 장사를 지내게 하고, 너는 나를 따라 오라.”(8:22)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상주가 되는 장본인은 물론, 옆에서 함께 듣던 다른 제자들도 어안이 벙벙하여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아니, 아버지의 장사도 지내지 말고 전도를 하란 말인가?” 당연한 의문이자 항의이기도 합니다. 아니 이것은 분명히 부모를 공경하라는 법도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주님은 그렇게 말씀했을까요?

 

주님은 법도의 경중을 염두에 두고 계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과 부모에게 효도하는 두 가지 법도 중에서 전자를 앞세우고 계신 것입니다. 두 가지 다 소중한 일이지만,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가려야 할 때에는 언제나 하나님 중심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하나의 본보기이기도 합니다.

 

주님의 말씀 가운데 죽은 사람들이 장사를 지내게 하라.”는 이 죽은 사람들이란 물론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은 당신을 따르지 않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죽은 사람으로 생각하고 계셨습니다. 이것은 물론 영적인 의미로 하신 말씀으로, 당신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을 이방인과 마찬가지로 간주하신 것입니다.

 

즉 숨을 쉬고 살아 있기는 있지만 영적으로는 죽은 사람과 마찬가지라고 보신 것입니다. 그만큼 인간의 개념(의미)이 달라집니다. 기독교에는 이렇게 고고(孤高)하고 싸늘한 데가 있습니다. 또 그래서 비난도 받습니다. 그러나 이런 비난은 세상 것과 하늘의 것을 혼동하는 데서 오는 괜한 소리입니다.

 

이때 만일 그 제자가 아버지의 장사를 치렀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만큼 하나님의 일에 지장을 가져오는 반면에 불신자들과 행동을 같이하는 동안에 심령이 하나님과 멀어지게 마련입니다. 주께서 그 제자를 집에 돌려보내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장사지내는 기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닌데.” 하고 여전히 마땅치 않게 여기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것도 역시 인간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는 이런 사고방식에서 떠나야 합니다. 인간의 눈으로 볼 때에는 큰일 같지만 하나님에게는 하찮은 일일 수 있고, 또 인간의 눈으로 볼 때에는 하찮은 일도 하나님께는 큰일인 경우가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을 따르면서도 한편 불안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면서까지 주님을 열심히 따른 보상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제자인 베드로는 주님에게 따졌습니다.

 

주님,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이렇게 주님을 따르고 있는데, 그 대가는 무엇입니까?” “내가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 너희에게 열두 지파를 심판하는 영광을 얻게 하려고 한다.”(19:28) 주님의 이 대답은 그날에 하나님께서 너희를 구원해 주실 것이다.”

 

또는 하나님이 너희를 하늘나라에 인도하실 것이다.” 하고 하나님께 미루는 것이 아니고, 당신께서 직접 그런 영광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분명한 하나님의 언약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즉 주께서 그런 권세를 쥐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의 사람들은 저 나사렛 동네에서 목수 노릇을 하던 예수가 이런 위대한 분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시골 청년이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하늘나라에 갈 수 없다.”(14:6)고 말할 때 내로라던 사람들은 거의 다 등을 돌리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이긴자가 움직이는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께서 이긴자를 통해 분명한 증거를 내세워 역사하는데도, 사람들은 설마하고 좀처럼 믿으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로 백성의 언약을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로 그 황폐했던 땅을 기업(基業)으로 상속케 하리라.”(49:8)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언약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큰 은총을 베풀고 계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황폐했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케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주께서는 이긴자에게 당신의 보좌에 함께 앉히겠다고 약속했는데,(3:21) 주의 말씀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의 질그릇 같은 심령이 맑아져 금강석이 담기도록 하시려고 우리에게 풍성한 은혜를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의 마음속에 주의 집을 세우는 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저마다 영적인 목수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의 질그릇 같은 심령이 맑아져 금강석이 담기도록 하시려고 우리에게 풍성한 은혜를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의 마음속에 주의 집을 세우는 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저마다 영적인 목수가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