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권] Part 03 - Chapter 2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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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1.10.16
[2권] Part 03 - Chapter 22 (2)

본문

Part 03. 이긴자에게 허락한 주님의 언약     

Chapter 22. 성전 기둥으로서의 이긴자 (2)


3) 솔로몬 성전

 여러분이 잘 알고 계시는 다윗으로 말하면, 그리스도의 예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양을 친 목자 노릇을 한 것이 그렇고, 이스라엘의 임금이 되어 백성들을 치리한 것이 그렇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목자가 되시고, 영적으로 만민의 왕이 된 것과 흡사합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육적인 후예인 그리스도를 가리켜 다윗의 뿌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계5:5, 22:16)


 다윗은 여호와를 위하여 성전을 지으려고 하였으나, 블레셋과의 싸움으로 평생을 동분서주하면서 피를 너무 많이 흘렸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솔로몬 때까지 성전 건축을 미루었습니다.(대상22:8) 그리고 성전을 짓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으므로 아들 솔로몬이 왕이 되어서도 산당에 가서 분향하는 처지에 있었습니다. 솔로몬은 여호와의 지시에 따라 훌륭한 성전을 짓게 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당신의 사람에게 어떤 지시를 내릴 때에는 반드시 땅의 여건에 따라 알맞게 하십니다. 가령 모세가 광야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가나안 복지로 들어갈 때에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성전이 아니라 장막을 지을 것을 지시하고, 그 규모도 극히 간소하였습니다.(출25:8-27:21)


 그러나 그 후 이스라엘의 초대 임금 사울이 40년 나라를 다스려 어느 정도 기틀을 세우고, 다윗이 블레셋을 쳐서 나라가 다스려 어느 정도 기틀을 세우고, 다윗이 블레셋을 쳐서 나라가 강대해졌으므로 그의 아들 솔로몬은 굉장한 규모의 성전을 건설했습니다.


 다윗은 이방인과의 싸움으로 경황이 없는 가운데서도 금 10만 달란트와 은 100만 달란트를 비롯하여 값진 돌과 재목 등을 준비해 두었습니다(대상22:14) 이것을 환산하면 금, 은만 치더라도 약 50억 불에 해당되는 엄청난 액수가 됩니다.


 다윗은 사재를 상당히 헌금하였고(대상29:4)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의 어른과 천부장 및 백부장, 그리고 관리들도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 헌금하였습니다.(대상29:6)


 솔로몬은 하나님에게 다른 무엇보다도 지혜를 달라고 간구하였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솔로몬에겐 없는 것이 지혜 정도였습니다. 그는 부귀와 권력과 명성을 한 몸에 넘치도록 소유하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간구한 솔로몬을 매우 기특하게 여겼습니다. 아무튼 구약시대에 하나님은 노하기도 잘하시고 선심도 후히 베푸셨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부왕이 장만한 모든 재료를 갖고, 일찍이 여호와께서 부왕 다윗에게 나타나신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성전을 세웠습니다. 


 그 크기로 말하면 길이가 60규빗이고, 폭이 20규빗, 그리고 높이가 30규빗입니다.(왕상6:2) 이를 미터로 계산하면 한 규빗이 약 45센티미터이므로, 길이가 약 27미터, 폭이 약 9미터, 높이가 약 13.5미터 정도이니, 별로 큰 건물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비용이 들게 된 것은 최고의 석재와 목재를 외국에서 구해 오고, 천장에서 바닥에 이르기까지는 온통 금과 은을 입히는 동시에 값진 보석으로 호화찬란하게 꾸몄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값진 돌기둥에 백향목을 입히고 성소, 지성소 사면 벽에 그룹을 아로새겼습니다.(왕상6:23-29) 그룹이란 여호와를 호위하는 영으로, 여호와께서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쫓아내고 화염검으로 지키게 한 것도 이 그룹이었습니다.(창3:24)


 솔로몬이 이 성전을 착공하기 시작한 것은 왕위에 오른 지 4년째 되는 해였으며, 18만의 인원을 동원하여 7년 남짓 걸려서 준공을 하고, 소 2만 2천 두와, 양 12만 마리를 잡아 7일 동안에 걸쳐 성대한 낙성식을 올렸습니다. 솔로몬은 회중 앞에서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해 손을 펴고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여호와여, 천지에 주와 같은 신이 없나이다. 주께서 주의 종 내 아비 다윗에게 허락하신 말씀을 지키시되, 주의 입으로 말씀하신 것을 손으로 이루심이 오늘날과 같으니이다. … 만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주께 범죄하여 적국 앞에 패하게 되어 주께로 돌아와서 주의 이름을 인정하고 이 전에서 주께 빌며 간구하거든 주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시고, 그 열조에게 주신 땅으로 돌아오게 하옵소서."(왕상8:22-53, 대하6:14-42)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물들을 사르고, 성전에 여호와의 영광이 가득하여 제사장도 감히 성전에 들어가지 못하고,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엎드려 여호와께 경배하며 감사를 드렸던 것입니다.(대하7:1-3) 그리고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기도를 들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미 네 기도를 듣고, 이것을 택하여 내게 제사하는 전을 삼았으니 … 내 백성이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를 겸비하고 기도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 


 … 그러나 너희가 만일 내 율례와 명령을 버리고 다른 신을 섬겨 숭배하면 내가 저희에게 준 땅에게 그 뿌리를 뽑아내고, 내 이름을 위하여 거룩하게 한 이 전을 내 앞에서 버려, 모든 민족 중에 속담거리와 이야깃거리가 되게 하리니…."(대하7:12-22)


 그런데 그 후 이 성전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여호와의 말씀 그대로 백성들이 성전을 중심으로 여호와를 경건히 섬기고 그 뜻 가운데 움직일 때에는 여호와께서 같이하시고 이들에게 큰 축복을 내렸으나, 그렇지 않고 백성들이 여호와를 멀리하고 범죄에 빠졌을 때에는 여호와께서는 이 성전에서 떠나고 이방인이 침략하여 약탈해 가도록 하였습니다.


 솔로몬이 세운 성전은 400여 년 동안 여호와께서 같이 하셨으나, 백성들의 믿음이 식어 범죄하고도 뉘우치지 않게 되자 여호와께서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시켜 성전을 파괴해 버리고 소중한 보물을 약탈해 가도록 하셨습니다.(대하36:18-21)


 백성들은 그제야 자기들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크게 통회하였습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부리는 천사가 이를 여호와께 알리고, "여호와께서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려 하나이까? 이를 노하신 지 70년이 되었나이다."하고 아뢰었더니,(슥1:12)


 여호와께서 "내가 긍휼히 여기므로 예루살렘에 돌아왔은즉 내 집이 그 가운데 건축되리니, 예루살렘 위에 먹줄이 치어지리라."(슥1:16) 하고 비로소 성전을 다시 세울 것을 분부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바벨론에 잡혀갔다가 돌아온 스룹바벨이 여호와의 지시에 따라 성전을 다시 지었습니다.(학1:14) 그러자 백성들은 한동안 열심히 여호와를 공경했으나,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다시 희미한 상태에서 범죄에 빠져 여호와의 눈 밖에 나게 되어, 수리아 왕 안디오쿠스가 성전을 탈취하였습니다.


 유대인 마카비가 얼마 후에 수리아군을 물리치고 성전을 수리하여 수전절을 지키게 하였습니다.(요10:22) 그리고 주님 이후에도 적지 않은 흥망과 성쇠를 거듭했습니다.


 이와 같이 솔로몬이 호화찬란한 성전을 지어 여호와에게 영광을 돌린 후로 여러 차례 파괴와 재건의 역사를 되풀이하였는데, 그것은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백성들이 여호와를 섬기는 태도 여하에 따라 일어난 현상이었습니다.


 계시록에 의하면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되는 이긴자 위에 하나님의 이름을 기록한다고 했습니다.(계3:12) 이것은 물론 상징적인 이야기로 그의 육신에 하나님이라고 커다랗게 써 붙인다는 뜻이 아니라, 요컨대 하나님의 큰 일꾼으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성전에 둔 것처럼 여호와의 섭리가 이긴자에게 같이하신다는 영적인 의미입니다.



4) 새 예루살렘 성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입니다. 죽어도 사는 길이 여기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공로나 수도로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흘려주신 피의 권세로 가능한 것입니다.


 흔히 주님은 지금부터 2천 년 전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으로 끝장이 난 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또 건전한 상식의 판단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상식이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만일 주님이 돌아가시고 그만이라면 기독교는 이미 2천 년 전에 끝장이 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주님의 죽음으로 기독교가 끝장난 것이 아니라 구속의 거룩한 은총이 시작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께서 흘리신 피권세로 우리는 또다른 보혜사 성령을 힘입어 생명의 길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성령을 받기 전에는 하룻밤에 세 번씩이나 주님을 부인했으나, 마가의 다락방에서 불과 같은 성령을 받은 후로는 하루에 3천 명씩 회개 시키는 큰 성령의 역사를 일으켰던 것입니다.


 바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안수하면 뭇사람들이 즉시 성령을 받았으며, 기독교 신학의 토대를 완성시킨 하나님의 큰 일꾼이 되었습니다. 모세는 홍해를 가르고 만나를 내리는 큰 이적을 행하였으나 마귀는 한 마리도 내쫓지 못했는데, 바울의 손길에는 마귀를 내쫓는 주의 권세가 같이했던 것입니다. 바울이 모세보다 영적으로는 더 크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우리의 에덴성회는 오직 하나님의 능력만 믿고 갖은 애로와 역경 속에서 참고 견디며 이만큼이라도 자랐습니다. 그것은 여러분들이 이 손길을 통하여 마귀가 쫓겨나고, 성령을 부어 주는 보혈의 은사가 나가고, 빳빳이 굳은 시체가 뽀얗게 변화하는 등,


 주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을 보고 여러분이 날로 변하여 주를 가까이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내가 하는 일이 아니라 주께서 친히 부족한 이 사람을 통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고넬료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또 들어서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는 백부장이요, 의로운 사람으로 온 가족이 하나님을 공경하고, 가난한 사람을 돕는 구제 사업도 많이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직접 그에게 성령을 부어 주신 것이 아니라 베드로를 통하여 성령을 받게 했습니다.(행10:44)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는 이긴자에게 새 예루살렘의 이름을 기록한다고 하였습니다.(계3:12) 새 예루살렘이란 마귀와 싸울 하늘 군병으로 어린 양의 아내로 비유되어 있습니다.(계21:9) 그런데 사도 요한은 성령의 이끌림에 의해 하늘에서 내려오는 이 거룩한 새 예루살렘 성을 보았는데, 


 성문은 12지파가 차지하고 기초석은 12사도가 차지했으며, 그것은 12보석으로 호화찬란하게 꾸며져 대제사장 아론의 옷을 방불한 모습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새 예루셀렘 성은 눈부신 세마포를 두른 어린 양의 아내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것은 물론 상징적인 이야기입니다.


 어린 양의 아내는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로,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않은 자들이며,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하게 되어있습니다.(계20:4) 이 어린 양의 신부의 직분에 세 가지가 있습니다. 심판 권세(계20:4)와 제사장(계20:6)과 왕의 직분이 그것입니다.(계20:6, 22:5)


 그럼 이긴자 위에 새 예루살렘의 이름을 기록한다는 것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새 예루살렘성은 어린 양의 아내를 표시하며, 어린 양의 아내는 신구약시대를 통틀어 순교한 자와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고 그 표를 받지 않는 자들로, 그 이마에 인을 치게 되어있고,(계7:3) 그 인은 앞으로 이루어질 영적 야곱의 12지파, 14만 4천이 받게 된다면,(계7:8) 여기서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즉 이긴자 위에 새 예루살렘, 곧 어린 양의 아내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이긴자가 어린 양의 아내가 될 자들에게 성령의 인을 쳐서 그 수를 채운다는 뜻입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이긴자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 기록된 일곱 가지 주님의 언약이 그대로 하나도 남김없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