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권] Part 03 - Chapter 0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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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2.02.20
[3권] Part 03 - Chapter 0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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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3. 역사의 증인들 

Chapter 05.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1)


1)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믿음의 조상을 세웠는가?

오늘부터 약 4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 대해 상세히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믿음의 조상으로 부름을 받기 전에는 아브람이라고 불렸습니다. 그의 부친 데라는 나이 70세 이후에 아브람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이 아브람이 믿음의 조상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은 75세 때였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12:2-3)

 

이것은 여호와께서 이상 중에 직접 아브람에게 하신 말씀이며, 이리하여 아브람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성경에는 아브람이 75세가 되기까지의 생활에 대하여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役事)에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에 빈틈이 없으신 하나님께서 그 동안 아브람으로 하여금 멋대로 살게 내버려두셨다가 75세가 되었을 때 갑자기 믿음의 조상으로 내세우신 것은 아닙니다. 아브람은 어려서부터 남달리 영특하고 활달하며 의지가 강하여, 여호와께서 미리 점을 찍어놓고 당신의 품에서 길러 왔던 것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여호와께서 당신의 경륜을 이루시기 위해 하늘에서 얼마나 치밀하게 움직이고 계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쫓아내신 후, 원시생활을 하던 인류는 인지(人智)가 발달하지 못하고 미개하기 짝이 없어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인지 알지 못하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천성이 양순한 노아를 내세워 그 자손들에게 은총을 입혀, 당신의 경륜을 펴 나가기 위해 홍수로 일대 숙청을 했으나, 그 후손들도 여호와를 멀리하자 아브람을 믿음의 조상으로 내세워 역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아담, 하와에서 아브람에 이르는 동안은 하나님의 법도와 율례가 없는, 무법시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시에는 누구나 성격이 거칠어 의인(義人)이라고 해봐야 좀 선량하다는 정도에 그쳤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차츰 개화되자, 하나님께서도 인간에게 언약을 주어 역사하실 수 있는 단계에 도달했습니다. 이때 첫 번째로 뽑힘을 받은 인물이 바로 아브람이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은밀히 아브람을 특별한 은총 가운데 기르셨습니다.

 

아브람 자신은 자기에게 이처럼 하나님의 손길이 뻗쳐 있다는 것을 알 리가 만무합니다. 다만 그는 날로 성품이 선량해지고 하나님을 열심히 경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75세 때, 이상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서야 비로소 자기의 할 일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아브람이 가산을 정리하고 아내 사래와 조카 롯을 데리고 여호와의 지시대로 하란을 떠나 세겜 땅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께서 다시 나타나,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겠다.”(12:7)고 말씀하시므로, 아브람은 하나님을 위해 돌로 단을 쌓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 후 세겜 땅에 기근이 심하여 애굽으로 이주하게 되었는데, 여기 하나의 두통거리가 생겼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절세의 미인이라 낯선 타국에 가서 아브람 자신이 무사하겠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필경 사래가 아니라, 남편인 아브람 자신에게 화가 미칠 것이 뻔했습니다.

 

즉 아브람은 미인을 아내로 거느린 탓(?)으로 목이 날아가고 아내를 빼앗기게 생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궁리한 끝에 아브람과 사래는 남매로 행세하기로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애굽에 도착하자 사래는 얼굴값을 하게 되었습니다. 즉 그녀의 미모에 대한 소문이 사방에 퍼지자, 대뜸 바로의 신하들의 귀에도 들어가 사래는 궁중에 불려갔습니다. 바로는 사래에게 홀딱 빠져, 그 오라비 아브람의 환심을 사기 위해 소와 양 등 많은 가축과 노비까지 보내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바로가 사래를 손에 넣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이상 중에 바로에게 나타나 남의 유부녀를 겁탈하는 비행을 꾸짖고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바로는 깜짝 놀라 아브람을 불러, 자기를 감쪽같이 속인 소행을 책망하고, 급히 애굽 땅을 떠나게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애굽에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뒤에서 길을 터놓은 것입니다. 사래가 이와 같이 하나님의 기억을 받게 된 것은 물론 아브람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리 예정한 계획대로 움직이고 계신 것입니다.

 

아브람은 아내와 롯과 함께 애굽에서 나와, 전에 제단을 쌓은 세겜 땅에 와서 다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 다시 아브람에게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라.”(13:15-16) 아브라함은 헤브론의 마므레 숲에 장막을 옮기고, 그곳에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2) 멜기세덱과 아브라함

아브람 당시는 이른바 부족국가 시대로 몇몇 부족들이 모여 조무래기 나라를 이루고 살아갔습니다. 그리하여 한 나라의 인구가 많아야 몇 만 명을 넘지 못했습니다. 이 조그마한 왕국들은 서로 동맹을 맺어 가까이 지내기도 하고, 반목하던 끝에 싸움을 일으키기도 했는데, 그 중에서 제일 강성한 나라는 그돌라오멜의 나라였습니다.

 

그돌라오멜은 주위 여러 작은 왕국들을 자기 산하에 거느리고 12년 동안 군림해 왔습니다. 그 지역은 싯딤 골짜기, 곧 요단강 서부 일대로, 기후가 온화하고 땅이 기름질 뿐더러 소금도 많이 나며 백성들은 비교적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돌라오멜의 지배를 받아 오던 여러 왕국들이 반기를 들고 일어나, 소돔과 고모라를 비롯한 다섯 나라가 합세하여 그돌라오멜과 그 동맹국을 상대로 싯딤 골짜기에서 크게 싸우다가 패하여 도망치게 되었는데, 이 바람에 소돔에 살던 아브람의 조카 롯도 잡혀가고, 재물까지 약탈당했습니다.

 

아브람은 마므레에서 지방 유지로 부유한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이 소식을 전해 듣고 자기가 거느리고 있던 사병(私兵) 318명을 동원하여 그돌라오멜과 그 동맹국을 밤중에 습격하고, 롯을 비롯해서 잡혀간 모든 백성들과 빼앗긴 재물을 되찾아 왔습니다.

 

이들 사병은 본래 도적으로부터 집을 지키는 임무를 맡고 있었으므로 야간 전투에 능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 특공대가 승리를 거두게 된 배후에도 물론 여호와의 입김이 작용하였습니다.

 

그러자 소돔 왕을 비롯한 그 밖의 많은 동맹국 왕들이 아브람의 개선을 반갑게 맞아 주었는데, 이들 왕들 중의 한 사람인 살렘 왕 멜기세덱은 떡과 포도주를 갖고 나와서 아브람을 환영해 주었습니다. 그는 일국의 임금인 동시에 제사장으로 아브람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하였으며, 아브람은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쳤습니다.(14:20)

 

그리고 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적의 포로가 되었다가 풀려난 자기 백성만 돌려주고 모든 전리품(戰利品)은 다 가지라고 말하자, 아브람은 여호와를 힘입어 싸움에 이겼는데 소돔 왕 덕분에 많은 전리품을 차지하여 부자가 되었다는 말을 들을까 염려한 나머지 이를 사양하고, 실오라기 하나도 사사로이 취하지 않았습니다.(14:23)

 

위의 이야기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만, 여기에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깊은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 나오는 멜기세덱에 대하여 잘 알아야 합니다. 떡과 포도주를 갖고 와서 아브람을 환영하고 축복해 준 멜기세덱은 대체 어떤 인물일까요? 아브람으로 말하면 여호와께서 일찍 믿음의 조상으로 점을 찍어 놓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구약시대를 통틀어 가장 큰 인물입니다.

 

그런 아브람에게 축복을 하자 아브람이 그에게 십일조를 바쳤다면, 그는 당연히 아브람보다 더 위대한 인물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살렘 왕과 제사장을 겸한 자연인(自然人) 멜기세덱에 그칠 수 없는, 그 이상의 어떤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다윗은 이상을 보고 말했습니다.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110:4) 여기서 말하는 는 주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주께서 장차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 될 것을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이 미리 내다보고 한 말입니다.

 

왕이요, 제사장으로서 아브람으로부터 십일조를 받은 멜기세덱은 바로 주님을 상징하며, 이 왕은 만왕의 왕인 주님을 가리키고, 제사장도 영원한 제사장인 주님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떡과 포도주는 주님께서 먹고 마시라고 하신 당신의 살과 피’, 성령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아브람에게 축복한 멜기세덱은 구세주인 주님의 그림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생전(生前)에 이 멜기세덱에 관해서는 한 마디도 입 밖에 내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말해야 알아듣지 못할 것이 빤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주께서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에 당신이 있었다고 증거해도 욕설을 퍼붓고 돌을 들어 치려고 하는 판인데,(8:59) 어떻게 그보다 더 깊은 말씀을 터뜨릴 수 있었겠습니까?

 

만일 이런 말을 발설했더라면 아마도 주님은 미친놈으로 몰렸을 것입니다. 이런 애로 때문에 주님은 땅에 계실 때 하고 싶어도 못하신 말씀이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그래서 당신께서 승천하신 뒤 또 다른 보혜사 성령이 오시면 그 못 다한 말씀을 드러내게 될 것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멜기세덱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그 이름을 번역한즉, 첫째 의의 왕이요 또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이,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7:1-3)

 

즉 멜기세덱을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하다고 하여, 그가 주의 그림자, 곧 상징적인 인물임을 지적하고, 이어서 이 사람이 지극히 높은 분이라고 덧붙이고 있습니다.

 

이 멜기세덱은 특히 오늘에 와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에 대하여 잘 알아야 합니다. 멜기세덱이란 요컨대 주님의 대명사(代名詞)입니다. 그럼 무엇 때문에 굳이 주님에게 멜기세덱이라는 대명사를 붙여 그 그림자로 상징했을까요? 여기에는 깊은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주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이 멜기세덱이라는 네 글자에 집약되어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주님은 영원한 제사장인 멜기세덱의 반열에 참여할 수 있는 의로운 자들을 만들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들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시기 위해’(19:14)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들이 곧 어린 양의 아내’(21:9), ‘하늘의 군대’(19:14)이며, 그 수는 144천으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신, 구약시대의 순교자와 마지막 때 인침을 받은 자가 속하게 되어 있습니다.(20:4, 7:3 참조) 주께서 피를 흘리는 것은 무엇보다도 이 수를 채우기 위해서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마귀가 발등상 되어(110:1) 새 하늘나라를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멜기세덱을 가리켜 주님과 방불하다.”는 말씀 그대로, 그 반열에 참여하는 하늘의 군대들은 주님과 방불하게 되어, 찬송가에도 있는 바와 같이, ‘그 손의 못 자국으로주님과 구별되는 것입니다. 이들은 어린 양의 아내로, 하늘에서는 엄청난 권세를 차지합니다.(20:6) 그러기에 여호와께서 의인 한 사람만 있어도 죄로 물든 예루살렘 성을 멸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5:1)

 

오늘의 이 역사는 이런 주의 아내감을 씻어 채우는 일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긴자가 필요하며, 그에게 감춰진 만나와 흰 돌을 주는 것은(17:17) 이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를 통하여 여호와의 감춰진 말씀이 터져 나갑니다.

 

다시 말해서, 흰 돌을 받은 자가 나타나면 창세기에서 계시록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감춰진 말씀이 다 밝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생수가 동서로 흐르는 때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1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