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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2.01.14본문
Part 01. 심원한 경륜
Chapter 02. 제사에 대하여 (1)
1) 가인의 제사와 아벨의 제사
우리가 제단에 나와 예배를 드리는 것은 영적인 주의 아내가 될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입니다. 이 아내가 될 자격자는 빛나는 흰 세마포 옷을 입게 되는데, 이 옷을 입는 것은 자기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은혜 가운데 입혀지게 마련입니다.(계19:8)
여호와께서 구약시대에 많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역사하시고, 신약시대에 주의 종을 내세워 큰 성령의 역사를 일으키신 것도 다 이 빛나는 세마포 옷을 입혀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인간을 지으신 것은 영광을 받기 위해서입니다.(사43:7) 그러므로 여호와를 섬기는 우리로서는 언제나 여호와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힘써야 합니다. 제사(예배)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유대를 강화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의 하나이며,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드리는 제사를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은 향내 나는 제사이며, 결코 인간의 냄새를 풍기는 제사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를 올릴 때 신령한 제사가 될 수 있도록 정성을 기울여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여호와께서 아벨의 제사는 받았으나,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았습니다.(창4:4-5) 왜 그랬을까요? 가인은 평소에 행실이 고약하여 정성껏 제사를 드리지 못하고, 아벨은 경건하고 선량한 생활을 하면서 정성을 다하여 제사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좋은 거울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바와 같이, 가인과 아벨은 성경에 아담, 하와의 아들로 나와 있습니다.(창4:1) 아담, 하와가 여호와의 명령에 불순종한 죄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기는 했지만, 여호와께서는 이들에게 아기를 낳고 기르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고, 이들이 땅에서 번식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가인이 아우 아벨을 시기하여 쳐 죽이고, 여호와의 노여움을 사서 사방을 유리방황하게 되었을 때에도 여호와께서는 가인을 이방인의 손에서 보호해 주셨습니다. “주께서 오늘 땅에서 나를 쫒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뵙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여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창4:14) 이 말씀에 보면,
가인은 여호와의 은총 아래 여호와를 볼 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세도 하나님의 뒷모습밖에는 보지 못했는데, 가인은 여호와를 만나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그만큼 가인에게는 죄―유전죄는 물론 자범죄도―가 적었던 것입니다. 죄인이 여호와의 얼굴을 보면 그 광휘에 짓눌려 죽어버리게 마련입니다.
인용한 말씀 중에 ‘무릇 나를 만나는 자’라는 대목에서 우리는 가인과 아벨 이외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지 않은 자들입니다.
여호와께서 인간을 지으신 후로 오랜 세월을 두고 인간이 미개하여 상종하지 않으시다가, 청동으로 여러 가지 도구를 만들만큼 인지가 발달한 연후에 비로소 인간을 통하여 역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지금으로부터 약 6천 년 전이며, 이것은 과학과도 부합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가인의 다음 세대에 와서 사람들은 처음으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게 되었습니다.(창4:26) 다시 말하면, 이때 와서야 비로소 사람들 사이에 신앙의 싹이 움트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살아가는 이들은 오랜 장수를 누리면서 급속도로 번식해 갔으나, 이들이 음란에 빠져 하나님이 외면하게 되자, 전에도 말씀드린 대로, 인간의 수명이 120세로 줄어들게 되었습니다.(창6:1-3)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못 받는데 따라 이처럼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가인과 아벨은 이런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거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설사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서 추방되는 몸일지라도, 하나님은 그가 미개인의 손에 비참한 죽음을 당하는 것을 모면케 해 주었던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은혜 가운데 있던 가인을 이방 구역으로 내쫓으면서도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7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어, 만나는 누구에게서든지 죽임을 면케 하셨습니다.(창4:15) 이것은 가인을 보호하기 위한 여호와의 표시이지만, 선량한 성도의 이마에도 여호와께서는 이런 표시를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주신 이 육적인 표는 신약시대에 들어와 영적인 표인 인침을 상징합니다. “너희도 … 복음을 듣고 그 안에 또한 약속의 성령으로 인침을 받았으니,”(엡1:13) 하는 인침이 그것입니다. 이 인침은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거하는 빛의 아들임을 인정하는 기름 부음을 가리키는 것으로, 마귀가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한편, 마귀도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는 자에게 표를 주어 성도들과 구별합니다.(계19:20) 그리하여 때가 되면 이 표에 의해 여호와의 편에 선 자와 마귀의 편에 선 자가 완전히 갈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인간에게 당신의 표를 하시는 것은 멜기세덱의 반열에 참여하는 하늘의 군대, 14만 4천을 채워 새 하늘나라를 세우기 위해서이며,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는 가인 때부터 이미 시작하여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또한 인간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는 가인과 아벨이 여호와에게 제사를 드릴 때 시작된 것입니다. 여호와를 공경하는 마음이 생기자 여호와에게 제사를 올리고, 제사를 올림으로써 여호와와 교류하기 시작했으나, 아우를 시기하여 쳐 죽일 정도로 난폭한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았다는 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좋은 교훈이라고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드리는 제사가 헛수고에 그치지 않도록 부디 말과 행실을 단속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2) 유월절의 제사
유월절은 모세가 여호와의 지시를 받아, 애굽에서 매여 살며 갖은 고난을 겪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켜 준 것을 기념하는 절기로, 오순절, 초막절과 아울러 구약시대의 큰 명절의 하나입니다. 오순절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여호와로부터 10계명을 받은 기념일이며, 초막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추수하고 십일조를 드리는 날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유월절은 이 세 명절 중에서도 가장 큰 축제일로, 여호와의 명령을 받아 제일 먼저 제사를 드린 점에서 그 이전의 제사와는 성격이 다릅니다. “애굽 땅에서 나온 다음 해 정월에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에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으로 유월절을 그 정기에 지키게 하라.”(민9:1-2)
여기서 말하는 정기란 1월 14일 저녁을 가리킵니다. 이때 시체를 만져서 몸이 더러워졌거나 멀리 여행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들이 여호와에게 예물을 올리게 했으며, 이 규례를 어기는 자는 형벌을 받게 되어 있었습니다.(민9:13)
모세가 애굽인들의 압박을 받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켜 준 경위는,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순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하라는 지시를 받고 애굽의 바로에게 가서,
자신이 하나님의 사자로 왔다는 것을 바로에게 알리기 위해, 인간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희한한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 보였으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으므로’(출9:12) 바로는 좀처럼 모세를 여호와의 사자로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무엇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만들었을까요? 그것은 요컨대 여호와께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 보이기 위해서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상대방의 마음이 강퍅하여 모세가 여호와의 사자임을 계속해서 부인하게 만들어야만 이를 납득시키기 위해 더욱 많은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여호와의 크신 권능을 과시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출12:11 참조)
만일 그렇지 않고, 모세가 지팡이를 던져 뱀을 만드는 정도로 바로가 금세 탄복하여 모세가 여호와의 사자임을 인정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 풀어주었다면, 여호와의 위대한 권능을 더는 나타내 보일 기회가 없어지며, 따라서 여호와의 권능은 술객도 능히 할 수 있는 그런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졌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을 우러러보기는커녕, 술객과 동일시하여도 할 말이 없게 됩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일부러 바로의 목을 곧게 만들어, 좀처럼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주지 않도록 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부리는 신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감동의 신과 격동의 신이 그것입니다. 전자가 사람에게 임하면 마음이 감화 감동하여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게 합니다.”(롬15:2) 우리의 기도만 해도,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시는”(롬8:26) 것입니다. 이 ‘성령의 탄식’은 다름 아닌 여호와께서 부리는 감동의 신의 조화입니다.
한편, 격동의 신은 여호와께서 부리는 악신으로,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당신의 권능을 좀 더 크게 드러내 보이시기 위해 부리게 됩니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크게 역사하실 때 흔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리는 악신이 사울에게 힘 있게 내리며 …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다윗을 벽에 박으리라.’ 하고 그 창을 던졌으나, 다윗이 그 앞에서 두 번 피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사울을 떠나 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사울이 그를 두려워한지라.”(삼상18:10-12)
사울과 다윗은 똑같이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았으나, 사울이 범죄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악신을 사울에게 주어, 당신께서 같이하시는 다윗을 드러내 보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다윗에게도 여호와께서 당신의 영광을 더욱 드러내기 위해 “사단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격동하여”(대상21:1)
이스라엘의 인구조사를 시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인간의 힘으로 일하는 것이 잘못된 처사임을 깨닫게 했던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여호와의 심오한 섭리는 실로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 모세가 애굽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끌어낼 때만 해도 그렇습니다.
바로의 마음을 마냥 격동시켜 충분히 여호와의 권능을 드러내 보이고 나서, 즉 모세가 아홉 번째로 여호와의 권능에 의해 애굽 땅을 사흘 동안 어둠 속에 몰아넣게 한 다음에도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여(출10:27)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주지 않도록 유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는 집 문설주에 어린 양의 피를 뿌리게 하여(출12:22) 애굽인과 구별하고,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고 말하여 제물로 드린 양고기를 구워먹게 했습니다.
이윽고 밤중에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 그리고 심지어 가축의 처음 난 새끼까지 모조리 죽여 버리니”(출12:29) 그제야 바로는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 주겠다고 통고했던 것입니다.
애굽에서 압제를 받으며 살던 이스라엘 민족이 문설주에 어린 양의 피를 뿌려 죽음을 면한 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좋은 암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이 어린 양은 주님의 그림자이며, 그 피로 말미암아 우리는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다.”(요6:53)고 하셨습니다.
이 피는 주의 성령의 은혜를 가리키며, 성령의 인침을 받아야 주의 아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애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직전에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출발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춘 것처럼, 주를 맞을 우리도 ‘진리로 허리띠를 띠고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을 해야 합니다.(엡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