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권] Part 03 - Chapter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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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1.10.31
[2권] Part 03 - Chapter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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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3. 이긴자에게 허락한 주님의 언약       

Chapter 23. 이긴자의 보좌


 지금까지 반년 이상이나 계속해서 주께서 이긴자에게 약속하신 일곱 가지 특권에 대하여 이야기해 왔습니다. 첫째로, 그에게 '생명나무 과일'을 주어 먹게 하고, 둘째로,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게 하고, 셋째로, '감추었던 만나와 흰 돌'을 주고, 넷째로, '만국을 다스릴 권세'와 '새벽별'을 주고,


 다섯째로, '흰 옷'을 주며, '생명책에서 흐리지 않고', 여섯째로, '성전 기둥'이 되게 하고 그 위에 하나님과 새 예루살렘과 주님의 이름을 기록하고, 일곱째로, 주께서 앉으신 '보좌'에 앉히겠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이 가운데서 마지막의 보좌에 대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성경 말씀을 그대로 인용하면,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앉은 것같이 하리라."(계3:21) 했습니다. 이것은 실로 엄청난 은총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긴자의 사명과 책임이 어떻다는 것을 능히 알 수 있습니다.


 주께서 이긴자에게 약속한 은총과 권능은 마지막 일곱 번째에 와서 절정에 도달해 있습니다. 그것은 주께서 당신이 하나님의 보좌에 함께 앉은 것처럼, 이긴자를 당신의 보좌에 함께 앉도록 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여기 "함께 앉는다."는 말은 문자 그대로 한 의자에 같이 앉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주님이 하나님의 보좌에 함께 앉는다는 말은 주께서 땅에 오셔서 이기심으로 말미암아 하늘나라에서 더욱 강화된 권세를 가지심을 비유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이긴자를 당신의 보좌에 함께 앉게 한다는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여러분은 이미 짐작이 갈 줄 압니다.


 그러므로 이긴자가 나타나면 하늘의 큰 은사와 이적이 일어나게 마련이며, 천사들이 분주히 움직이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직접 연결된 빛의 아들을 앞세워 당신의 뜻을 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실로 영적인 위대한 건설 사업입니다.


 그런데 세상일도 그렇지만 건설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파괴는 쉽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가나안땅으로 인도하는데 40년이 걸렸으며, 그나마 두 사람밖에 들어가지 못했으나, 소돔과 고모라 성을 파괴할 때에는 순식간에 쉽사리 해치웠습니다.


 성령과 악령의 싸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은 여호와의 뜻을 이루려고 하지만 악령은 이를 훼방하려 듭니다. 이루기는 어렵지만 훼방하기는 쉽습니다. 때 묻은 옷을 희게 빨기는 어렵지만 희게 빨아 놓은 옷에 먹물을 끼얹기는 쉬운 것과 이치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역사가 크게 내리면 그만큼 마귀도 극성스럽게 가로막는 법입니다. 여러분이 신앙 가운데 달리면서 남달리 조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여러분은 때때로 악령이 자기를 조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세상과 공중 권세를 잡은 마귀의 위력이 얼마나 강하다는 것을 깊이 깨달은 사람이면 예수를 잘 믿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직도 세상 줄에서 놓여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영의 세계를 깊이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튼튼히 간직하려면 우선 알아야 합니다.


 이긴자가 나타나면 언약 그대로 하늘의 만나와 마지막 때에 이루어질 새로운 말씀이 터져 나가게 마련입니다. 만일 그게 실제로 되지 않으면 그것은 가짜입니다. 주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지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하늘에서 하는 일을 자기의 좁은 소견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본의 아닌 오해와 착각이 일어나는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제사장의 아들 세례 요한이 주님의 길 예비자로, "내 뒤에 오실 자는, 내가 그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할 인물"이라고 말했을 때, 사람들은 누구나 제사장보다도 더 지체 높은 집안에서 세례 요한의 몇 갑절 위풍이 당당한 분이 메시아로 나타날 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그들 앞에 나타난 메시아는 초라한 시골 목수의 아들이었습니다. 이런 보잘것없는 촌뜨기가 나타나, "나를 말미암지 않고서는 하늘나라에 가지 못한다."고 큰 소리를 탕탕치니,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를 손가락질하면서 "참람되다!"고 욕한 것도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겨 제사만 정성껏 드리면 누구나 다 구원을 얻게 마련인데, 네놈이 너를 거쳐야 한다니, 이 무슨 잠꼬대 같은 수작이냐?"하고 공박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끝내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을 때 성전 휘장이 갈라져 나갔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지난날의 제사가 앞으로는 상달되지 않는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을 말미암지 않고는 구원이 없다는 것을 입증해 보인 것입니다. 온전한 것이 오면 온전치 못한 것은 폐하게 마련입니다.(고전13:10)


 그런데 주께서 이긴자에게 당신의 보좌에 함께 앉히겠다고 약속한 이 보좌는 대체 어떤 보좌일까요? 주께서는 제자들에게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 나를 좇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마19:28)고 말씀하였습니다.


 즉 베드로를 비롯한 열두 제자들에게 열두 보좌에 앉힌다고 했는데, 이것은 이긴자에게 앉히겠다고 약속한 주님의 보좌와는 분명히 다릅니다.


 그럼 주께서 이긴자에게 앉혀 준다는 보좌는 어떻게 생겼을까요? 이건 이상 중에 보여 주시기 전에는 그 생김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많은 선지자나 주의 종들, 가령 에스겔이나 이사야, 사도 요한 같은 분들은 하나님의 보좌를 보았습니다.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보라 하늘에서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과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계4:2-3)


 주께서 이긴자에게 함께 앉히겠다고 약속하신 보좌는 이런 보좌입니다. 즉 이상 중에 보려고 해도 성령의 감동을 입지 않고서는 볼 수 없는 무지갯빛의 눈부신 보좌입니다.


 그 이긴자의 보좌에 대하여 성경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무론 대소하고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하더라."(계19:4-5)


 이것은 천년세계가 지나 마귀의 세력을 박멸하고 심판이 시작되기 전에 보좌 앞에 선 수많은 성도들이 여호와에게 영광을 돌리는 한 장면입니다. 즉 여호와의 보좌 앞에서 24장로와 네 생물들이 여호와께 영광을 돌렸더니, 보좌에서 "우리 하나님에게 찬송하라."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이것은 누구의 음성이겠습니까?


 여기 보좌에서 "우리 하나님"이라고 했으니, 성도의 무리에 속한자임이 분명합니다. 만일 이 목소리의 임자가 주님이라면 "내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주님도, 24장로도, 네 생물도, 천사도 아닌 다른 사람, 곧 이긴자임이 분명합니다. 그렇습니다. 이긴자가 주께로부터 허락 받은 보좌에서 외친 것입니다. 이 보좌는 이긴자의 권세를 상징합니다. 


 그런데 이긴자라고 해서 반드시 주의 보좌에 함께 앉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긴자가 된 후에도 자기의 사명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성경에는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계2:26)라는 단서가 달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설사 이긴자라 하더라도 자기 사명을 완수하지 못하고 앞선 종처럼 곁길로 들어서면(렘11:16 참조) 이런 영광을 누릴 수 없게 됩니다. 주님도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땅에 오셔서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고 이기심으로 말미암아 영광의 보좌에 함께 앉게 된 것입니다.(요7:39 참조)


 하나님이 당신의 보좌에 주님을 앉히고, 주님이 당신의 보좌에 이긴자를 앉히는 것은 앞으로 마귀와 일대 결전을 치르기 위한 하나의 포석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마귀의 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계13:2) 여기서 '그에게'란 짐승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대적인 용이 짐승을 자기 보좌에 앉히고, 권세를 주어 마지막 싸움에 대비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편과 마귀의 편, 두 패로 갈라지게 됩니다.


 하늘의 군대는 백마를 타고,(계19:14) 마귀의 군대는 홍마를 타며,(계6:4) 전자는 세마포 옷을 입고,(계19:14) 후자는 붉은 옷을 걸치고(계17:4) 서로 싸우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아마겟돈 전쟁입니다.(계16:16)


 천년세계란 요컨대 하늘 군대가 이 전쟁 준비를 하는 곳입니다. 이때 마귀를 무저갱에 일단 가두었다가 천 년이 차면 마귀를 잠깐 내어놓는데, 이 기간이 마흔 두 달이며, 이때 두 증거자도 쓰러지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의 상징적인 비유로, 육의 죽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영의 세계에 그런 죽음이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시체가 있는 곳이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곳"(계11:8)으로 되어있는 점으로 보더라도 그 상징성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겟돈 전쟁에 출두하는 하늘의 군대가 입을 세마포 옷을 '입게 하는 ' 역할을 주님 대신하는 것이 곧 이긴자이며, 이를 가리켜 주께서는 당신의 보좌에 앉히겠다고 하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