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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2.01.27본문
Part 01. 심원한 경륜
Chapter 02. 제사에 대하여 (2)
3) 마노아의 번제
모세의 뒤를 이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한 기름진 땅 가나안에 들어간 여호수아가 110세에 세상을 떠난 후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차츰 믿음이 식어 다른 신을 섬기게 되었고, 하늘에서는 이를 내려다보시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공경하는 자를 사사로 세워 지역적으로 치리해 나갔습니다.
이들 중에는 사무엘이나 드보라처럼 예언자다운 능력까지도 아울러 지닌 자도 있고, 기드온이나 입다처럼 군사적으로 뛰어난 지도력을 발휘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로 목축 생활을 해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국을 세우자, 이 사사시대는 자연히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삼손으로 말하면 사사기의 마지막 사사로, 그 부친은 마노아라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시에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호와의 눈앞에서 다시 악을 행하므로 그들을 40년 동안이나 블레셋 사람의 손에 붙여(삿13:1) 저들의 압박과 학대를 받게 하셨습니다.
마노아는 하나님을 공경하여 수태하지 못하는 아내를 위해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천사가 마노아의 아내에게 나타나, 장차 아들을 낳으면 성장하여 이스라엘을 블레셋으로부터 건져내게 될 터이니, 술이나 부정한 음식을 일체 입에 대지 말라고 일렀습니다. 이것은 천사가 세례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에게 아들을 낳을 것을 예고할 때 한 말과 비슷합니다.(눅1:15)
마노아가 아내에게서 이 말을 전해 듣고, 어찌 된 영문인지 내막을 상세히 가르쳐 달라고 여호와에게 간구했더니, 여호와께서는 이 간구를 들으시고 밭두렁에 앉아 있는 그의 아내에게 다시 천사를 내려보냈습니다.
그녀가 급히 남편 마노아에게 달려가 전일에 나타났던 그 사람(천사)이 또 왔다고 알리자, 마노아는 아내를 따라 그 사람에게 이르러, 당신이 전에 이 여자에게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고 말한 사람이냐고 물었습니다. 그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어떻게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겠느냐고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마노아는 천사를 알아보지 못하고 저번에 와서 자기 아내에게 한 말과 같은 내용의 대답을 하는지 알아보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가 저번과 똑같은 대답을 하자, 그제야 마노아는 상대방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한편, 아브라함이 자신을 찾아 온 천사에게 송아지를 잡아 진수성찬으로 대접했던 것을 상기하고,(창18:7) 그 사람을 위해 염소 새끼를 잡아서 대접하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가 차라리 그 염소 새끼로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라고 하므로 그렇게 하기로 했지만, 마노아는 아직도 상대방의 정체를 확인하지 못하고, 이름이 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자기를 ‘기묘’라고 부른다고 대답했습니다. 기묘란 신령하다는 뜻입니다.
그럼 그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그는 가브리엘 천사장입니다. 어떻게 알 수 있냐고요? 하늘에서 천사가 맡은 임무는 각각 다른데, 이 천사는 경사스러운 일을 미리 알리는 임무를 맡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알 수 있습니다.
즉 이런 경사스러운 일은 저 요셉의 약혼녀 마리아에게 아들을 낳을 것을 예고한 가브리엘 천사장이 도맡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늙은 아내 사라에게 아들을 낳을 것을 고하고, 사가랴의 늙은 아내 엘리사벳에게 아들을 낳을 것을 고한 것도 이 천사였습니다.
마노아가 천사의 지시대로 반석 위에 제물을 올려놓고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더니, 천사가 이적을 나타내 보였습니다. 즉 제단에서 불꽃이 하늘로 올라가는 동시에, 여호와의 사자가 그 불꽃 가운데로 좇아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삿13:20) 그러자 마노아는 아내와 함께 땅에 엎드리고 이른바 기묘자가 천사, 곧 여호와의 사자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차렸습니다.
마노아는 혹시 곧 죽음을 당하지 않을까 하여 벌벌 떨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를 본 것은 하나님을 본 거나 다름없는데, 하나님을 보면 살 자가 없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출33:20) 마노아의 아내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제사를 받았으니, 죽을 리가 없다고 우겨 남편의 마음을 가라앉혔습니다. 하긴 그렇습니다.
뭔고 하니 마노아가 땅에서 드린 제사가 불꽃으로 하늘에 상달된 동시에, 천사를 하늘로 데려갔으니 말입니다. 이와 같이 땅에서는 제사를 드리고, 하늘에서는 영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4) 상달되지 않은 사울의 제사
삼손이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는 좀 더 당신에게 큰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인물을 땅에서 물색하는 중에, 베냐민 지파에 속하는 기스의 아들 사울을 택하여 통일된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습니다. 그는 머리가 뛰어났을 뿐 아니라 기골이 장대하고 키가 커서 사람들을 어깨 아래로 거느릴 정도였습니다.
그리하여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사무엘을 시켜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로 삼고, 블레셋 사람의 압제를 받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건져내게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와 비슷한 경우로 모세를 연상하게 됩니다. 이때 사울의 나이는 40세였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이스라엘의 초대 임금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여호와께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나이도 지긋하고 천성이 뛰어난데다가 여호와의 기름부음으로 임금이 된 그였지만,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처신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행동하기란 이렇게 어려운 것입니다.
사울이 하나님께 범한 제일 큰 죄는 제사장을 대신해서 외람되이 자기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것이었습니다. 즉 사울이 임금이 된 지 2년 만에 3만의 블레셋 군과 싸울 때, 사무엘이 약속한 시간에 나타나지 않자 궁지에 몰렸습니다. 그는 급한 나머지 손수 하나님께 번제와 화목제를 올렸으니, 이것은 하나님의 법도에 크게 어긋나는 일이었습니다.
설사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아서 일국의 권좌에 오른 사울이라 하더라도 제사를 드릴 권한은 없었습니다. 제사는 제사장이 드리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율례에 벗어난 제사를 하나님께서 받아 주실 리가 만무합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나타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으니 …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삼상13:13-14)고 경고한 것도 당연합니다.
그런데 사울의 실수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아말렉 군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노소와 가축들까지 다 죽이라.”(삼상15:3)는 여호와의 명령을 어겨 살찐 송아지와 양은 여호와께 제물로 바치기 위해 죽이지 않고 남겨 두었습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하나님에 대한 공경심이 대단한 것 같지만, 여호와의 안목으로 보면 이것은 당신의 지시를 어긴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는 사울의 생각은 오히려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는 이와 같이 엄청난 견해 차이가 생기는 수가 있습니다.
사울은 본의는 아니나마 하나님께 불순종의 죄를 범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사울의 큰 잘못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호와께서 사울을 세워 왕으로 삼은 것을 후회한(삼상15:11) 것은 당연합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는 하나님이 후회하셨다는 말을 이상하게 여기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이 후회하시다니, 그까짓 임금 하나쯤 갈아치우면 될 게 아니냐!”고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도 그렇게 간단치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일단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우신 이상, 당신의 위신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을 여느 죄인 다루듯이 할 수는 없습니다. 즉 이 경우에 당신의 위신을 손상시키지 않도록 유의하게 됩니다. 책임이 하나님 자신에게로 돌아가기 쉽기 때문입니다.
사울이 하나님에게 제물로 드리기 위해 하나님의 분부를 어기면서까지 살찐 송아지와 양을 죽이지 않고 남겨둔 데에는 그의 의사만 작용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백성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우겼던 것입니다.(삼상15:24) 그리하여 사울은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기보다 이들의 의견에 동조하여, 그 환심을 사는 쪽을 택하기로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때때로 당하는 유혹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현명한 하나님의 종은 이런 유혹을 잘 분간하여 단호히 물리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부름꾼으로 택함을 받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보다 오히려 자기가 거느리고 있는 백성들의 의견에 귀를 더 기울인다면 이미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했다고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무엘이 사울 왕에게,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에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겠습니까?”(삼상15:22)하고 탓할 법도 한 일입니다.
한편, 이런 사울을 가만히 보고만 계시는 하나님은 결코 아닙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무능한 하나님, 또는 죽은 하나님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작 다윗을 사울의 후계자로 점찍어 놓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하였습니다.(삼상16:14) 이것은 여호와께서 다윗을 사울에게 접선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즉 사울 왕의 신하들로 하여금 거문고를 잘 타는 사람을 시켜 악신을 내쫓게 하면 왕의 번뇌가 사라질 것이라고 진언케 하여, 그 명수인 다윗을 불러들이게 하였던 것입니다. 이때부터 다윗은 궁중의 모든 법도와 예절을 익혀 자기 때에 대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모든 배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여호와의 손길이 움직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울은 차츰 다윗을 멀리하다가, 이윽고 질투하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아주 없애 버리려고 창을 던지기까지 했으나, 다윗은 번번이 몸을 피하여 정면충돌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물론 다윗이 비겁해서가 아니라, 사울이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은 임금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시는 것’(삼상24:6)이라고 주위 사람들을 타일러 사울을 해치지 못하게 했습니다.
설사 사울에게서 하나님의 신이 떠났다고 하더라도, 그는 여느 임금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눈 밖에 났다고 해서 헌신짝같이 버림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잠시나마 당신의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의 신이 임하여 역사하기도 했습니다.(삼상19:23) 그러니 사울이 하나님께서 자기를 버리지 않았다고 착각한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범죄로 말미암아 떠나 있어도 대뜸 버리지는 않고 한동안 보호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따르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리기로 작정한 후에도 여전히 하늘의 만나로 그들을 먹여 살렸던 것입니다.
물론 사울에게도 전과 같이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히 내리지만은 않았습니다. 이것은 사울 자신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한번은 블레셋 군과 싸울 때, 두려운 마음이 앞서 여호와께 힘이 되어주시길 간구하였더니, 여호와께서는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하지 않았던 것입니다.(삼상28:6) 사울은 당황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속으로만 두려워했을 뿐, 일체 그런 내색을 하지 않고, 여전히 이스라엘 임금으로 군림했습니다. 만일 여기서 사울이 여호와께, “주님이시여, 당신께서 내 범죄로 말미암아 나를 멀리하시나이까? 그러시다면 내가 다스리던 당신의 백성을 위해 새 임금을 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고 간구하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여호와께서는 그때 비로소 당신이 진작 다윗을 후계자로 내정했다는 것을 알렸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행동 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대뜸 갈아 치우면 땅에서 일어나는 혼란도 혼란이지만, 여호와의 위신도 깎일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