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정보
DATE. 2022.04.25본문
Part 04. 진리의 샘
Chapter 18. 천년왕국에 대하여
계시록에 보면 천년왕국에 대하여 여러 군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천년왕국은 하나님과 마귀의 마지막 싸움인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순교자들과 진실한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할 때 이루어지는 것으로, 이것은 아마겟돈 전쟁을 마치고 하나님께서 주재하시는 천국과는 다릅니다.
이 천년왕국은 읽는 사람들이 알아듣기 쉽도록 표현한 말이며, 따라서 어떤 나라를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천 년이라는 시간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곳은 영의 세계라, 세상의 시간관념과는 판이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 왕국을 하나의 아름다운 성으로 비유하고, 이 성은 어린 양의 아내로 상징하고 있습니다.(계21:9-10) 즉 사도 요한이 이상 중에 천사에게 이끌려 높은 산에 올라가서 본 거룩한 예루살렘 성은 눈부신 보석으로 단장되어 있는데, 벽돌로 하나하나 쌓아 올라간 것이 아니라, 어린 양의 아내로 되어 있습니다.
즉 주의 신부가 바로 벽돌의 역할을 하며, 그 수가 14만 4천입니다. 그리고 이 성은 14만 4천의 신부의 수가 다 채워질 때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 성은 하나님과 주님께서 거하시는 집으로, 이를테면 시아버지 격인 하나님을 평안히 모시려면 14만 4천이라는 며느리 곧 ‘하늘의 군대’가 있어야 합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육적으로 역사하였으므로, 선지자들도 영의 세계를 잘 몰랐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아내가 죽자 그토록 애통해 했으며, 솔로몬은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 육적으로 영화(榮華)의 극치에 이르렀습니다. 그만큼 육을 중요시했던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영을 모르니까 육을 위주로 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권능도 육을 위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홍해를 가르고, 해를 멈추는 등, 이런 이적이 나타나면 사람들은 금세 눈이 휘둥그레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이런 육적인 권능은 그다지 대단한 것이 못 됩니다.
땅의 것을 마귀가 차지한 후로는 육적인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경륜을 이루는 도구로서 유용할 뿐, 그 이상의 가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대단히 높이 평가하는 진, 선, 미(眞, 善, 美)도 당신의 은총에서 벗어나 단지 인간의 것에 머물러 있을진대, 별로 대견하게 여기시지 않습니다.
이 진, 선, 미의 3자를 아울러 거느린 ‘인격’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인격이 훌륭하여도 그것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못 되는 이상, 하나님 앞에 내세울만한 가치는 못 됩니다. 그렇다고 나는 인격이 지닌 가치를 과소평가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것은 하나님의 빛을 드러낼 때 큰 가치를 갖게 되지만, 인간의 위대함을 나타내는데 그치면 신앙 가운데서는 오히려 없느니만 못합니다. 그러므로 주님도 “사람 앞에 높임을 받는 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다.”(눅16:15)고 말씀했습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편에서 마귀와 싸워 이길 수 있는 ‘하늘의 군대’가 되는 성도입니다. 우리가 성경 66권을 통하여 하나님의 움직임을 세밀히 검토해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원하시고, 이것을 위해 역사하셨고, 또 지금도 역사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모르면 인간의 눈으로 하나님의 일을 판단하기 때문에 오해와 독단과 착각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우리가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것은 이런 하나님 중심의 가치관(價値觀)을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의 군대’를 중요시하시는 것도 결국 당신의 원대한 경륜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즉 그것은 땅을 회복하려는 목적의식(目的意識)과 결부되어 있습니다.(행3:21) 그러므로 영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종은 육을 다스려 나가는 하나님의 종과는 직분상 질적으로 큰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고 사람들이 왈가왈부하니 참 문제입니다. 저들은 영의 세계를 그다지 중요시하지 않습니다. 아니 그것이 있는지 없는지도 분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눈에 잘 뜨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계시록의 비밀이 터져 나오는 세대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마귀가 겨루는 2차 전쟁에 매듭을 짓고, 불원간에 3차 전쟁으로 넘어가는 때입니다. 이때 주인공은 곧 계시록에 기록된 두 증거자입니다.(계11:3 참조)
이들은 마귀가 득세하는 일정한 기간(한 때, 두 때, 반 때)에 죽임을 당했다가 다시 살아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되어 있는데, 이 죽음은 아주 죽어서 없어지는 그런 죽음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영의 세계에서 죽음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죽임을 당한 곳이 역사적으로 큰 비극이 일어난 소돔과 애굽과 십자가에 못 박힌 곳이라고 상징적으로 표시한 것을 보더라도, 그 죽음의 성격과 내용을 알 수 있습니다. 즉 그 죽음은 마귀의 때에 천군(天軍)의 앞장을 선 두 증인이 크게 해침을 당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죽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또 하나님께서 이들 두 증인을 다시 일으키시는 것으로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모세와 주님과 두 증인은 이 땅에 세대를 달리하여 차례로 나타나 영적으로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즉 모세가 한 일을 이어받은 분이 주님이고, 주님이 하신 일을 이어받은 이가 두 증인입니다. 다시 말해서 모세의 율법을 더욱 온전케 한 것이 주님이고, 주님의 율법을 마무리 짓는 것이 두 증인입니다.
이것은 물론 하나님과의 언약 가운데 이루어지는 일이지만, 하나의 획기적(劃期的)인 역사이며 매우 어려운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세례 요한과 힘을 합쳐서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두 분 다 성경적인 인물이며, 성령으로 잉태된 분입니다.
두 증인도 역시 성경적인 인물이며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언약 가운데 움직이는 것도 주님이나 세례 요한과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들은 모두 성경에 미리 예언되어 있는 인물들입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계2:17) 이 말씀에서 ‘또’라는 접속사(接續詞)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이긴자에게 ‘만나와 흰 돌’을 주겠다는 것이 아니라, ‘만나와 또 흰 돌’이라 하여, 만나와 흰 돌을 끊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즉 두 증거자의 사명을 만나의 시대와 흰 돌의 시대로 갈라놓은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앞선 증거자는 하늘의 만나를 흡족히 내려 그 권능을 보여줌으로써 이것이 무슨 역사이며, 증거자가 어떤 존재인지 밝히는 데 주력하고, 나중 증거자는 흰 돌을 받아 말씀으로 장차 이루어질 일을 증거하는 동시에, 영적으로 다듬어 세우는 데 주력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베드로가 주를 증거하여 하나님의 아들임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지시키는 데 주력하고, 바울이 주님의 새로운 법도를 선포한 것과 비슷합니다.
지금은 흰 돌의 시대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고, 마귀가 얼마나 극성을 부리며, 앞으로 하나님의 경륜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이 밖에 중요한 영적인 문제가 무엇인가를 소상히 가르치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여러분에게 알아야 할 것을 알려 주는 한편, 갖춰야 할 것을 갖추게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필요한 것이 영의 양식입니다.
그리하여 말씀을 전하고 성령을 부어 주 앞에 다듬어 세우게 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말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 사실이 그러하냐? 여기에 대해서는 여러분이 더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편에서 마귀와 싸우려면 무기가 있어야 합니다. 맨주먹으로 전쟁하러 나갈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이 무기를 마련하는 중에 있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가리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엡6:13)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십자가의 군병이 되어 하나님의 편에서 마귀와 싸워 이기기 위해서는 온 몸을 전신갑주로 중무장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진리로 허리띠를 매고 성령의 검(말씀)을 손에 들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무장을 시키는 사령관이 바로 이긴자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군대를 모집하는 기간입니다. 전에는 순교해야만 십자가의 군병, 곧 흰 세마포 옷을 입을 수 있었지만, 오늘날 순교하지 않아도 흰 세마포 옷을 입을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요컨대 입혀주는 자가 나타났기 때문에 입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흰 세마포 옷은 몸에 새까맣게 때가 낀 사람이 입으면 금세 더러워집니다. 그래서 이 은혜 가운데 부름을 받은 여러분은 현재 때를 벗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나면서부터 숯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갓 난 어린애를 안찰해도 몹시 아파하는 것을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이 숯덩이는 주의 피가 아니고서는 씻을 길이 없습니다.
이 흰 세마포 옷은 천년왕국에 들어갈 때 입는 예복입니다. 그러므로 이 예복 없이는 그 나라에 갈 수 없습니다.(마22:12) 여러분이 이 에덴성회에서 힘쓰고 애쓰는 것은 오직 이 예복을 마련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이 예복을 혼자서 마련하려면 순교하는 도리밖에 없으나, 이 예복을 ‘입게 하는 자’가 나타나면 순교하지 않아도 입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때를 만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