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권] Part 02 - Chapter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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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1.05.25
[2권] Part 02 - Chapter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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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2. 여호와의 비밀을 깨칠 때 

Chapter 11. 성경에 나타난 비밀의 의미 (1)



1) 시대와 비밀

 여호와의 경륜과 우리가 지켜야 할 하늘의 도와, 그 밖에 말세에 이루어질 일 등은 신구약 성경에 소상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주를 따르는 우리가 성경을 상고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헤아리는 데 성경만으로 충분치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문명의 발달과 인지의 계발에 따라 어느 세대에 특별한 지시를 내릴 필요를 느끼실 때 그렇습니다. 사람이 세상일을 할 때 사회 환경을 참작하는 것처럼 여호와께서 땅 위에서 살아가는 인간을 통하여 역사하실 때에도 땅의 여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부터 100년 전의 우리나라 서울과 오늘의 서울을 견주어 보면 모든 문물과 제도, 습성, 그리고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크게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령 100년 전의 서울에는 교통 수단이라고는 우마차나 가마, 인력거 정도 밖에 없었습니다. 남자들이 열두서너 살만 되면, 그러니까 초등학교 5, 6학년쯤 되면 상투를 틀어 장가를 보냈는데, 오늘날 만일 그런 부모가 이 서울 바닥에 있다면 미친 사람으로 간주될 것입니다.

 

 같은 나라에서 100년이라는 시간을 사이에 두고 생각해 보아도 이런 큰 차이가 있는데, 2천 년 전 주님 당시의 이스라엘과 오늘날 우리의 처지와 형편은 모든 면에서 하늘과 땅만 한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주님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많은 사람들이 호산나를 부르면서 열렬히 환영했지만, 지금 나귀를 타고 서울거리에 나타나면 곧 교통 위반죄로 잡혀서 즉심에 회부됩니다.

 

 가령 오늘날 바울이 2천 년 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이곳 서울에 나타났다고 한다면 하늘 아래 그런 시골뜨기가 없을 것입니다. 그에게는 모든 것이 호화찬란하게만 보여 어리둥절한 나머지 전도할 엄두도 얼른 내지 못할 것입니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사람들은 하나님을 멀리하게 마련입니다.

 

 지금은 어린애를 낳을 때 난산을 할 듯싶으면 얼른 제왕절개 수술을 하여 무난히 산모와 아기를 건질 수 있지만, 옛날에는 목숨을 내걸고 하나님의 기적을 바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린아이가 부모를 의지하는 힘이 강한 것처럼, 지적인 수준이 낮은 옛날 사람은 그만큼 여호와에게 기대어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그 세대마다 처지와 형편에 따라 필요한 지시를 내리시게 됩니다.

 

 바울은 주께서 비밀을 계시로 가르쳐 주신 것을 기록했다고 하였습니다.(3:1-3) 그런데 바울에게 내린 이 계시는 바울 당대의 모든 형편에 준하여 보여 주신 것이며, 이 계시를 받아 기록한 성경 말씀도 물론 우리에게 소중하지만, 그 중에는 이미 우리와 별로 연관이 없는 과거의 이야기에 그치는 것도 있습니다. 예컨대 할례에 대한 여호와의 지시가 그렇습니다.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에게도 구원의 길을 트기 위해 바울은 오해와 중상을 많이 받았으며 때로는 생명의 위협까지 느꼈으나, 오늘에 와서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가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마지막 때가 가까운 요즘에 와서는 여호와께서 이 세대에 필요한 지시를 당신의 종을 통하여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도 말씀이지만, 이와 같은 계시도 아울러 소중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성경 가운데, 마지막 날에 될 일은 주로 계시록에 기록되어 있지만, 요한에게 보여 준 계시도 당시의 모든 상황에 준하여 내린 것이므로 여호와께서는 오늘의 이 세대에 부합된 지시를 내릴 필요를 느끼고 계십니다. 또 계시록에는 이에 대한 것이 미리 예고되어 있습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2:17)는 말씀이 그것이며, 여기 흰 돌 에 기록한 새 이름이 바로 새로운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즉 이 흰 돌에는 여호와의 비밀이 기록되어 있는데, 받는 자밖에는 알 수 없으며, 따라서 이 말씀을 기록한 사도 요한도 알 수 없는 내용입니다. 이것은 여호와의 지시를 받아 움직이는 종만이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이 주의 부름을 받고 여호와께서 가르쳐 주신 새로운 하늘의 도를 전할 때 욕을 먹은 것도 성경에 없는 말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에 대해 성령을 충만히 받으면 여호와의 깊은 사정을 통달한다고 반박했던 것입니다.(고전2:10) 그렇습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비밀을 알게 된 것은 인간 바울의 지식이 뛰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그 속에 있는 성령의 힘이었습니다.

 

 바울의 편지가 그대로 성경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것은 유식하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위대한 신학자라도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자기 나름으로 풀이하는 데 그치며, 여호와의 깊은 사정을 드러내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과 인간의 지혜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말씀을 학문만으로 다룰 수 없는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2) 전략과 비밀

 여호와께서는 이 땅에 당신의 나라를 이룩하려는 크신 경륜을 위해 과거 6천 년 동안 당신의 적대 세력인 마귀와 싸워 왔으며, 또 오늘날도 부단히 싸우고 계십니다. 이와 같은 투쟁 과정이 곧 인류 역사의 한 모습이며, 거기에는 언제나 간과하기 쉬운 양자 간의 치열한 대결이 전개되어 왔습니다.

 

 하나님은 본래 전능하시지만, 대적인 마귀도 영체로 만만치 않은 적수이므로 하나님의 크신 권능에 도전해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투쟁에도 나라와 나라, 민족과 민족 사이의 투쟁과 마찬가지로 전략상 비밀이 없을 수 없습니다. 나는 앞으로 성경을 통하여 이 여호와의 비밀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시편에 보면, “내 백성이여, 내 교훈을 들으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내가 입을 열고 비유를 베풀어서 옛 비밀한 말을 발표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78:1-2) 여호와의 경륜이 기록되어 있는 성경이 알기 어렵고 해석이 구구하여 여러 교파로 갈리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만일 곧이곧대로 표현하면 곧 마귀가 알아차리게 되므로 일정한 기간 말씀을 감춰 두었다가 적당한 때에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통하여 터뜨리게 되어 있는데, 신학자들이 각자 자기 머리로 해석을 내리므로 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즉 성경에 비유로 기록된 비밀은 때가 되면 여호와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과 마귀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과 악령이 서로 겨루고 있는 것입니다. 이 경우에 양자는 인간을 사이에 두고 서로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고 합니다. 여호와를 공경하고 주님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마음속에서 기쁨이 솟아나지 못하고, 때로는 세상일에 얽매어 번거로움을 느끼며 마음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동요를 일으키는 것은 인간이 이 양자의 중간 위치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오호라, 나는 괴로운 사람이로다.”라는 바울의 탄식이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성령으로 역사하여 우리를 당신의 품으로 이끌어 가면 마귀는 이를 훼방하여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귀의 공작은 성령의 역사가 클수록 치열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번민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등지고 예수를 모르고 사는 사람은 세상일에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만 신앙 문제로 말미암은 괴로움은 모르고 살아갑니다. 이들은 아직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마귀의 편에 완전히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주의 편에 굳건히 서서 마귀가 아무리 건드려도 끄떡없게 되면 그때에는 신앙적인 고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자주 부르는 주의 은혜 사슬 되어 나를 주께 맵소서.”하는 찬송대로 이루어졌을 때가 그렇고, 바울이 말한 나를 본받으라.”는 경지가 그렇습니다.

 

 믿음은 하늘의 선물이라, 우리가 아무리 바동거려도 우리의 힘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이 있으면 사랑이 절로 우러나 악한 일을 하려고 해도 할 수 없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에 욕심, 교만, 시기, 미움 등등이 꿈틀거린다는 것은 아직 믿음 가운데 온전히 서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이 모든 원치 않는 죄의 찌꺼기들은 은혜를 받아 씻어야 합니다.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다.”(9:22)는 말씀 그대로, 우리는 주의 피로 죄를 씻어야 합니다. 주의 피는 우리에게 성령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죄를 씻는 종교입니다. 따라서 죄를 짓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죄를 씻는 것은 그보다 더 중요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