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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1.10.24본문
Part 03. 이긴자에게 허락한 주님의 언약
Chapter 22. 성전 기둥으로서의 이긴자 (3)
5) 재림의 길 예비자
세상에서 예수를 믿는 사람을 몇 억으로 헤아리고 있는데, 그들은 대개 쉬운 예수를 믿으려고 합니다. 하긴 성경을 훑어보면 그런 초보자에게나 해당되는 구절도 없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구절을 적당히 인용하여 쉽게 믿고 편안히 구원에 이르는 것으로 가르치며, 따라서 그렇게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좀 수준이 높은 말을 하면 곧 얼굴을 찌푸리고 골치 아파하기가 일쑤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고 마귀의 사슬에서 벗어나, 죽어도 죽지 않게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설사 큰 은혜 가운데 부름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중생, 곧 거듭나기를 강조하시고, 각자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당신의 뒤를 따르라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고 속사람이 변하지 않으면 결국 헛수고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마10:41 참조)
우리는 '은혜'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그런데 은혜란 무엇일까요?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무엇을 받았다, 무엇을 보았다 하는 것도 물론 소중하지만 그것은 모두가 이 속사람을 변화시키기 위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받았느냐, 받았다면 얼마나 받았느냐 하는 기준은 속사람이 얼마나 달라지고 변하였느냐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내가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늘 말씀드리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사랑과 충성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가 그것입니다.(갈5:22) 이것을 요약하면 사랑, 즉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으로 대신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말이 쉽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루하루 마귀와 피나는 싸움을 계속하는 생활을 꾸준히 해 나가야만 비로소 가능한 것입니다. 주께서 '십자가를 지고 내 뒤를 따르라'는 말씀은 이런 고된 싸움에서 물러서지 말고 이겨 나가라는 뜻입니다.
구원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주의 이름으로 권능을 행하던 자 중에도 그 날에 주의 버림을 받을 자가 있을 수도 있다는 주님의 경고로 잘 알 수 있습니다(마7:22-23) 여러분은 쉬운 예수를 믿을 생각을 말고, 어려운 예수를 믿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특히 주님을 맞으려는 여러분은 더욱 그렇습니다.
초림의 주님은 마리아를 통하여 육신을 입고 아기 예수로 오셨습니다. 그 이름은 '모사요, 기묘자요, 임마누엘이요, 평강의 왕으로' 오시는 것입니다.(사9:6) 아기 예수로 오실 때에도 길 예비자가 있었는데, 영광의 주로 오실 때에 그 길 예비자가 없을 리가 없습니다. 그가 바로 이긴자입니다.
그리고 이긴자가 나타나면 그를 통하여 주님의 새로운 말씀이 쏟아져 나가게 마련입니다. 이긴자는 양떼들을 이 새로운 말씀으로 세우고 신령한 만나(계2:17)로 다듬어 주님의 신부 될 자격자의 수를 채워, 다시 오실 주님의 길을 예비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께서 십자가를 지신 후 기독교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거의 퇴보 상태에 머물고, 한 발작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였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목회자들은 과거의 역사를 해설하는 데 그치고, 새로운 하늘의 가르침을 터뜨리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주의 새 이름을 그의 위에 기록한' 이긴자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긴자가 나타나면 마지막 때에 될 일에 대하여 인봉한 말씀을 떼어 터뜨리게 마련입니다.(단12:9)
그런데 기독교 2천 년 역사를 통하여, 아무리 저명한 부흥사나 신학자라 하더라도, 예컨대 모세나 바울의 가르침을 재탕, 삼탕하여 가르치고, 고작해야 거기 살을 좀 붙인 데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바울이 다시 나타난다면 여러분은 눈을 빼줘도 아깝게 여기지 않을 것이며,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 몰려 들어 때아닌 관광 붐이 일어나 우리나라는 대뜸 황금방석에 올라 앉게 될 것입니다.
6) 어린 양의 아내의 이름
이것이 무슨 역사라는 것은 여러분이 은혜 안에 부르심을 받아 하늘의 도가 어떤 원리에 서 있고, 인류 역사가 어떻게 마무리되며, 하늘나라는 어떻게 이루어지고, 인간이 죽어서 어떻게 되는 등등 수많은 새로운 말씀을 듣는 한편, 안찰과 생수의 축복 등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심령이 질적으로 급속히 변화하는 것으로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주께서 당신이 앉아 있는 것과 같은 보좌에 앉히겠다고 약속한 이긴자는 여호와께서 부리는 마지막 종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를 저지르기 전의 에덴동산은 아름답고 눈부신 영의 세계이며, 당신의 아담과 하와는 영체로 있었습니다. 이때의 영의 양식이 곧 생명과일입니다.
아론의 예복으로 말하면 흉패와 에봇(조끼)과 겉옷과 반포 속옷과 관과 띠로 되어 있는데, 겉옷 가장자리에 금방울을 달고, 관 전면에는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정금으로 된 패를 달고, 가슴에 단 흉패는 홍보석, 황옥, 녹주옥, 석류석, 남보석, 홍마노, 호박, 백마노, 자수정, 녹보석, 호마노, 벽옥 등으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출28장 참조)
또한 회복된 에덴동산, 즉 하늘에서 내려온 새 예루살렘 성의 기초석은 벽옥, 남보석, 우수, 녹보석, 홍마노, 홍보석, 황옥, 녹옥, 담황옥, 비취옥, 청옥, 자정 등으로 되어 있습니다.(계21:19-20)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이 삼자 사이에는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태초에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동거한 에덴동산은 영의 세계요, 따라서 이들은 영체로 신령한 양식, 곧 생명과일을 먹고살았으며, 거기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이 없었으므로 얼마나 오랜 세월이 흘렀는지 알 수 없으나, 이들이 범죄에 떨어져 지구로 추방된 후로 오늘날 우리가 이 땅덩이에서 살면서 당하는 고생 살이가 시작된 것입니다.
추방된 당시에는 옷도 걸치지 않고 다만 본능에 의해 원시적인 생활을 영위하였으며, 이어서 네피림(장사) 시대에 와서 여호와께서 이들과 같이하게 된 것이 약 6천 년 전의 일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사람의 딸들을 좋아하므로 여호와의 신이 떠나고, 이들의 수명이 120세로 줄어든 것입니다.(창5-6장 참조)
그 후 노아 때에 와서 세상에 죄악이 늘어나 홍수로 멸한 다음, 인지가 다소 개화된 아브라함 때에, 그러니까 지금부터 약 4천 년 전에 비로소 여호와께서 본격적으로 역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후 약 6백 년이 지나 모세 때에 이르러 여호와께서 제사의 율례와 법도를 정식으로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이런 율례와 법도를 세워도 미개하여 시행할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모세 이전의 사람들은 여호와를 열심히 공경하여도 여호와께서 기뻐받으실 만한 제사를 드리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어떻게 제사를 드려야 하는지 그 방법을 전혀 알 수 없었으니 말입니다.
물론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분부대로 아들 이삭을 잡아서 드리려고 한 제사나, 야곱이 돌기둥을 세우고 드린 제사를 여호와께서 받지 않으신 것은 아니지만, 법도에 맞는 공식적인 제사는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그 제사는 여호와에게 별로 영광을 돌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인지가 상당히 발달된 모세 때에 와서 여호와께서는 비로소 상세한 제사법을 선포하시고 정식으로 역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잃었던 에덴동산을 회복하기 위해 인간을 홍수로 멸하고, 다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세우신 후에 처음으로 착수하신 역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후에 여호와께서는 많은 선지자와 사자들을 이 땅에 보내어 역사하시고, 드디어는 당신의 독생자까지 십자가에 생축이 되게 하신 후, 불과 같은 성령을 땅에 보내어 역사하시다가, 이제 마지막 때를 맞아 이긴자를 내세워, 제사장 아론의 관에 '여호와께 성결'이라고 새긴 패를 단 것처럼, 성도의 이마에 성령의 인을 치게하여(계7:1-3) 어린 양의 아내의 수(14만 4천)를 채우는 역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은 조금도 희미하지 않으며, 확실한 증거를 보여 주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증거에 의해 오늘날 이 땅에서 하나님의 어떤 역사가 일어나고 있는지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너는 또 정금으로 패를 만들어 인을 새기는 법으로 그 위에 새기되 '여호와께 성결'이라 하고 … 이 패가 아론의 이마에 있어서 그로 이스라엘 자손의 거룩하게 드리는 성물의 제사를 담당하게 하라. 그 패가 아론의 이마에 늘 있으므로 그 성물을 여호와께서 받으시게 되리라.”(출28:38)
이 말씀대로, 아론의 이마에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패가 붙어 있어야 여호와께서 제사장의 자격을 인정하여 그가 드리는 제사를 받아들이는 것처럼, 오늘날에 와서는 은혜 가운데 있는 성도가 이마에 성령의 인침을 받아야만 제사장의 자격을 부여받아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은 자가 드리는 제사는 하늘에서 외면하며, 따라서 마귀의 밥이 되게 마련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 짓기 이전의 옛 에덴과 죄에서 비롯된 사망권세를 물리치고 들어가는 새 예루살렘이 똑같이 보석으로 장식된 것은 양자가 다 아름다운 영의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새 예루살렘 성, 즉 어린 양의 아내의 모습이 아론의 제사장의 제복처럼 역시 보석으로 아름답게 장식한 것으로 표현된 것은 그처럼 아름답게 단장되어야만 그 세계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옛날의 제사장은 레위지파에 속하고 아론의 반차에 참여하며지성소에 들어가지만, 앞으로 주의 아내가 되는 제사장은 유다 지파에 속하고 멜기세덱의 반차에 참여하며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는 차이가 있으나, 하늘에서 움직이는 원리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치 않고 똑같습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인간이 어떻게 그런 아름다운 자격을 갖출수 있느냐?”고 반문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지당한 말입니다. 성경에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3:10)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구약시대의 일이며, 주께서 피를 흘리신 후로는, “한 사람이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5:19)고 하였습니다.
멜기세덱의 반열에 참여하는 것은 자기 힘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어린 양의 아내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다.’(계19:8)는 말씀은 이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 옷을 입게 하는 하나님의 종이 다름 아닌 새 예루살렘 성전에 기둥이 되는 이긴자이며, 여호와의 이름이 그 위에 기록되어 여호와께서 그와 동행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