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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2.04.14본문
Part 04. 진리의 샘
Chapter 15. 음녀(淫女)에 대하여
“또 내가 보니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14만 4천이 섰는데 …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貞節)이 있는 자라.”(계14:1-4) 여기 나오는 여자는 우리가 생각하는 자연인(自然人)으로서의 구체적인 인간이 아니라,
음녀(淫女), 즉 넓은 의미로 쓰인 음란죄의 대명사(代名詞)입니다. 만일 이 여자를 육적인 의미로 해석한다면 여자는 하늘의 군대, 곧 주의 아내가 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계시록에는 두 여자가 등장합니다. 하나는 주의 아내로서의 여자요, 또 하나는 음녀로서의 여자입니다. 계시록에 보면 음녀가 많은 물 위에 앉아 있다고 했습니다.(계17:1) 이 물은 물론 비유로 사용된 것으로, 이 경우에 어디나 잘 스며드는 물의 성질을 세상에 고루 퍼진 음녀의 해독과 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이 음녀가 얼마나 고루 퍼져 있는가를 한 번 살펴보십시오. 신문 사회면을 보면 이 음녀가 등 뒤에서 공작을 하지 않는 데가 거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음녀는 물질을 통하여 사람들을 꼬이기도 합니다. 상고(상인)들도 대체로 이 음녀의 지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돈이 많은 사람과 돈이 없는 사람을 가리지 않고 정신을 혼미케 하는 것이 바로 이 음녀입니다.
돈 많은 유부녀가 곧잘 놀아나고 돈 없는 건달이 자주 걸려들어 심심치 않은 화제를 제공해 주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리고 돈 있는 집 도련님들도 곧잘 이 음녀의 제물이 됩니다마는, 이 밖에 권력이나 명예의 등 뒤에까지 음녀의 마수가 뻗혀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음녀는 특히 신약시대에 와서 거의 마귀의 위력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물론 구약시대에도 음녀의 행패가 없지는 않았지만, 당시에 가장 판을 친 마귀의 세력은 역시 술객이나 박수 등입니다. 이것은 애굽의 바로 앞에서 모세의 이적을 그대로 흉내 낸 것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그 여자는 자줏빛과 붉은 옷을 입고.”(계17:4) 이 여자는 물론 음녀를 가리키며, 그녀는 붉은 옷을 입고 그녀가 탄 짐승은 붉은 색깔이며 거기 ‘참람된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께서 빛나는 세마포 옷을 입고 흰 말을 타고 ‘충신(忠信)과 진실’이란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것과 는 큰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음녀가 탄 짐승의 일곱 머리와 열 뿔은 그 권세가 크게 팽창한 것을 상징하며, 권세를 일시 동안 받아 여호와의 편에 선 의(義)의 세력을 누르는 한 때, 두 때, 반 때의 득세(得勢)를 가리키고 있습니다.(계11:8 이하 참조)
또한 계시록에는 이 음녀를 음란의 도가니였던 바벨론에 비유하여,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며져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돈(부)과 음란의 함수관계를 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오늘날 우리가 날마다 눈으로 목격하는 일이므로,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과연 ‘돈은 일만 악의 뿌리’(딤전6:10)라는 바울의 말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독(毒)이 묻은 돈도 주의 일에 쓸 때에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그 돈은 유용할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릴 수도 있습니다.(고후9:13) 바울이 혼란의 많은 시련 속에서 흡족한 연보를 한 마게도냐 교회의 신도들을 칭찬한 것은 이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너무 인색하지 마십시오. 본인은 그것을 현명한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영적으로는 그만큼 손해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분도 딱하지만, 하나님께 돈 몇 푼 바쳤다고 해서 자고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딱한 유가 아닙니다. 이런 사람은 연보에 인색한 사람보다도 영적으로 더 손해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연보는 여호와께서 받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일종의 낭비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래저래 예수 믿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바울이 “마귀의 계교를 능히 대적하기 위해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엡6:11)고 경고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여러분, 주님은 “말세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눅18:8)고 걱정하셨습니다.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으니’(벧전5:8) 그럴 법도 합니다. 말세가 되면 마귀는 전력을 크게 강화하여 사자처럼 억세어집니다.
그러니 초대교회에서와 같은 한 증거의 성령의 역사는 쉽사리 삼킬 수 있는 것입니다. 주께서 오늘날 세 증거(불, 생수, 이슬)의 성령의 은혜로 역사하시고, 말씀으로 튼튼히 무장시키시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자(獅子)의 주 무기가 ‘음녀’ 즉 음란의 올가미입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 올가미에 걸려서 쓰러졌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여러분 자신의 일입니다. 그녀는 언제 우리를 침범할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내가 젊은 나이에 이렇게 독신으로 있는 것을 위태롭게 생각하는 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걱정까지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마치 주께서 바울에게 ‘가시’를 주어 자고하지 않도록 은혜의 사슬에 얽매어 두신 것처럼, 나도 주께서 힘을 주시기 때문에 여러분이 상상하는 그런 고민 같은 것을 모르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 음녀는 역시 우리의 강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정면으로 그녀의 도전을 받으면 누구를 막론하고 이겨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녀에게 일단 항복을 하게 되면 그때는 돌이킬 수 없는 죄악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도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고전6:18)고 경고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신약시대에 들어와서 더욱 극성을 떠는 이 음녀의 농간에 걸려 쓰러지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음란죄라면 흔히 남녀의 불륜(不倫)을 가리키는 줄 알고 있지만, 이것은 비성경적인 해석입니다. 즉 음란죄란 남녀 간에 실제로 부당한 육체적인 관계를 맺는 것은 물론, 마음속으로 음란한 생각을 품는 것까지도 포함됩니다. 사실 음란한 생각은 기회만 있으면 행동으로 옮겨갈 우려가 큰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은 모양도 보지 말라.”(살전5:22)는 말씀 그대로, 아예 생각도 품지 말아야 합니다. 호시탐탐 여러분을 노리는 음녀에게 조금이라도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만에 하나라도 생각에 그런 기미가 보이면 여러분은 음녀가 이미 초인종을 누르고 있는 적신호(赤信號)로 알고 물리쳐야 합니다.
이 음녀는 세력으로 말하면 용의 다음 가며, 이긴자는 바로 이 시대에 이 음녀를 꺾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뭇 심령들에게 성령을 부어주는 인치는 역사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이 성령의 인을 맞고 음녀를 물리쳐야 왕의 반열에 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