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 Part 01 - Chapter 9 (2)

페이지 정보

DATE. 2022.11.04
[4권] Part 01 - Chapter 9 (2)

본문

Part 01. 흰 돌의 증언   

Chapter 9. 하나님의 도와 이긴자의 도 (2)



2) 말씀의 차원

여러분은 영의 세계에 대해 잘 모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알고 있는 땅의 세계에 대한 지식과 비교하면 백지 상태나 다름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만큼 그 세계는 아리송한 데가 많습니다. 주님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세주라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그 권능에 대해서는 분명히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막연히, 주님은 위대한 권능을 갖고 무슨 일이든지 마음대로 하시려니, 하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주님은 죽은 자도 살리고,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덩이로 5천 명이나 먹이고도 남게 하는 등, 초인간적인 능력을 행하였습니다.

 

주님은 세례 요한의 도움을 별로 받지 못했습니다. 기껏해야 그의 증거로 제자 몇 사람을 인계 받았을 뿐입니다. 이것은 성경적인 인물로 모태에서부터 충만한 성령을 받고 태어난 세례 요한의 업적치고는 너무나 보잘것없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바와 같이, 그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한동안 열렬히 증거했으나, 나중에는 의심했습니다.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자기 입으로 증거한 분을 의심하다니, 그 이유가 어찌 되었든 간에 실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도 세례 요한을 가리켜, “여인이 낳은 사람 중에서 제일 큰 사람이기는 하지만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11:11)고 말씀하셨습니다.

 

세례 요한도 천국 백성이기는 하지만, 그 안에서 대우가 아주 형편없다는 소리입니다. 주를 한 번 의심한 죄과가 이렇게 큰 것입니다. 우리는 엘리야의 분신으로 온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역사에 합당치 않을 때, 이런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세례 요한의 움직임이 이처럼 시원치 못했기 때문에 그를 따르던 유식하고 똑똑한 사람들은 거의 다 주님을 외면해 버렸습니다. 만일 이들이 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인정하고 주님을 따랐던들, 베드로와 같은 불학무식한 어부에게 수제자의 자리가 돌아갔을 리가 만무합니다. 아니 베드로는 열두 제자 축에 끼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세례 요한의 말을 믿고 따랐습니다. 그래서 수제자의 영예를 차지했습니다. 이것은 요행이라면 요행이기도 합니다. 베드로가 똑똑해서 수제자가 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때를 잘 만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주님을 알고 따르기는 했지만 주께서 메시아로서 이스라엘을 독립시키러 온 줄로 알았지, 백성들을 대속하러 온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주님은 큰 권능을 행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놀랐습니다. 일찍이 듣도 보도 못한 일이었으니까요. 그래서 메시아가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박에서 해방시키러 왔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습니다.

 

즉 베드로를 위시하여 다른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은 예수를 정치적인 인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왕이 되는 날에는 자연히 제자들은 굵직굵직한 감투를 쓰려니 하고 기대했습니다. 즉 베드로를 비롯한 주님의 제자들은 모두가 장관감으로 사람들의 각광(脚光)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어떻게 주님의 제자들을 괄시할 수 있었겠습니까? 괄시하기는커녕 제자들에게 잘 보여야 군수나 면장이라도 얻어걸릴 판이니, 제자들을 받들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을 지방에 전도하러 보내면서 전대나 주머니나 신을 갖고 다니지 말라고 일렀습니다.(9:1) 그런데 나중에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주머니도 그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22:36)

 

왜 이렇게 정반대되는 말씀을 했을까요? 상황이 달라진 것입니다. 즉 한때는 기사와 이적에 의한 주님의 인기를 등에 업고 제자들이 어디 가나 병고치고 권능을 행하면 환영을 받았으므로 전대나 주머니 같은 것을 갖고 다닐 필요가 없었습니다.

 

옷도 생기고 음식도 배불리 얻어먹고 노자도 넉넉히 타서 썼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 후에 70문도를 전도하러 각처에 내보내었는데(10:1) 역시 반응이 좋아 많은 성과를 올렸습니다. 이들도 제자 못지않은 대접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께서 영적인 말씀을 터뜨려 당신의 정체(正體)를 드러내게 되자 많은 사람들이 차츰 떨어져 나갔습니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하늘나라에 갈 수 없다.”(14:6)느니,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라.”(6:53) 하고 설교하게 되자, 그들은 고개를 옆으로 설레설레 젓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해방을 기대하는 사람들 앞에서 이 얼마나 어이없는 소리입니까! 그러나 주님은 십자가를 지실 날은 정해져 있고 해서, 불가불 당신의 위치를 밝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기대에 어긋나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제자들도 저희끼리 모이면 수군거렸습니다. 그래서 주께서 이들에게 물었습니다. “너희들도 날 버릴 테냐?”(6:67) 얼마나 안타까운 질문입니까!

 

주님은 처음에 영적인 말씀은 되도록 삼갔습니다. 유명한 산상 수훈에서도 주님은 영적인 의미로 한 말을 사람들은 육적인 의미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렇다고 이 산상 수훈이 매우 깊은 말씀이냐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요,”(5:3) 이렇게 시작하는 산상 수훈의 말씀들은 덕을 강조하고 있지만, 영적으로는 아직 초기단계에 속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깊은 진리(眞理)를 전하자 인기는 급속도로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니 주님의 이름으로는 아무것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전대도 주머니도 준비하라고 일렀습니다.

 

전에는 주의 명성 하나로 먹고 입을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으나, 이제는 국면이 달라져 주의 힘으로는 그게 안 되게 생겼으니 어떡합니까? 전에는 주님이 메시아로 소문이 났으나, 이제는 죽일 놈으로 알려져 있는 것입니다.

 

이건 비단 주님 당시에만 있었던 일이 아닙니다. 똑같이 하나님을 공경하여도 지도자의 인기가 상승할 때에는 따르는 사람들이 일하기 쉽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애로가 많은 것입니다. 우리를 욕하는 사람은 많아도 도우려는 사람은 적습니다.

 

우리는 전대를 손수 마련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고 가시나 엉겅퀴를 헤쳐 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한 배에 타고 있습니다. 파선되면 다 죽습니다. 나는 이 배에서 여러분과 함께 고락과 생사를 나누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