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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2.02.14본문
Part 02. 십자가는 살아 있다
Chapter 04. 성령은 이렇게 역사한다 (2)
3) 성령과 악령
사람들은 예수를 믿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이 예수를 ‘믿는다’는 말은, 요컨대, 예수의 인격을 자기 안에 지니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것을, “주가 내 안에 있고, 내가 주 안에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려면 자기 힘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따르는 애로가 여간 많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마귀가 가만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당하신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마귀가 천하만국을 넘겨받아 차지하고 있다고 했습니다.(눅4:5) 다시 말해서 세상은 마귀의 것입니다. 언제부터? 에덴동산에서 아담, 하와가 여호와께서 먹지 말라고 당부한 선악과를 먹어 마귀의 독소가 그들의 몸에 침투하게 된 후부터입니다. 이때부터 마귀는 천하를 손아귀에 넣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되찾으려는 것이 바로 여호와 크신 뜻이자 경륜입니다.
그런데 이 마귀에게 천하만국을 넘겨준 것은 누구일까요? 그것은 마귀의 괴수인 용입니다.(계12:9) 그러므로 주님을 상대한 자는 마귀의 괴수가 아니라 그 부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주님에게 보좌를 내어주고, 주님은 이긴자에게 만국을 다스릴 권세를 주듯이,(계2:17, 27참조) 용은 자기 부하에게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주게 되어 있습니다.(계13:2)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산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인류에게 베푼 최고의 사랑인 동시에, 당신의 뜻을 이루는데 필요한 최대의 무기를 마련하기 위해 예정된 교묘한 수단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죄를 씻어 당신의 군대로 만드는데 주의 피가 반드시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마귀는 이 싸움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가로막는 파괴자의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건설은 어렵지만, 파괴는 쉽습니다. 그러므로 마귀는 하나님의 크신 권능을 당해내지는 못하더라도, 능히 적수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땅의 사정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당신의 독생자를 보내실 때 길 예비자까지 보냈던 것입니다. 여기서도 우리는 여호와께서 빈틈없이 움직이신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마귀가 차지한 세상에 당신의 아들을 보내시려니 더욱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은 단상에서 설교하실 때 커다란 양피지의 성경을 펴고 읽어 가시면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 가죽으로 된 성경, 그러니까 구약에는 주님에 대해 여러 선지자들이 예언해 놓은 대목이 많아 주께서 전하는 말씀을 밑받침해 주었지만, 듣는 자들의 심령이 어려서 하고 싶은 말씀을 다 하시지 못했습니다.
당시에 세례 요한이 주님에 대하여 입이 아프도록 미리 증거해 주었는데도 사람들은 거의 다 반신반의하면서 주님의 정체를 알아보기 위해 주님의 주위에 모였던 것입니다. 말씀을 들어보니 세례 요한보다 훨씬 깊이가 있기는 했지만, 주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세주라고 100% 믿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것은 주께서 부활 후 승천하기 위해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했는데, 그대로 순종하고 따른 자가 전혀 없었다는 것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마26:32, 28:7) 그러니 주님의 고충은 어떠했겠습니까?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이 예루살렘 백성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려고 해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탄식이 주님의 입에서 나올 만도 합니다.(마23:37) 세상이 마귀의 것이므로 하나님의 역사는 이처럼 어렵게 마련입니다.
주께서 고기와 떡을 만들어 먹여주었을 때에는 5천 명이나 모여들었지만, 주님이 부활 하신 후 갈릴리에 모인 무리는 5백 명 정도이며,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은 사람의 수는 불과 120명밖에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길 예비자를 앞세운 하나님의 아들도 이 땅에서 도를 전파하는데 애로가 이처럼 많았거늘, 기반이 전혀 없이 맨주먹으로 시작하여 멸시와 천대 가운데 이끌어 나가는 나중 이긴자의 고충이 어떠하리라는 것은 짐작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4) 해독제로서의 성령
하나님의 가르침을 깊이 깨달으면 거기에는 과학적인 정확성과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힘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성경을 보면 지구의 나이가 6천 년밖에 되지 않으니 과학의 가르침에 위배된다고 속단한 나머지 하나님을 멀리하기도 합니다마는, 이것은 성경을 잘못 풀이하는 데서 오는 폐단의 하나라고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과학적인 견해에 어긋나지 않을뿐더러, 이를 밑받침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주를 지으신 다음, 날짜와 연한을 정하기까지(창1:14) 얼마나 오랜 시일이 지났는지 알 수 없으며, 당신의 형상으로 아담과 하와를 만든 후에 범죄에 빠지기까지 또 얼마나 시일이 경과했는지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가인이 쫓겨났을 때 지구상에는 이미 인간이 살고 있었으며, 이것만 보아도 지구의 나이를 6천년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역사를 두고 보더라도 과학적인 면이 있습니다. 성령은 인간의 정신력이 아닌 하나님의 영이며, 하나님과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요15:26)
그런데 이 성령은 하나님의 종을 통하여 받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이 성령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종을 만나야 합니다.(행8:17, 19:6 참조) 그 손길을 거쳐서 성령의 은총을 풍성하게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부름을 받기는 했는데 은혜를 받지 못했다고 할 경우에, 거기에는 반드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역사에도 숨은 인과율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것도 역시 과학적인 측면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받은 은혜를 쏟았거나 숫제 받지 못할 때에는, 그 원인을 찾아내어 시정할 것을 시정해야 합니다. “너의 사랑이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라.”(계2:5)는 말씀은 바로 이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령을 부어주는 하나님의 종을 만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런 하나님의 종은 자주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역사상 초대교회 때 바울과 베드로, 그리고 사도 요한이 성령을 부어 주었고, 오늘날 이긴자를 통하여 이 땅에서 보혜사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하나님의 종을 만나는 것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사55:6)는 말씀은 이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여기서 어떤 분은 이렇게 항의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단번에 드린 속죄의 제물로 말미암아 누구나 주님과 직접 영적으로 교류하게 되어 있으며, 따라서 성령도 직접 받도록 되어 있는데, ‘하나님의 종’은 왜 필요하냐고 말입니다.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또 성경에는 회개하면 성령을 받을 수 있다고도 했습니다.(행2:28)
그런데 이렇게 해서 성령을 받기가 얼마나 어려우며, 또 설사 성령을 받았다고 해도 크게 힘을 못 쓴다는 것은 여러분이 체험을 통해 잘 알고 계실 줄 믿습니다. 또 여러분뿐만 아니라 앞선 믿음의 선배들도 다 그랬습니다. 이긴자를 통해서만 받을 수 있는 성령의 은사가 따로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의 보혈로 이루신 생수입니다.(계21:6-7)
성령의 강한 역사는 주께서 세우신 당신의 특정한 종을 통하여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독교의 역사가 입증하는 바입니다. 바울이나 베드로가 뭇 사람들에게 성령을 부어 크게 불을 붙인 후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별로 이렇다 할 하늘의 은총이 베풀어지지 않고 있다가,
오늘날에야 비로소 이 땅에서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지만, 그나마 이것을 알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보는 눈을 갖고, 듣는 귀가 열린’ 소수에 불과합니다. 이것을 보더라도 하나님의 역사가 얼마나 큰 저항을 받고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늘 말하지만, 주께서 여러분을 이 마지막 역사에 불러 주신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하늘의 군대가 되어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일을 게을리 하거나 소극적인 태도를 취해서는 안 됩니다. 일단 이 역사를 안 이상, 적극적으로 동참해 주기를 주님은 바라고 계십니다. 그러나 하늘의 군대는 여러분의 힘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즉 하늘의 군대가 입는 빛나는 세마포는 ‘입게 하는 것’입니다.(계19:8) 그래서 여러분이 보시다시피 이런 작업이 현재 착착 진행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신령한 말씀을 들려주는 동시에 성령을 부어 주고 생수 축복을 하는 일 등이 곧 그것입니다.
이것은 물론 주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그 반열에 세우고 안 세우는 것은 주의 권한에 속합니다. 그런데 주께, ‘이분은 이러저러합니다.’ 하고 상신할 재료는 여러분이 나한테 제공해 주셔야 합니다. 지금은 때가 때인 만큼 옛날처럼 순교를 하지 않고도 멜기세덱의 반열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열심을 내시기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죄에 떨어진 것은, 여호와께서 미리 먹지 말라고 당부하신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인 줄 알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아담과 하와가 한 번 여호와께 불순종했기 때문에 원죄가 생기고, 그 나쁜 피가 후손들에게까지 유전되었기 때문에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죄인임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올바른 견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한 번 명령에 불순종했다고 해서 그런 끔직한 형벌을 내리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자식이 먹지 말라는 빵을 먹었다고 해서 칼로 푹 찌르는 아버지가 세상에 있을까요? 회초리로 몇 대 때리기는 해도, 이렇게 고약한 벌을 내리지는 않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먹지 말라고 당부한 생명과일을 좀 먹었다고 해서 에덴동산에서 숫제 내쫓고, 대대손손 죄악에 허덕이게 하시는 그런 무시무시한 하나님이라면 우리가 어떻게 섬길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신 것은 그 과일에 독소가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 과일에 독소가 들어 있지 않았던들 따먹지 말라는 당부를 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선악과 속에 마귀가 독소를 넣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가 이 과일을 따먹는 순간, 그 독소가 전신에 퍼져 신령한 몸에 변화가 왔습니다. 성경은 이 변화를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게 되었다.’(창3:7)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이 과일을 먹자마자 독소로 말미암아 신령한 몸이 더러운 몸으로 변한 것입니다.
그러니 아담과 하와를 아름다운 에덴동산에서 내쫓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 독소가 섞인 피는 대대로 전해져 오늘날 우리의 혈관에도 흐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독소를 제거해야만 다시 신령한 몸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럼 무엇으로 이 독소를 제거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세상 물질로는 되지 않습니다. 맑은 샘물이나 값진 의약품 같은 것으로는 도저히 제거할 수 없습니다. 그럼 정신 수양을 하면 되느냐?
안 됩니다. 스님들처럼 산 속에 묻혀서 선을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며, 도학자들을 모셔다가 날마다 좋은 교훈의 말씀을 듣는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이 수양을 많이 하면 허물을 고칠 수는 있겠습니다만, 그 뿌리 깊은 죄는 씻기지 않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짐승의 피로 제사를 드려 자기가 지은 죄를 어느 정도 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죄를 완전히 깨끗이 씻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 피의 독소를 깨끗이 제거하려면 주의 피로 씻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주의 피가 해독제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피 흘림이 없으면 죄 사함이 없다.’(히9:22)는 말씀은 이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께서는 “내 피를 마시라.” 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주의 피는 어떻게 하면 마실 수 있겠습니까? 주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주신 것은 지금부터 약 2천 년 전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피를 마실 수는 물론 없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주의 피는 생명수 샘물을 가리킵니다. 즉 주께서 피를 흘리신 대가로 내려 주시는 생수, 곧 성령의 은사로 말미암아 우리는 죄에서 놓여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피 권세는 오늘날 이 땅에서 이긴자를 통하여 크게 역사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긴자가 생수로 축복하고 안찰하여 심령을 씻으며, 주의 피와 살이 하늘에서 이슬 같은 은혜의 단비가 되어 내리는 성령의 역사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받으려면 이런 때를 맞아야 하고, 이런 종을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 은총을 받으면 수십 년 동안 애써도 되지 않던 것이 즉석에서 해결됩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다 경험하는 사실입니다. 전에는 몇 주일씩 단식을 하며 철야 기도를 해도 구원받을 자신이 없던 사람도 이곳에 와서 은혜를 받으면 구원에 대한 확증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환자가 용한 의사를 만나 약 몇 첩만 먹고 낫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 않고 돌팔이 의사를 만나면 고생만 진탕 하다가 결국은 죽어 가게 마련입니다.
하늘에서 은혜의 파이프를 통하여 보내는 이 해독제의 농도는 여러분의 태도 여하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즉 여러분이 잘 움직여 주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면 자연히 그 진액의 농도가 엷어지고, 여러분이 열심히 뛰어 주께 잘 보이면 그 진액의 농도가 짙어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주님과 그 종과 여러분은 떼려고 해야 뗄 수 없는 긴밀한 관계에 놓여 있습니다.
영의 세계에서는 개인적인 친분이 힘을 못 씁니다. 남편이 아내를 구할 수 없고, 부모가 자식을 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각자 전혀 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 영적인 탈바꿈이 없이는 아무도 그 나라에 갈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아담과 하와의 몸에 스며든 독소를 말끔히 제거하시는 크신 하나님의 은총을 입지 않고서는 영생의 새로운 생명을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