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정보
DATE. 2021.11.01본문
Part 04. 어둠을 헤치고
Chapter 24. 하늘의 신호로서의 나팔
1) 예고의 나팔
성경에 보면 나팔 소리에 대하여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가나안땅으로 갈 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너희가 내 언약을 지키면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는 말씀을 전하고는, 당신께서 나팔 소리와 함께 시내산에 이르겠다고 하였습니다.
이 경우에 나팔 소리는 여호와께서 강림하시는 신호로 백성들에게 미리 알리는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백성들을 시내산 기슭에 모이게 할 때 여호와께서는, "나팔을 길게 불거든 산 앞에 이를 것이니라."(출19:13)고 미리 지시하시고, 모세는 백성들에게 옷을 깨끗이 빨아 입고 여인을 가까이하지 말고 모이라고 당부했습니다.
이윽고 약속된 날 아침에 우레와 번개와 짙은 구름이 산꼭대기를 에워싼 가운데 커다란 나팔 소리가 울리자 모세는 백성들을 거느리고 하나님을 맞으러 산기슭에 나갔습니다. 앞을 바라보니 시내산에는 연기가 자욱하고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 산꼭대기에 강림하셨습니다.
만일 오랫동안 길게 나팔을 불어, '여호와께서 강림하시니 모이라!'는 신호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이 모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될까요? 여호와의 징계가 내려질 것입니다. 이 시내산 꼭대기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유명한 10계명을 주신 것은 여러분이 다 잘 아시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신구약시대를 막론하고 아무도 여호와를 정면으로 본 사람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 육안으로 영광 중에 계신 여호와를 보면 그 휘황찬란한 빛으로 말미암아 쓰러져 버리는 것입니다. 인간이 죄에서 완전히 헤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연기가 자욱한 가운데 시내산 꼭대기에 강림하신 것도 까닭이 있습니다. 연기로 당신의 정체를 가리지 않으면 인간들이 쓰러지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다메섹에 가는 도중에 주님을 대하고 한동안 눈이 멀어버린 것으로도 우리는 그 경위를 알 수 있습니다.
시내산 꼭대기에 여호와께서 강림하시는 신호로 나팔을 분 후로 여호와께서는 당신이 역사하시는 신호로도 나팔을 사용하였습니다. 즉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가나안땅에 들어가 할 일을 지시하는 가운데, 7년마다 안식의 해를 정하고, 그 해에는 땅에 곡식도 심지 말고, 종들에게 일을 시키지 말며,
지난 6년 동안에 생산한 것으로 먹고 마시게 하고, 7년마다 돌아오는 안식의 해를 일곱 곱절한 49년 다음 해, 곧 제 50년을 거룩한 해로 정하고, 속죄일(7월 10일)에 "전국에서 나팔 소리를 크게 내어 제 50년을 거룩하게하여 주민들에게 자유를 공포하라."(레25:9)고 하였습니다.
전쟁 때에도 이 나팔을 자주 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은 나팔들을 만들어 회중(會衆)을 소집하여 진(陣)을 진행케 할 것이라. 두 나팔을 불 때에는 온 회중이 회막(會幕) 문 앞에 모여 네게로 나아올 것이요, … 무릇 진행하려 할 때에는 나팔 소리를 울릴 것이요'"(민10:1-8)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외적과 싸워도 하나님을 등에 업고 있었으며, 나팔을 신호로 여호와와 긴밀한 연결을 취했던 것입니다. 한편 상대편은 마귀의 힘을 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가담해 주시지 않으면 전멸하게 마련이었습니다.
2) 진격의 나팔
성경에 보면 모세는 나팔을 불 기회가 별로 없었으나 그 후계자 여호수아는 나팔을 자주 불었습니다. 모세는 주로 기사와 이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나갔으나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의 원주민들을 정복해 나갔습니다. 그러므로 이때의 이스라엘 민족은 잘 뭉쳐서 외적과 싸웠으며, 모세에게 하듯이 툭 하면 불평하고 비난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모세는 여호와의 지시에 따라 12지파의 각 족장(族長)들을 가나안 광야에 보내며, 그 땅에 사는 주민들의 강약과 다소와 성읍(城邑)의 형편 등등을 탐지해 오라고 지시하였습니다.
이들이 40일 동안 적진을 탐지하고 돌아와 보고하는 말이, "그곳 국민들은 힘이 장사이고 성읍이 견고하여 … 우리는 그들 앞에 흡사 메뚜기와 같은 존재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자 온 회중은 저마다 모세를 원망하고 애굽으로 되돌아가자고 우기며 소란을 피웠습니다.
이때 정탐꾼으로 갔던 여호수아와 갈렙이 나서서, "가나안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기름진 땅으로,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고, 또 그 땅의 백성들을 두려워 말라."고 주장하니, 온 회중이 이들을 돌로 치려고 하였습니다.
이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을 작정인지 알 수 없으니, 차라리 전염병으로 이들을 멸하고, 너를 통하여 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여호와에게, "그렇게 하시면 여호와께서 이 백성에게 주기로 약속하신 땅에 인도할 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에 광야에서 죽였다고 말할 것"이라고 아뢰고, 용서해 주실 것을 간구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여호수아와 갈렙만 가나안땅에 들어가게 했습니다.(민14장 참조) 우리는 여호와가 시키시는 일에 불순종했을 때 이와 같이 징계가 따른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여호와에게 이치에 맞게 간구한 기도는 응답을 받는다는 것도 아울러 명심할 일입니다.
즉 모세가, 만일 여호와께서 광야에서 당신의 백성을 다 쓸어버리면 가나안땅에 이끌어 들일 힘이 모자라기 때문이라고 오해할 것이며, 따라서 여호와의 영광이 그만큼 가려진다고 아뢰자 이 간구를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기도에 응답을 받으려면 여러 가지 조건이 따르지만, 그 기도의 내용이 이와 같이 이치에 닿는 것도 한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정탐꾼의 말에 겁을 집어먹고 여호와를 원망한 이스라엘 민족들을 책망하였습니다. 모세는 20세 이상 되는 자 가운데는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가나안땅에 못 들어가고, "땅을 탐지한 날수인 40일의 하루를 1년으로 환산하여 40년 동안 광야에서 유리방황하게 되리라."(민14:34)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었을 때 정신이 아찔했습니다.
자기가 하나님으로부터 맡은 사명을 이루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모세는 이때부터 약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여전히 권능을 주시고 만나를 내리게 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보살피게 했습니다. 모세의 권능을 거두면 큰 혼란이 일어날 우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40년이 지나 하나님에게, 자기만은 그 땅에 들어가게 해 달라고 간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노하셔서 모세의 기도를 듣지 아니하시고, 다시는 구하지 말라고 일렀습니다.(신3:26) 그래서 모세가 이 백성들을 위해 자기의 후계자를 정해 주시기를 눈물로 간구하니, 그제야 비로소 하나님께서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예비해 두었노라고 알려 주셨습니다.(민27:18)
한편 모세의 사명을 여호수아에게 인계하게 하신 여호와께서는 하늘에서 새로운 방법으로 지시를 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총은 같지만 모세와 여호수아의 사명은 각각 달랐기 때문입니다. 즉 모세는 애굽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어내고, 여호수아는 가나안땅에 이미 살고 있던 이민족들을 하나하나 점령해 들어가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는 권능 하나에만 의존해 오던 모세 때와는 달리, 직접 적과 싸워서 이기기 위해 전투태세를 갖춰야만 했습니다. 그리하여 여호수아는 기운이 센 장정들을 뽑아 전투 훈련을 실시하였습니다. 모세를 따르면서 제사나 드리던 때와는 처지가 크게 달라진 것입니다.
또한 모세 때에 광야에서 유리방황하는 생활을 하는 중에 미처 엄두를 내지 못한 할례(割禮)를 일제히 실시하였습니다. 할례를 받지 못하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자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여호수아는 이들 무할례자들을 한꺼번에 할례 산에 모아 놓고 집단적으로 할례를 받게 한 후, 우선 여호와의 백성으로서의 자격부터 갖추도록 하였습니다.(수5:3)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너간 후에 처음으로 대적하게 된 것이 여리고성이었습니다. 여리고성으로 말하면 큰 돌로 된 매우 견고한 성이며, 이중벽으로 외벽(外壁)은 폭이 2m이고, 내벽(內壁)은 4m, 높이가 10m나 되어, 여간해서는 무찌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모든 군사를 풀어 성의 주위를 날마다 한 번씩 엿새 동안 돌고, 일곱째 날에는 성을 일곱 번 돌며,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 백성들이 일제히 외치고 나서면 성이 무너질 것이다."(수6:1-5)라고 일렀습니다.
이때의 나팔은 전투에 사용한 것으로, 그토록 견고하던 여리고성은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지시대로 움직여 칼 한번 대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권능에 의해 점령해 버렸습니다.
이때에 여호수아의 정탐꾼을 숨겨 준 여리고성의 기생 라합은 실로 현명한 여자였습니다. 그녀는 응분의 보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비록 기생이기는 하지만 당시의 정황을 올바로 판단하고 여호와의 편에서 움직였던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110세에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는 많은 사사(士師)들을 시켜 이스라엘 백성들을 치리하게 하였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의 하나가 기드온입니다. 당시에 미디안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괴롭히므로, 기드온은 여호와의 보내심을 받아 3백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미디안 사람들을 쳐부수고 이스라엘을 건져 내었습니다.
"여호와의 신이 기드온에게 강림하시니, 기드온이 나팔을 불며 아비에셀 족속이 다 모여서 그를 좇고, 기드온이 또 사자(使者)를 온 므낫세에 두루 보내며 그들도 모여서 그를 좇고, 또 사자를 아셀과 스불론과 납달리에 보내며 그 무리는 올라와서 그를 영접하더라."(삿6:34)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들어 쓰시기로 점을 찍어 놓은 인물이지만, 그에게 여호와의 신이 임한 후에 나팔을 불어 수많은 무리들이 모여들게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람도 제때가 되어 여호와의 신이 임하였을 때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하였으며, 그 이전에는 잠자코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드온이 분 나팔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는 하나의 신호였습니다. 그리하여 나팔을 불자 하나님께서는 기드온과 행동을 같이 하였습니다.
그런데 기드온의 나팔 소리에 호응하여 그의 산하에 모여든 장정들의 수가 너무 많아 사람의 힘으로 넉넉히 미디안을 쳐부술 수 있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수를 3백 명으로 줄였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언제든지 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약자를 통하여 강자를 누르고 당신의 사신 증거를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사람의 힘으로 적을 무찌르면 당신의 영광은 그만큼 가려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역사가 어떻게 이루어진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도 하나님의 일을 올바로 받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말하되, 너를 좇는 백성이 너무 많은 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붙이지 아니하리라.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자긍(自矜)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사7:2)
그리하여 기드온은 자기 산하에 모여든 장정을 3만에서 3백 명으로 줄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병력 감축입니다. 소수의 병력으로 다수의 적을 무찔러야 인간의 힘이 아니라 여호와의 능력으로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는 것이 분명히 뭇사람에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기드온이 만일 많은 사람을 거느리고 미디안을 무찌르면 어떻게 될까요? 그 영예는 기드온에게 돌아가고 하나님의 영광은 가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기드온이 "내려가 적진을 치라."(사7:9)는 여호와의 명령을 받고 적진 가까이 접근해간즉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 및 동방의 수많은 사람들이 바닷가의 모래알같이 모여 있었습니다.
이때 기드온이 부하 한 명과 함께 미디안의 진에 가본즉, 적병 한 사람이 보리떡 한 덩이가 미디안 진영으로 굴러 들어가 그들의 장막을 쳐부수는 꿈을 꾸었다고 말하였는데, 다른 한 사람이 이것은 하나님이 기드온과 함께 하신다는 꿈이라고 해몽을 하였습니다.(삿7:13-14)
기드온은 여호와에게 경배하고, 휘하 군대를 세 분대로 나눠 각자의 손에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리고,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감추게 하고, "나와 나를 좇는 자가 다 나팔을 불거든 너희도 그 진지의 사면에서 나팔을 불며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하고 소리치라."(삿7:17-18)고 일렀습니다.
이들 장병이 밤중에 적진 몰래 들어가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 왼손에 횃불을 들고 쏜살같이 진격해 들어가니, 적은 혼비백산하여 서로 자기편끼리 칼날로 치고, 남은 무리들은 모두 나 살리라고 도망을 하였습니다.(삿7:18-23 참조)
이것은 구약시대의 육적인 싸움이 전개되는 이야기지만, 영적인 나팔을 불어 마귀를 소탕하는 오늘날 신약시대도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원리는 마찬가지입니다. 즉 하나님의 힘으로 역사하여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에 인간의 힘이 개입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꺼리십니다. 아무리 권능이 강한 하나님의 종이라도 그 영광이 하나님에게 돌아가지 않고 하나님의 종에게 돌아가는 것을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도 같은 이치에서입니다.
다만 육을 죽여서, 그러니까 적을 무찔러 여호와에게 영광을 돌리는 구약시대와는 달리, 오늘날에는 상대방의 영을 살림으로써 하나님에게 영광이 돌아가는 것이 다를 뿐입니다.
여호와께서 없는 데서 일을 시작하고, 약한 자를 들어 쓰시는 것도 이치는 같습니다. 즉 결국은 어디까지나 여호와에게 영광이 돌아가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를 하면 이런 말을 흔히 듣습니다. "나는 돈 좀 벌어놓고 예수 믿을래요." , "환경 정리가 끝나면 교회에 나갈게요." 모두들 몰라서 하는 소리입니다.
평탄한 처지에서 예수를 믿으려는 사람은 평탄한 예수를 믿겠다는 것으로, "나를 따르는 자는 내 십자가를 지라."는 주님의 뜻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