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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2.02.28본문
Part 03. 역사의 증인들
Chapter 05.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2)
3) 하나님의 첫 언약
흔히 사람들은 하나님이 무한히 자비하셔서 언제나 우리 죄인들을 쓰다듬어 주시는 줄 알고 있는데, 이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데서 오는 일종의 착각입니다. 즉 사랑의 하나님만 알고, 진노의 하나님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매우 현실적이십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은 쓸데없는 일을 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 66권이 입증하고 있습니다. 먼 옛날부터 6천 년 동안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자취를 더듬어보면 저간의 소식을 잘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많은 성도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새 나라를 이룩하려는 당신의 뜻을 펴시는데 많은 수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14만 4천이라는 하늘의 군대만 확보되면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에도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은 구약시대에는 당신의 선민을 택하고 선지자와 사사들을 통해 부분적으로 역사하며 은총을 베푸셨습니다. 그러니까 그 밖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상종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은혜 가운데 거하는 것이 소중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먼 옛날에 인간이 먹고 마시며 자손을 번식시키는 것이 살아가는 목적의 거의 전부를 차지하던 단계를 벗어나 차츰 지각이 발달되자, 여호와께서는 새 하늘나라를 세우기 위한 본격적인 역사를 시작하시려고 아브람을 믿음의 조상으로 일찌감치 내정해 놓고, 그를 살피며 보호하는 가운데,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나타나 반짝이는 별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네 자손이 저 별과 같이 셀 수 없을 만큼 번식할 것이다.”(창15:5) 아브람은 여호와의 이 말씀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에 의해 아내 사래가 임신하려니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는 아브람을 가상히 보시고 의롭게 여겼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네 몸에서 나온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창15:4)고 말씀하신 후로, 아내의 몸에 어떤 변화가 있겠지 하고 은근히 기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해가 바뀌어도 아내 사래의 몸에서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아브람은 낙심하여 수심에 잠겼습니다.
이것을 옆에서 바라보던 사래는 남편에 대하여 여간 미안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루는 남편에게, 아무래도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자식을 주시지 않을 모양이니, 여종 하갈과 동침하여 자식을 두는 것이 좋겠다고 넌지시 말했습니다.
아브람은 사랑하는 아내의 갸륵한 청을 받아들여 얼마 후에 하갈이 임신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아브람이 85세 때의 일이며, 그러니까 하나님의 소명(召命)을 받은 지 10년이 지나서였습니다.
나이 86세에 바라던 자식을 두게 되었으니, 아브람이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아브람은 하갈이 임신하게 되자 아내 사래와는 차츰 거리가 멀어졌고, 하갈을 극진히 사랑하는 한편, 하갈은 하갈대로 주인의 아기를 배게 되면서부터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즉 자기도 이제는 보잘것없는 하녀가 아니라, 이 집안의 대를 이을 자손을 뱃속에 품은 어엿한 아내임을 자부하고, 자식을 낳지 못하는 사래를 멸시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딱하게 된 것은 사래였습니다. 남편의 사랑은 점점 식어가고 하녀에게까지 괄시를 받게 되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래는 남편에게 항의했습니다. 나는 당신을 위해 지금까지 희생해 왔는데, 이제 와서 괄시하기냐고 말입니다. 그러자 워낙 애처가였던 아브람은 지금까지 희로애락을 함께 해온 아내 사래가 측은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갈은 어디까지나 당신의 여종이니 맘대로 다루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래가 하갈에게 앙갚음을 하게 되자, 하갈은 견디다 못해 본향인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집에서 몰래 도망쳤습니다.
이때 하늘에서는 아브람의 자식을 잉태한 하갈을 외면할 수 없어, 천사를 내려 보내 하갈에게 돌아가서 여주인을 섬기라고 전하고, 하갈이 낳을 아이 이름을 이스마엘이라고 지으라고 지시했습니다.
이 천사는 세례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이 잉태할 것을 예고하면서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고 지시하고, 또한 마리아에게 장차 아들을 낳을 터이니 이름을 예수라 부르라고 일러준 가브리엘 천사장입니다. 이 천사장은 하늘에서 특별한 축복을 내릴 것을 알려주는 임무를 맡고 있는 것입니다.
이 하갈이 낳은 이스마엘은 오늘날 아랍 민족의 조상으로, 당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사래가 낳은 이스라엘 민족과 분쟁이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두 민족은 씨가 같고 배가 다른 사이이며, 근 4천년 동안 앙숙으로 지낸 것입니다.
아브람이 이스마엘을 낳고 그 아들을 애지중지하며 기르는 한편, 이스마엘을 낳은 하갈을 너무나 끔찍이 아껴, 사래는 더욱 큰 설움과 고독을 느끼는 가운데 13여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어느 날,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믿음의 조상으로 삼을 것을 언약하고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고치라고 지시하시는 동시에, 그 언약의 표시로 할례(割禮)를 받으라고 분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오직 황송하여 엎드려 하나님의 분부를 공손히 받아들였습니다. 아브라함으로서는 하나님께서 자식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자기를 정식으로 믿음의 조상으로 삼고 자손들을 번식케 하시겠다고 하니, 감사와 감격을 금치 못했던 것입니다.
이어서 여호와께서는 이상 중에 할례 하는 방법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할례는 언약의 상징이므로 꼭 준수할 것을 지시하셨습니다. “할례를 받지 않는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창17:14)
아브라함은 여호와의 지시대로 99세에, 13세 된 아들 이스마엘을 비롯하여 온 집안 남자들과 함께 할례를 받았으며, 이 율례는 바울이 폐지할 때까지 2천 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이 되려면 첫째 할례를 받고, 둘째 율법을 지키며, 셋째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3자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3대 요소였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세 가지를 지키지 않으면 육적으로 이스라엘 시민권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신약시대에는 영적 이스라엘 백성이 되려면 이와는 다른 세 가지 요건이 필요합니다. 기독교의 3대 요소인 십자가와 보혈과 부활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니까 영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되려면, 첫째 십자가의 권능을 믿고, 다음은 주의 피로 인침(성령)을 받고, 마지막으로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여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구약시대의 육적 이스라엘 백성이 되는 3대 요건은 아브라함, 모세, 아론, 세 사람을 통하여 이루어졌지만, 신약시대의 영적 이스라엘 백성이 되는 것은 주님께서 혼자 이루신 것입니다.
구약시대와 신약시대는 여러 가지 면에서 대조적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남자가 출생한 지 8일 만에 반드시 양피(陽皮)를 베어 할례를 받아야 했지만, 신약시대에는 바울이 할례를 폐지했으므로 그럴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아론의 반열에 속하는 역대의 제사장들이 짐승의 피로 제사를 드렸지만, 신약시대에 와서는 멜기세덱의 반열에 속하는 대제사장, 곧 주님이 산 제물이 되어 단번에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또한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반드시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했으나, 신약시대에는 자유의 율법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즉 마음과 생각에 새겨진 율법을 지켜야 합니다. 은혜(성령)를 받기 전에는 모세의 율법이 필요하지만, 은혜를 받은 다음에는 자유의 율법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고도 모세의 율법을 지키는 것은 마치 갓 쓰고 구두를 신은 것과 같은 격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를 믿으며 할 일은 마귀를 이길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입니다. 주께서 강림하셔서 새 하늘나라를 이루시려면 땅 위에 일정한 여건이 마련되어야 하는데, 이 여건이 곧 마귀의 소탕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땅 위에 성령으로 역사하시면서 마귀가 발등상 되기까지 하나님의 우편 보좌에 앉아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이 주의 성령을 힘입어 마귀를 발등상 시키는 여건을 만들 자가 필요합니다. 이 마귀를 발등상 시키기 위한 군대의 수가 14만 4천입니다. 그러니까 하늘에서는 이 군대의 수가 차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긴자란 이를테면 이 하늘군대를 완성해야할 존재이며 또한 앞으로 이들의 참모장 격이 됩니다.
세상에서도 적과 싸울 때 무장을 갖추지 않고 알몸으로 적진에 뛰어드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나 그를 미친놈이라고 할 것입니다. 마귀와의 싸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마귀와 싸워서 이기려면 일정한 무장을 갖춰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말로만 마귀를 이긴다고 외쳐 봐야 마귀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선 마귀와 싸워서 능히 이길 수 있는 영적인 무장을 튼튼히 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세대와는 달리 지금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들이 이런 중무장을 하는 때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하루아침에 되지 않습니다. 세상 군대도 일선에 나가려면 적어도 일정 기간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십자군도 일정한 훈련기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훈련은 특이합니다. 즉 하늘의 군대가 되려면 반드시 하늘의 양식을 먹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말씀으로 다듬어지고 주의 피로 깨끗이 씻음을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 근래에 와서 무엇 때문에 우리나라가 소란한지 아십니까? 온 세상의 주를 모신 이긴자가 나타나면, 온 세상의 이목(耳目)이 쏠리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세계 뉴스의 초점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조용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이 지구상에서 다른 데는 정치적으로 어느 정도 평화를 유지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만은 그렇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사람들은 세계 방방곡곡에서 여호와를 경배하며 주님을 찬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 하나님의 정기(精氣)가 얼마나 깃들어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오늘 이곳에 처음 오신 분들도 있을 줄 압니다. 넉넉잡고 4주 동안만 나와서 듣고, 말씀과 부합되지 않는 데가 있으면 항의하십시오.
이사야서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수보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사58:12) 이 말씀은 당시 육적인 이스라엘에게 하신 말씀이지만, 우리 역사에서도 바로 같은 은혜가 베풀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전도할 때, 이 역사가 무엇이라는 것을 상대방에게 알려만 주십시오. 남을 비판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상 중에 에스겔에게 말했습니다. “그들이 듣거나 말거나 여호와의 말씀이 이렇다고 전해라.”(겔3:11)
전해도 듣지 않는 것은 본인의 탓이지만, 전하지 않는 책임은 여러분이 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진리의 말씀을 듣고 혼자만 좋아할 것이 아니라, 모르는 사람에게 전해야 합니다.
4) 소돔과 고모라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은 하나님의 역사에서 일어난 큰 사건의 하나이므로 널리 알려져 영화로도 상영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그 영적인 깊은 의미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이 두 성읍의 멸망은 저 노아의 대홍수 이후 두 번째로 나타난 여호와의 진노로, 우리는 여기서 여호와의 또 다른 일면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즉 사랑의 하나님과는 정반대인 진노의 하나님이 그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무조건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눈 밖에 났을 때에는 거기 따르는 응분의 형벌을 내리시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이 심히 중하여 쓸어버리겠다.”고 말씀하시자 아브라함은 당황했습니다. 사랑하는 조카 롯과 그 가족들이 소돔에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설사 이 성읍이 죄로 물들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타락했다고 하더라도 의인들이 함께 살고 있다면, 이들을 건지기 위해서도 내리려던 진노의 형벌을 보류하시려니 싶어 여호와께 간구했습니다.
즉 의인과 악인을 함께 멸하는 것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취할 바가 아니라는 것을 간곡히 아뢰었더니, 여호와께서는 소돔 성중에 의인 50명만 있으면 용서하겠다고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 계속되는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대화 속에서 이 의인의 수는45명으로 줄었다가 나중에는 10명까지 내려가, 의인 10명만 있어도 이들을 보아 죄인들을 멸하지 않겠노라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으나, 실상 의인은 10명도 없었던 것입니다. 이 대화에서도 우리는 여호와께서 의인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시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의인은 여호와를 성실히 섬기는 선량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의인은 못 됩니다. 아니,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주께서 십자가에서 속죄의 제물이 되시기 전이므로 죄를 완전히 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구약시대의 다윗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시14:30)라고 말한 것은 이를 가리킵니다.
의인이란 요컨대 장차 때가 되면 하나님의 편에서 싸울 수 있는자를 가리키는 것인데, 사실 구약시대는 이런 독신자를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90세가 된 사라가 아들 을 낳을 것이라는 여호와의 말씀을 결국 믿지 않았습니다. 믿음의 조상이 이 모양이니, 딴 사람이야 말해 뭐하겠습니까?
이와 같은 구약시대의 의인은 여호와께서 바라는 진실한 의인은 못 됩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 들어오면, 주의 피 권세로 말미암아 주를 섬기고 따르는 사람은 의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롬5:19) 가능한 것입니다. 그 전형적(典型的)인 의인으로 ‘감람나무’를 들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그들을 ‘온 세상의 주를 모신 자’(슥4:14)라고 했으며, 계시록 2, 3장에 나오는 이긴자란 바로 이 감람나무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즉 이긴자란 주의 피로 깨끗이 씻어 세운 의인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의 간구를 들어 소돔에 살고 있는 롯과 그 일가를 구하기로 하셨습니다. 롯은 불법을 행하는 자나 음탕한 자들의 행실로 인해 괴로워한 의로운 사람이기도 했으나,(벧후2:8) 이보다도 아브라함의 조카였기 때문에 이런 특별한 은총을 입게 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롯과 그 일가로 하여금 몸을 피하도록 하기 위해 두 천사를 소돔성에 보내었습니다. 롯은 낯선 사람(천사) 둘이 나타나자 엎드려 절하고, 집에 들어가 발을 씻고 푹 쉬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의 형상을 입은 두 천사는 처음에 성문 밖에서 밤을 새려고 하다가 롯의 간청에 못 이겨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롯은 이들에게 식탁을 베풀고 무교병을 구워 대접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당시에는 낯선 이방인이 성문밖에 어른거리기만 하면 문지기가 곧 문 안에 보고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롯이 웬 낯선 사람들을 공손히 맞아들였다는 소식이 문 안 사람들에게 전해지자 저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유인즉 어떤 수상한 놈들이 성안에 들어와 무슨 수작을 부릴지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들은 롯에게 몰려가서 손님들을 내놓으라고 다그쳤습니다. 저들을 손보겠다고 벼르는 것이었습니다. 롯은 겁이 더럭 났습니다. 하나님의 사자에게 조금이라도 화가 미치면 큰일이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롯은 다급한 나머지, 정혼만 하고 남자를 가까이하지 않은 자기 딸을 대신 제공할 터이니 이분들은 건드리지 말아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야말로 목숨을 걸다시피 하고 하나님의 사자를 보호한 것입니다.
그러나 저들은 롯에게 대들며 대문을 마구 부수려고 하므로 두 천사가 롯을 집안으로 끌어들이고, 저들의 눈을 어둡게 만들어서 저들은 문을 찾느라고 아우성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동틀 때 천사는 롯에게, 소돔성이 죄악에 빠져 여호와의 진노로 멸망을 당하게 되었으니 가족들과 함께 피하라고 일렀습니다.
롯이 꾸물거리므로 천사는 롯의 가족들의 손을 잡고 밖으로 끌어내었습니다. 이를테면 강권을 발동한 셈입니다. 이것은 물론 여호와께서 베푼 은총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평소의 움직임이 착하여 긍휼을 베풀려는 자에게는 억지로라도 긍휼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천사는 롯에게 뒤를 돌아보지 말고 곧장 산으로 도망치라고 일렀습니다. 그러나 롯은 근력이 달려 가까운 성으로 피신하기를 원하여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롯은 힘껏 뛰느라 아내가 뒤에 처진 것도 돌아보지 않고 가다가, 성에 이르러 비로소 아내가 미처 도착하지 못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내는 천사의 명령을 어기고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그녀는 집에 두고 온 물건들이 아까운 생각이 들어 되돌아가 가져오려고 했던 것입니다.
본래 소돔 일대에는 암염(巖鹽)과 역청(콜타르)과 유황이 많았는데, 여호와께서 땅을 온통 흔들자 땅속에서 내뿜는 용암과 함께 이것들이 한데 엉겨 하늘 높이 치솟았다가 땅에 떨어지는 바람에 하늘에서 마치 유황불의 비를 내리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소금기가 깃든 이 ‘비’가 롯의 아내를 덮쳐 소금 기둥으로 굳어 버린 것입니다. 천사의 말을 따르는 것보다는 먹고사는 데 필요한 일용품이 소중하다고 여긴 데서 비롯된 재앙이라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