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 Part 01 - Chapter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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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2.09.23
[4권] Part 01 - Chapter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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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1. 흰 돌의 증언  

Chapter 4. 주님 주변의 여인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주님은 성경적인 인물입니다. 즉 주님에 대해서는 세상에 태어나기 수백 년 전부터 선지자들의 입을 통해 성경에 여러 모로 예언되어 있었습니다.

 

주께서 태어날 곳이며, 그 특이한 생활 조건과 성장 과정, 하늘의 도를 전하는 모습,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후의 모든 일들에 관하여 성경에 소상히 기록되어 있으며, 주님은 예언된 그대로 와서 그대로 움직이다가 그대로 가신 것입니다.

 

이밖에도, 주님의 경우처럼 소상하지는 않지만, 성경에 미리 예언된 인물로는 세례 요한과 감람나무가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초림주의 길 예비자이며, 감람나무는 재림주의 길 예비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에 대하여 어느 정도 알기 때문에 주님은 얼마나 위풍이 있고, 또 주를 생전에 가까이 모신 제자들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었을까 하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 당시에는 주님도 다른 사람 눈에 별다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주님은 초라한 시골 목수에 불과하였으며, 그를 따르는 측근자라야 세례 요한을 제외하고는 어부나 세리(稅吏)와 같은 보잘것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세례 요한이 초림주의 길 예비자로서 제 구실을 올바로 하지 못하여 주께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으로 말하면 하늘의 사람이며, 성경에 예언된 대로 엘리야의 분신으로 이 땅에 왔던 것입니다.(17:12)

 

그는 모태에서부터 성령이 충만했으며, 지체 높은 제사장의 가문에 태어났으므로 구태여 번거롭게 이적과 기사를 해 보여 자기의 존재를 증거할 필요를 느끼지 않을 정도로 위세가 당당하였으므로, 당시의 많은 세도가와 식자층이 그를 따랐습니다. 만일 세례 요한이 끝까지 주님을 증거하여 이들을 고스란히 주의 신봉자로 넘겨주었던들 주님은 일해 나가기가 한결 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못하여, 주님을 증거한 세례 요한까지도 주님을 의심하는 바람에 많은 일꾼들이 주님을 외면하고 결국 세례 요한 자신이 비참한 최후를 마쳤을 뿐만 아니라, 죽어서도 하늘나라에서의 지위가 크게 격하되었던 것입니다.(11:11)

 

어쨌든 당시에 내로라하는 자들은 다 주님을 멀리했습니다. 덕분에 주님의 제자를 비롯하여 그 측근들은 당시에 하류층에 속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것은 주께서 일부러 그렇게 하신 것은 아닙니다.

 

이런 보잘것없는 사람들이 하긴 하나님이 인간을 평가하는 안목과 우리의 그것 사이에는 거리가 멀지만 하나님의 아들을 직접 가까이 모시고 대화를 나눌 수 있었으니 얼마나 복된 일이겠습니까?

 

반면에 같은 고장에 살면서도 주님을 모르고 일생을 보낸 수많은 사람들은 얼마나 통탄할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세상 일은 종이 한 장의 차이로 큰 행운에 접할 수도 있고, 불행에 허덕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나는 주님을 가까이 대한 사람들 중에서 특히 몇 사람의 여인에 대해 간단히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성경에 보면 주님과 가까이 대화를 나눈 여인은, 육적인 모친 마리아를 제외하면, 서너 사람을 꼽을 수 있습니다.

 

기생 막달라 마리아와, 간음한 여자와, 사마리아 여인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들도 한결같이 미천하기 짝이 없어,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상종도 하지 않는 그런 부류의 여인들이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로 말하면, 갈릴리 호숫가의 막달라 출신의 기생입니다. 그녀가 자기 속에 들어 있는 일곱 마귀를 내쫓은 주님을 얼마나 사모하고 존경하였는가에 대해서는 눈물로 주님의 발을 적시고, 머리칼로 씻고, 그 발에 입을 맞추고, 값진 향유를 부은 것으로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7:38)

 

그녀는 주님의 발에 값진 향유를 바른 것이 아니라 들이부었습니다. 주님은 그녀의 전부였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위해서라면 아까울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녀는 기생의 몸으로 많은 사나이를 가까이하였으나, 그들은 저마다 자기의 육신을 일시적으로 향락하면 그만이었으므로, 주님이 인격적으로 그녀를 크게 압도해 버렸으리라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는 주님을 영적으로는 잘 알지 못하고, 다만 그 인격과 정()에 끌려 따랐을 뿐입니다.(26:32 참조) 주께서는 생전에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하였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하에 어디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인이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라.”(26:13)

 

하나님의 아들이 일개 기생을 위해 이렇게 말씀했다면 그녀가 어떤 여자이며, 주의 사업에 얼마나 공이 컸던가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사실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의 재정적인 후견인(後見人)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주님의 전도 활동에 많은 뒷바라지를 해 드렸습니다.(8:2)

 

그리하여 자연히 막달라 마리아의 발언권이 커지자 제자들은 이러한 그녀를 속으로 은근히 시기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이 그녀의 오라비 나사로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그를 살리기 위해 제자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먼 길을 걸어서 나사로가 있는 베다니로 찾아간 것으로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11:11)

 

성경에 보면 한 여인이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은 사건이 나옵니다. 그녀는 주님을 정면으로 대하지 못하고 향유를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향유를 부었습니다.(7:38)

 

당신의 발에 값진 향유를 붓는 것을 묵인하는 주님을 옆에서 바라보던 바리새인은 속으로 이 분이 정말 선지자라면 자기 발을 만지는 여자가 얼마나 천한 사람인지 알고 근처에도 오지 못하게 할 텐데, 그걸 모르는 것을 보니 선지자도 아무것도 아니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7:39)

 

여기서 이 여인이 기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의 태도는 어떠합니까? 주님을 떠보기 위해 선지자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라는 명목으로 초대한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 바탕이 이러니, 어떻게 은혜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이런 사람에게는 은혜가 가지 않습니다.

 

주님은 이런 초대에 마지못해 응하기는 했지만, 유쾌할 리가 만무합니다. 주님은 저들의 심정을 재빨리 알아차리고 바리새인 시몬에게, 많은 빚을 탕감 받은 자가 더욱 고맙게 여긴다는 비유를 들어 말씀하시고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7:47) 이 경우에 바리새인들이 천하게 여기는 이 기생의 죄는 사해진 반면에 바리새인들은 영원히 지옥 불을 면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이 시몬은 아마 마음속으로 주님과 기생의 거동을 몹시 쑥스럽게 여겼던 모양입니다. 이런 그에게 주께서는 사랑을 앞세워 여인의 행위를 옹호하였습니다. 이것은 주께서 보는 눈과 인간의 사고방식이 얼마나 다른가를 보여주는 한 장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바리새인의 누룩을 조심하라.”(16:6)는 말씀의 배경을 이런 데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음에 간음한 여인을 주께서 어떻게 다루었는가를 봅시다. 하루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하다가 잡힌 여인을 주님에게 끌고 와서,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주님을 책잡기 위해서였습니다.

 

즉 모세의 율법에는 간음한 여자는 돌로 쳐 죽이게 되어 있는데, 주께서 그대로 하라고 지시한다면,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구원이 없다.”는 주님의 가르침은 거짓말이요, 여인을 놓아준다면 주님은 모세의 율법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다는 비난을 면할 도리가 없게 됩니다.

 

그러니까 저들의 생각으로는, 주님을 진퇴양난(進退兩難)의 곤경에 빠뜨릴 줄 알고, 속으로 히죽거리면서 주님의 거동을 예의 주시했던 것입니다.

 

주님이 저들의 이런 꿍꿍이속을 모를 리가 없습니다. 주께서는 저들의 물음에 일단 글씨로 표시하는 여유를 보이고 나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8:7)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은 저들의 허()를 찌르는 창끝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들은 모세의 율법을 악용하여 여인 관계가 지저분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즉 모세의 율법은 이혼을 허용하였으므로(24:1, 3:1) 수틀리면 이혼 증서 한 장으로 아내를 내쫓기가 일쑤였으며(5:31, 10:4) 말로는 간음을 통박하면서도 세도깨나 있는 사람 치고 뒤가 구리지 않은 자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저들은 주님의 말씀에 찔끔하여 슬금슬금 꽁무니를 뺄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나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8:11) 이것이 그 여인에 대한 주님의 당부였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다시는이라는 말씀에 유의해야겠습니다. 죄 사함을 받고 다시 범죄하면 그때에는 큰 화근이 된다는 경고가 이 말씀 가운데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다음에 주님이 사마리아 여인을 어떻게 대했는지 봅시다. 사마리아는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망한 뒤에 이주해온 이방인들이었습니다.(왕하17:24) 그러므로 유대인은 이들과는 상종도 하지 않는 것이 하나의 풍습이자 법도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런 사마리아 여인을 아무 거리낌 없이 대할 뿐만 아니라, 물까지 받아 마셨던 것입니다. 이 때 주님과 여인 사이에 나눈 대화를 간추려 보면

 

물 좀 줘요.”

보아하니 유대 사람 같은데, 어찌 저와 같은 천한 계집에게 물을 달라

고 하십니까?”

임자가 만일 내가 누군지 알면 생수를 얻어 갈 텐데.”

그릇도 없고 우물은 깊은데 어떻게 생수를 주려고 하십니까?”

내가 주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는 걸 모르는군.

 

이때 제자들은 식량을 얻으러 동리로 갔다가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주님과 사마리아 여인을 번갈아 바라보면서 마음속으로 매우 언짢게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감히 입을 열어 주님에게 물어보지는 못했습니다. 죄인을 부르러 오신 주님은 짧은 기간이나마 공인(公人)으로서 활동하는 동안에, 이처럼 스캔들의 주인공이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