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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1.03.08본문
Part 01. 생명으로 이르는 길
Chapter 4. 말세는 언제인가?
오늘날 말세에 대하여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물론이고,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자주 입 밖에 내곤 합니다. 중동에서 총소리가 몇 방 울려도 말세다, 미니스커트를 보고도 말세다, 정치가는 핵전쟁이 언제 돌발할지 모르므로 말세, 경제학자는 세계의 식량 위기를 보고 말세, 과학자는 공해(公害)를 내세워 말세, 사회학자는 인구 폭발을 가리켜 말세, 아무튼 말세라는 말이 하나의 유행어(流行語)가 되고 있는 형편입니다.
아니, 사도 시대에서부터 말세 운운해 왔습니다. 심지어 주님도 ‘이 세대가 가기 전’에 다시 오겠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여건이 마련되지 않아 오지 못하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성경에도 말세의 징조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예컨대 만국에 복음이 전파되며,(사42:6, 엡2:19) 거짓 선지자가 나타나고,(마24:11, 눅21:8) 윤리가 타락되는(딤후3:1-5) 등등. 그러나 이 모든 조건이 다 갖추어졌다고 해서 말세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럼 어떤 일이 일어나야 말세일까요? 성경에 이런 말씀이 적혀 있습니다. “내가 네 원수를 네 발의 발등상으로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눅20:43) 주님은 부활 승천하셔서 멜기세덱의 대제사장의 직분을 갖고 하나님 우편에서 마귀가 발등상 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제사장을 통하여 하나님에게 제사를 드렸으나, 이들 제사장은 인간으로 부족한 점이 많아 온전한 제사가 되지 못하므로 불가불 제사장의 직분을 바꿀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은 흠과 티가 없는 하나님의 독생자로 하여금 십자가에 달려 단번에 속죄의 제물이 되게 함으로써 가능했습니다.
그리하여 제사장이 갈리니, 따라서 제사법도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오늘날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리고 회개할 때, 구약시대처럼 양이나 비둘기를 잡아 제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빈손을 들고 주님 앞에 나오는 것입니다. 신약시대는 주의 보혈을 제물로 드리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앞에서 주님이 마귀가 발등상 되기를 기다린다는 성경 말씀을 소개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주님은 당신의 때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럼 왜 마귀의 세력이 꺾여야 주님이 오시게 될까요? 하나님의 역사는 아무렇게나 되는 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뜻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마귀를 무저갱에 가두어야 다음 과정이 진행되는 것입니다.(계20:3)
그럼, 하나님께서 얼른 마귀를 쓸어버리면 될 게 아닌가, 하고 반문을 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대항하는 마귀의 세력도 만만치 않아 그렇게 호락호락 꺾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꺾어 여호와께서 잃어버린 당신의 나라를 회복하려는 것이 곧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럼 주님은 하나님의 우편에 가만히 앉아 마귀가 꺾이기를 기다리고만 계실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이긴자에게 권세를 맡겨 당신이 다시 오실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도록 하늘에서 분주히 움직이고 계십니다. 어떻게?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계21:6-7)
즉 주님께서는 이긴자로 하여금 생수를 전하게 함으로써 죄를 씻어, 일정한 수의 하나님의 군병을 채워, 마귀를 꺾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에는, “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다.”(슥14:8)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사도시대에는 이 생수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생수는 성령의 특별한 은사로, 전해주는 사람이 따로 있습니다. 사귀가 들려 미친 사람에게 생수를 보이면 ‘피’라고 말하면서 도망치는 것을 여러분은 보아서 잘 아실 것입니다. 요 며칠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마귀의 악령이 먼저 안 것처럼, 미친 사람 속에 들어 있는 악령이 이것을 영적으로 분별하는 것입니다. 또 순간적으로 영안(靈眼)이 뜨이면 생수가 피로 보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중에 이런 경험을 한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입니다.
베드로가 불과 같은 성령을 받고 백성들에게 말세라고 외쳤으나,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당연합니다. 만일 베드로 때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다면 구태여 천사를 시켜 사도 요한에게 계시를 보여주고 마지막 때에 될 일들을 기록하게 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계시록은 요엘 선지의 말이 그대로 응해지는 마지막 때의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므로, 때가 되면 주님의 특별한 소명을 받아 성령이 충만하여 남들에게 물 붓듯이 부어 줄 수 있는 자가 터뜨리게 되어 있습니다. “대저 이 말은 마지막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할 것이니라.”(단12:9)는 말씀은 이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신학자들이 아무리 머리를 짜도 그 말씀이 풀리지 않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저가 백합화 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그 가지는 퍼지며, 그 아름다움은 감람나무와 같고, 그 향기는 백향목 같으리니, 그 그늘 아래 거하는 자가 돌아올지라.”(호14:5-7) 마지막 때는 이긴자, 곧 감람나무가 나타나서 실제로 이 모든 말씀들이 응해져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을 물 붓듯이 부어 주고, 생수가 내리며, 이슬 같은 은혜를 우리의 육안으로도 볼 수 있게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 이긴자가 나타난다기보다, 이긴자가 나타나면 마지막 때가 되는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원수가 발등상 될 조건이 이루어져, 주가 오실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이긴자가 나타나기를 2천 년 동안이나 기다렸으며, 그 이긴자의 역사가 오늘날 이 땅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이긴자에게 “만국을 다스릴 권세를 준다.”(계2:26)고 했으며, “나도 내 아버지께 받는 것이 그러하다.”(계2:27)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즉 주께서 아버지로부터 받은 권세를 이긴자에게 맡겨 마귀가 발등상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때에 살고 있는지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