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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1.07.19본문
Part 02. 여호와의 비밀을 깨칠 때
Chapter 14. 바울의 비밀 (2)
2) 바울의 복음
사도 시대에 마가의 다락방에서 내린 불의 성령은 처음으로 체험하는 은사이므로 기쁘기만 하고 좋기만 하여, 백성들은 어린이와 같은 순진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목회자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을 따라 은혜의 창파 속에 젖었습니다.
그리하여 베드로가 하루에 3천 명을 회개 시키는 큰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는데, 이것은 성경에 베드로를 대표적으로 이와 같이 기록한 것이며, 다른 사도들도 베드로만은 못하지만 역시 하나님의 역사를 크게 부흥시켰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사도들을 통해 성령의 역사가 요원의 불길같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서 사도들은 이와 같은 큰 성과를 올리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두말 할 것도 없이, 성령이 하신 일입니다. 신유의 은사가 베풀어져 병이 낫고, 이적과 기사가 따랐습니다.(행4:30) 베드라고 설교할 때 듣는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했다고 하였습니다.(행10:44)
즉 불의 성령이 설교를 듣는 사람에게 임하여 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감각적으로 느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뭇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이를 간증하였기 때문에, 사도행전을 쓴 누가도 이렇게 기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고 성령이 몰래 임하였다면 장본인이 알 수 없을 것이며, 따라서 성령이 임한 여부를 말할 수 없을 터이니, 이 사도행전의 말씀을 누가가 마음대로 지어내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구차스럽게 옛날 일을 상상해 볼 것도 없이, 이것은 여러분 중에서 내가 이처럼 설교할 때 성령을 받아 본 분들은 잘 알고 계실것입니다. 또 누구든지 마음문을 열고 열심히 매달리면 이런 은총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여러분은 설교의 의미에 대해서 짐작이 갈 것입니다. 설교란 하나님의 신령한 말씀을 잘 쪼개어 영의 양식으로 양떼들에게 먹여 주는 동시에, 은혜를 끼쳐 주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설교는 미리 성경과 신학 서적을 뒤져서 원고를 작성하여 그것을 읽어 주다시피 하거나, 거기 준해서 기계적으로 떠드는 그런 설교와는 성격이 다릅니다. 사람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학문없는 자로 여겼으나(행4:13) 그들의 열변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럼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주께서 이들의 입을 당신의 마이크로 쓰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나 요한의 입을 거쳐 나온 말은 실상 주님을 대변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곧 성령의 조화입니다. 오늘날 신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못한 내가 하나님의 깊은 말씀을 드러내고 또 여러분에게 성령의 은사를 줄 수 있는 것도 이치는 마찬가지입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는 물론, 다른 문도들, 가령 스데반 같은 사람은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이적을 민간에 행하였습니다.(행6:8) 그리고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네 것 내 것 없이 지냈습니다.(행4:32) 이것으로 미루어 보더라도 당시의 성령의 역사가 어떠했던가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크게 일어난 성령의 역사가 결코 오래 지속되지는 못하였습니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차츰 수그러지고 시들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마귀가 교묘히 가로막기 시작한 것입니다.
즉 처음에는 속수무책이던 마귀가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나자 대책을 강구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 편에서도 손을 달리 쓰셔야 합니다. 이때 등장한 것이 바울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여호와께서도 바울을 내세워 새로운 법도를 전하게 하여, 할례를 받지 못한 이방인에게까지 복음의 은총을 확장시켰던 것입니다.
이때의 바울의 행적에 대해서는 이미 말씀드렸지만, 바울을 따르는 무리들은 지난날의 어린이와 같은 순진성을 잃고 먼저 따지기부터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그만큼 영적으로 자랐기 때문이며, 이런 의미에서는 가상하다고도 하겠으나 은혜 받는 데는 오히려 불리합니다.
하나님께서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 진리를 숨기고 아이들에게 나타내며,(마11:25) 마음이 어린이처럼 순진하게 되지 못하면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기 때문입니다.(마18:3)
이들 중에는 사도들로부터 성령의 은총을 받고 바울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던 자들도 많았습니다. 이들은 거의 다 영의 세계에서 어른이 된 것으로 자부하고 일일이 비판적은 태도로 바울을 대했으므로, 바울은 전도에 나선 지 처음 몇 해 동안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 슬슬 변죽만 울려오다가 10여 년이 지나 어느 정도 따르는 식구가 늘어 기반이 잡힌 후에야 겨우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동안에 벙어리 냉가슴 앓듯 한 바울의 심정을 누가 짐작이나 하겠습니까? "내가 한 사람을 아노니, 14년 전에 3층천에 갔노라."(고후12:2) 바울은 3층천에 갔던 이야기를 14년 후에야 비로소 터뜨렸던 것입니다. 자기의 기반이 다져지기 전에 이런 실토를 해 봤자 아무도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코웃음을 칠 테니 말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바울은 주님 생전에 택함을 입은 사도의 한 사람이 아닙니다. 이를테면 과외의 사도라고나 할까요. 그러기에 바울은 자기를 따르는 많은 무리들에게, "내가 너희에 의해 사도의 인침을 받았다."(고전9:2)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바울은 자기가 거느리고 있는 신도들에 의해 사도로 인정받은 것입니다.
그것도 과거의 어느 누구 못지않은 사도임을 공공연히 선언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고후12:11-12) 어찌 보면 너무 도도한 것 같지만, 이것은 "나를 본받으라."(고전11:1)고 외칠 정도의 바울로서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창세전부터 감추었다가 이제는 나타내신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좇아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비밀의 계시를 좇아 된 것이니."(롬16:25-26) 즉 바울이 전한 하나님의 도는 여호와께서 창세전에 감춰 두었다가, 때가되어 터뜨리는 '비밀'이었던 것입니다.
그때그때 세대가 다르면 주님의 종도 다르지만, 하나님의 섭리만은 끊임없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살아서 움직이시는 증거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