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 Part 01 - Chapter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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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2.09.23
[4권] Part 01 - Chapter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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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1. 흰 돌의 증언  

Chapter 3. 적(敵)을 알라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4:7) 성경 66권을 통하여 제일 많이 등장하는 낱말의 하나가 마귀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인류의 역사 자체가 하나님과 마귀의 싸움이요, 이에 대한 기록이 바로 성경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마귀의 위력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그 농간을 모르고 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육신을 입고 살며, 마귀는 영체라 우리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있을 법한 일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이 대적(大敵)에 대한 경계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오늘날 지구상에 약 40억의 인구가 살고 있지만, 이들이 하나로 뭉쳐서 대결해도 마귀 새끼 한 마리도 물리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나마 여러분을 상대로 싸우는 마귀는 졸개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도 여러분은 쩔쩔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편의 위계(位階) 하나님, 주님, 이긴자, 네 생물, 24장로, 주의 아내 가 있는 것처럼, 마귀의 편에도 계급 (), 짐승, 음녀, 술객 이 있으며, 그 위력은 양자가 거의 비등하며, 마귀는 창조만 못할 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대부분 모방한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이것은 한동안(한 때, 두 때, 반 때)이나마 의()의 세력이 마귀에게 꺾이는 것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11:7)

 

하나님이 용과 정면 대결을 피하는 것도 설사 하나님께서 승리를 거두더라도 어느 정도의 타격을 면치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여호와께서 직접 마귀를 때려 부수는 장면을 성경에서 보신 일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당신이 부리는 천사나 당신의 사람을 내세워 역사하시며, 마지막 아마겟돈 전쟁에도 주님은 나서지만 하나님은 어디까지나 배후에서 힘이 되어 주실 뿐입니다. 우리는 이 마귀의 세력이 얼마나 큰가를 잘 알아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마귀와 싸워야 하는가? 과히 걱정할 것은 없습니다. 주의 피가 건재하니까요. 즉 마귀는 주의 피 권세로 능히 대적할 수 있고, 또 물리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우리는 주의 피 값으로 마귀를 무찌를 수 있게 되었으니 이 땅에서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은 뜻대로 척척 이루어질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기 대하여 우리는 아니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 자신이 아직도 예배를 드릴 적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짐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하고 기도하고 있는 사실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럼 마귀를 무찌를 수 있는 무기()가 우리 손에 쥐어졌는데, 무엇 때문에 우리는 아직도 마귀와 싸워야 하며, 하늘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을까요? 그것은 적대세력(마귀)이 그만큼 강하기 때문입니다.

 

이 마귀를 세상에서는 심리학적으로 해석하여 고약한 마음씨, 즉 악으로 기울어지려는 마음의 충동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이라고 보기도 하지만, 마귀는 엄연히 살아서 활동하는 악의 원흉입니다. 즉 그것은 하나님이나 천사와 마찬가지로 영체로 존재합니다.

 

그리하여 창세 이전부터 하나님의 적수(敵手)가 되어 왔으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물론(4:8-9) 공중 권세도 잡고(2:2) 거짓 이적을 행하며(16:14, 살후2:9) 성경을 비뚜로 해석합니다.

 

오늘날 거짓 것들이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성경 구절을 부분적으로 교묘히 이용하고, 여기에 약간의 이적까지 곁들여 선량한 백성들을 미혹하는 것은 모두가 이 마귀의 장난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새로 무슨 역사가 일어났다 하면 으레 백안시(白眼視)하고 코웃음부터 치는 것도 당연합니다.

 

이래저래 우리의 역사는 어려움을 겪게 마련입니다. 이런 역경을 뚫고 맨주먹으로 이만큼이라도 자라게 된 것은 실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께서 하시는 일이니 망정이지, 인간 이영수가 이 단을 지킨다면 지금쯤 다 떨어져 나가고 한 사람도 남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한편으로는 왜 하나님의 역사가 그렇게 빈약하냐고 비웃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것은 주로 우리를 도깨비로 몰면서 남들도 가지 못하게 가로막는 자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트집이요, 모략입니다. 참 딱한 친구들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긴 그들은 그렇게 말할 만도 합니다.

 

배운 것이 그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는 조용히 생각해 봅니다. 내가 만일 저들의 위치에 있다면 어떠했을까? 나 역시 그들과 같은 언동을 취했을 것입니다. 적어도 그럴 공산이 큽니다. ?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14:8)는 성경 말씀이 바로 오늘날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것을 나도 주께서 가르쳐 주시기 전에는 몰랐습니다. 내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환히 알고 있는 것은 이처럼 주께서 가르쳐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고 내가 무슨 수로 성경을 그렇게 깊이 알 수 있겠습니까?

 

성경은 공부해서 아는 게 아닙니다. 그야 물론 공부하면 공부 안 한 것보다야 나을 것입니다. 아니 성경 66권을 천 번쯤 읽으면 구절들을 입으로 줄줄 외울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뜻을 모르는 구절은 그대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성경을 안다는 것은 이렇게 성경의 장절에 밝다는 말이 아닙니다. 성경의 알맹이, 즉 그 큰 줄기(大脈)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줄기를 알면 가지는 저절로 알게 마련입니다. 이처럼 성경의 핵심을 아는 것은 자기 머리로는 안 됩니다. 성령을 충만히 받아야 합니다. 내가 성경에 밝은 것은 요컨대 성경 기자인 선지자나 사도들과 영적으로 동창생이기 때문입니다.

 

마귀도 성경을 잘 압니다. 성경에 가려 놓은 대목이 많은 것은 마귀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성경에 가려진 이런 여호와의 비밀은 드러내지 못합니다. 이것도 영을 분별하는 척도의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즉 성경에 감춰진 여호와의 비밀의 말씀을 드러내느냐, 아니면 성경을 아전인수 격으로 자기에게만 유리하게 풀이하느냐에 따라 성령의 역사와 마귀의 역사를 구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주께서 자신을 들어 쓰시는 것은 하나님의 속에 감추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3:9)고 말하였습니다. 하나님의 큰 종은 계시로 이 비밀을 알게 하여(3;3) 하나님을 공경하는 모든 백성들에게 전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말씀을 전하는 한편 이들에게 안수하여 성령을 부어주었습니다.(19:6) 그러나 사도시대의 안수는 이미 다 지나간 과거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과는 직접 관계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2천 년 전에 죽은 바울을 여기 불러다가 안수를 받을 겁니까? 안 될 말입니다. 

 

우리가 오늘날 새로운 신학을 요구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역사가 어떻게 마무리되고, 주님이 오실 수 있는 여건이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갖출 수 있으며, 하늘나라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지는가, 하는 등등의 문제에 대하여 좀 더 소상히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성경에 많이 가려져 있으며, 아무리 앞뒤를 맞춰가며 연구해도 인간의 머리만으로는 일일이 해명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아 감추었던 여호와의 비밀을 터뜨리는 주의 종이 나타나야 합니다. 이 주의 종이 곧 계시록에 나오는 이긴자입니다. 전하는 자가 없으면 듣지 못하고, 보내심을 받지 않았으면 전할 수 없습니다.(10:14)

 

일찍이 주님은 당신의 피로 구원의 길을 여신 후로, 이 이긴자가 나타나 당신이 다시 올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기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오늘날은 이 이긴자가 나타나 불과 이슬과 생수의 강한 성령으로 역사하는 때입니다. 더구나 지금은 성령이 과거보다 몇 배나 강하게 역사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항의를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성령이면 성령이지, 강한 성령이 따로 있고 약한 성령이 따로 있느냐, 하고 말입니다. 이것은 잘못된 생각으로, 같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는 성령의 역사라고 하더라도 그 영향력에 차이가 있으며, 또 있어야 합니다.

 

지금은 마귀가 상대적으로 강한 무기를 들고 나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마귀가 서로 군비 경쟁을 한다고 할까요? 아무튼 사도 시대의 불의 성령쯤은 오늘날 마귀가 별로 무서워하지 않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더러 불의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 병도 고치고 약간의 이적도 행하고 있으나 별로 이렇다 할 성과를 올리지 못하며, 초대교회의 그것과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성령을 남에게 부어준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땅에서 이긴자를 통하여 내리는 성령은 그 위력에 있어서 일찍이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영적인 말씀도 말씀이지만, 부어주는 성령의 강도에 있어서 앞선 어떤 역사와도 비할 바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마귀와 대결하는 자세부터가 다릅니다.

 

전에는 마귀를 되도록 피했으나, 지금은 정면으로 도전합니다. 여러분, 마귀가 무서워 도망치는 것과 직접 도전해 쳐부수는 것과 어느 쪽이 강하겠습니까? 삼척동자라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예를 들어, 전에는 미친 사람을 가운데 놓고 성령을 받은 성도들이 모여 예배를 보면 병은 낫지만 대신 그 마귀가 장본인에게서 나와 다른 성한 사람을 침범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이것도 여러분이 목격해서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일이 없습니다. 즉 이 단상을 통하여 역사하는 성령이 한 번 닿으면 마귀의 세력이 그냥 녹아 나가는 것입니다. 그만큼 그 위력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이 손길로 한 번 씻음을 받으면 다시는 좀처럼 사로잡히지 않습니다. 또 그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귀가 차지한 이 죄악 세상에서 마귀와의 싸움을 도저히 감당해낼 수 없습니다. 이 역사가 아직도 준비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불원에 좀 더 분명히 알 날이 올 것입니다.

 

금년은 도약의 해입니다. 여러분은 이 생명줄을 놓치지 말고 각자 자기 위치에서 뛰어 주어야겠습니다. 전도에 힘쓰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영적인 문제는 내게 맡기고 따라만 오십시오. 인간 앞에 잘 보이려고 하거나, 남의 흉을 보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주님을 섭섭하게 해드리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일은 삼가야 합니다. 상대방에게 허물이 있으면 믿음의 형제로서 간곡히 권면하십시오. 그리하여 고치도록 하십시오. 우리는 하나로 똘똘 뭉쳐서 일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