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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2.02.13본문
Part 02. 십자가는 살아 있다
Chapter 03. 그 품에 안기리 (3)
5) 주님의 예언
주께서 생전에 마지막 때에 이루어질 일에 대하여 터뜨린 깊은 말씀은 마태복음 24장에 비교적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24장의 말씀은 다니엘서와 계시록에 연결되는데, 첫째는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하여 언급하고, 둘째는 주님의 재림에 대하여, 그리고 셋째는 세상 끝에 대하여 논의하고 있습니다.(마24:9)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다.” 이것은 대리석으로 된 웅장한 예루살렘 성전을 제자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을 보고 주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제자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이 성전이 자손만대에 길이 빛날 줄 알았으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한편 그들은 걱정이 태산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이처럼 웅장한 성전이 무너진다면 큰 난리를 예상해야 하며, 큰 난리가 나면 자기네들도 당하게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느 날, 감람산에 조용히 앉아 계신 주님에게, 언제 이런 일이 일어나겠느냐고 넌지시 물어보고, 아울러 주님이 언제 다시 세상에 오시며, 세상 끝에는 어떤 징조가 있겠느냐고 질문을 했습니다.(마24:3) 그러자 주님은 성전이 무너질 때 나타날 현상과 조심할 일에 대하여 상세히 일러주었습니다.
즉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가야 하며, 각자 민첩하게 움직여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고,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가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사소한 일에 구애되어 목숨을 잃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날에 아이 밴 자들과 젖을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겠고, 앞으로도 없으리라.”(마24:21)고 했습니다. 이것은 물론 이스라엘 백성을 두고 하는 말이므로, 이방인들의 전쟁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들에 대해서는 여호와께서 안중에 두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이 전쟁의 양상은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마24:15) 이라는 말씀에 대한 보충 설명으로 함축성이 높습니다.
다음에 주님은 당신께서 구름을 타고 영광 중에 다시 오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시일에 대해서는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마24:36)고 하셨습니다.
이 주님의 말씀을 두고 볼 때, 우리는 주께서 십자가를 지신 후 그 피 권세로 이 땅에 바로 다시 오셔서 하늘나라를 이룩하시려고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연되고 있습니다.
주께서 오늘에 이르도록 오시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결코 거짓말을 하신 것은 아니라는 것을 지적해 두고자 합니다.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른다.”고 미리 못을 박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강림에 대해서는 이상 중에 사도 요한에게 좀 더 상세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말씀을 상고해 보면 주께서 아직 여건이 마련되지 않아 오시지 못하며(계6:11) 이 여건을 완성하기 위해 마지막에 이긴자를 내세워 역사하시게 되어 있습니다.(계2, 3장 참조)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 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계3:12)
여기 이긴자를 하나님의 성전 기둥으로 삼는다는 말씀은 주께서 그를 통하여 역사하신다는 뜻으로, 성경에 나오는 ‘기둥’은 여호와께서 언약의 증거로서 교류 또는 간섭한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 성은 주의 아내를 상징하며,(계21:2) 이긴자 위에 주의 아내의 이름을 기록한다는 것은, 이긴자가 성령의 인을 쳐서 그 수(14만 4천)를 채우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이긴자는 그 수가 찼는지 차지 않았는지 알 수 있으며, 주께서 언제 오신다는 것도 알게 마련입니다. 이 수가 차기만 하면 주님은 곧 오시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보면, 마지막 때 전무후무한 큰 환난이 일어나지만,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들을 위해 그 날들을 감하시고 예루살렘 성이 무너지고 나서 주님이 오시게 되어 있습니다.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마24:29-30)
여기 나오는 환난은 예루살렘 성이 무너질 때 일어난 환난과는 다릅니다. 의로운 자의 수가 차서 주님이 다시 오시기 직전에 마귀는 위정자들을 격동시켜 큰 환난을 일으키게 되어 있습니다.
다음에 주님은 세상 끝에 대하여 다니엘서에 이미 기록된 말씀, 곧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단12:11)이란 말씀을 인용하여, 그때가 마지막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데 그쳤습니다.
거룩한 곳에 미운 물건이 설 때는 천년세계가 지나, 마귀가 한 때, 두 때, 반 때, 곧 마흔 두 달 동안 성도의 거룩한 성을 포위하고 행패를 부리는 때를 가리키며(계11:3 참조) 다니엘은 이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보여 주신 것을 기록하고, 반드시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어질 때가 세상 끝이라고 덧붙였습니다.(단12:7)
이 깊은 영적인 말씀에 대해서도 일찍이 바울이나 베드로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그렇다 치더라도, 바울이 이 중요한 말씀에 대하여 입을 다문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당신이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갈1:11-12)이라고 말하고,
당신이 전한 복음 이외의 것을 천사가 전해도 저주를 면할 수 없다고까지 말한 바울이지만, 그가 마지막에 대해 알지 못한 것은 하나님이 알려 주시지 않았기 때문이고, 하나님이 알려 주시지 않은 것은 이것을 말할 사람이 따로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그것은 다윗의 뿌리, 곧 주님이 터뜨리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계5:5) 그렇다면 주님이 직접 이 땅에 오셔서 마이크를 잡고 사람들 앞에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고 터뜨릴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주께서는 이긴자에게 새벽별(주님)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계2:28)
그런 고로 마지막 때에 성사될 감추었던 말씀을 전하고 뜻을 이루는 것은 주님이 직접 하시지 않고 이긴자를 내세워 역사하시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내 말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6) 주님과 이긴자
주께서 이상 중에 마귀에게 시험을 당하고 나서 맨 처음에 설교를 시작하신 곳은 갈릴리였으며, 요한이 외친 것과 마찬가지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는 것이 처음 설교였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반응은 별로 신통치 않았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행색이 초라하기 짝이 없는 한 시골 청년이 하나님 운운하고 핏대를 올리면서 떠들어대니 말입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방법을 변경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적, 기사였습니다. 그러니까 주께서 좀 더 직접적인 방법으로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거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때 주님이 주로 사용한 것은 ‘신유의 은사’였습니다.
더구나 의학이 발달되지 못한 당시라, 오랫동안 병고에 시달리는 많은 중병 환자들이 주님의 손이 닿거나 말씀 한 마디로 척척 나으니,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당신에게서 고침을 받은 환자에게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기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이 알면 트집을 잡을까 염려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도 저들은 어제까지만 해도 눈이 멀어 지팡이를 짚고 다니던 자가 버젓이 눈을 뜨고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채문해 본 결과, 예수가 고쳤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마귀(바알세불)의 힘을 빌려 병을 고친다고 떠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많이 모였습니다. 하기야, 오랫동안 지긋지긋하게 시달려 온 병만 물러가 준다면야 누가 무슨 말로 이들의 발길을 가로막을 수 있겠습니까? 인간이란 이처럼 타산적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를 막론하고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끌려고하지, 죽은 다음의 천국을 운운해 봤댔자 별로 실감을 느끼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은 분명히 있습니다. 만일 천국이 실제로 없는데 성경에 천국 운운했다면, 기독교는 사람을 미혹시키는 가짜 종교가 됩니다.
그럼 천국은 어떤 곳일까요? 나는 이에 대하여 간단히 윤곽만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우리는 천국을 하나님과 주님이 계시는 영의 세계이며, 시집도 가지 않고 장가도 들지 않는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건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이렇게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무슨 재미로 천국에 가서 사나?” 하고 말입니다. 있을 법한 의문입니다.
성경에는 천국을 육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인간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호화찬란한 보석 대문에 온통 금 덩어리가 깔린 길 등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은 이상 중에나마 실제로 가보아야지, 도저히 펜으로는 그릴 수 없는 곳입니다.
우리는 천국이라면 흔히 흠과 티가 없는 아담과 하와가 살던 아름다운 에덴동산을 연상합니다. 그러나 이 에덴동산과 여호와가 계시는 3층천과는 다릅니다. 물론 우리가 살고 있는 죄악투성이인 이 땅덩이와도 판이하지만. 그렇다고 에덴동산은 우리가 상상하듯이 눈부시게 황홀하고 어마어마한 그런 세계는 아닙니다.
에덴동산은 아담과 하와가 살던 곳으로 나무도 자라고 강물도 흐르고 있습니다. 그곳은 마치 내가 면목동 집에 있는 것처럼, 아담과 하와의 안식처입니다. 그렇다고 아담과 하와가 언제나 이 안식처에만 들어박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영체이므로 이 광대한 우주를 어디나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내가 살고 있는 집은 면목동이지만 아침밥을 먹고 명동도 쏘다니고 인천에도 가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담, 하와처럼 이 우주를 마음대로 돌아다니지는 못합니다. 지금 현재 겨우 달나라에나 내왕하는데, 그렇게 하려고 해도 돈을 많이 들여 특수한 장비(옷)를 갖춰야 합니다. 그곳은 인간이 살고 있는 이 지구와는 여건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영체이므로 이런 여건에 전혀 구애를 받지 않습니다. 이들이 놀러간 별이 차건 뜨겁건, 공기가 있건 없건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천국은 창조주 하나님과 주님이 계시는 세계로, 그곳 주민들은 영광과 희열과 복락의 모든 감정이 그대로 영속되어 권태를 느끼는 법이 없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고 그 나라도 우리의 경우처럼 모든 것이 얼마 후에 시들하게 여겨진다면 천국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천국은 언제나 하나님의 영광의 빛으로 환히 밝혀진 곳입니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어둠이 없고 그림자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천국은 단순하고 무미건조한 곳이 아닙니다. 만일 그렇다면 천국처럼 답답한 곳이 없을 것입니다. 천국도 이 세상 못지않게 복잡다단한 계급제도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 나라의 임금은 하나님이고 왕자는 주님, 이긴자와 24장로, 14만 4천의 빛나는 세마포 옷을 입은 주의 아내와 백성, 그리고 천사 등, 각자 맡은 임무가 따로 있어 분주히 움직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세마포 옷은 물론 하나의 비유로 사용하고 있으며, 따라서 실제로 그런 옷을 몸에 걸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 “천국이 가까웠다.”고 주께서 외치셨는데, 오늘에 이르기까지 천국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천국을 이루는 데 필요한 여건이 마련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천국이란 하나님께서 마음대로 이루시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여건과 절차를 필요로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마귀가 동시에 지켜야 할 룰(규례)의 하나입니다. 하나님도 겨루는 상대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마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일에 대해 생각할 때 언제나 마귀의 존재를 계산에 넣어야 합니다.
이 하늘나라를 이루는 과정에서 제일 먼저 갖춰야 하는 여건이 14만 4천의 하늘 군대입니다.(계14:14) 이 숫자가 차야 마귀의 세력을 완전히 꺾을 수 있고, 마귀의 세력을 완전히 꺾어야 하늘나라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적당히 하늘나라를 이뤄 놓을 수 없으며, 설사 이뤄 놓았댔자 곧 마귀에게 침범을 당하여 쉬 무너지고 맙니다.
그럼 어찌하여 얼른 14만 4천의 하늘 군대를 채우지 않고 오늘까지 미루고 있는가? 채우지 않는 것이 아니라, 채우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가로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천국이 가까웠다.”고 말씀하신 것으로 미루어 보건대, 주님은 당신이 흘리신 피로 조속한 시일 안에 천국을 이루는 여건을 마련하시려고 한 것이 분명합니다.
즉 14만 4천이라는 천군을 완전히 확보하려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여의치 않게 되어 오늘날 비로소 이 땅에서 이긴자를 통해 그 마무리 작업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계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