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정보
DATE. 2021.12.10본문
Part 04. 어둠을 헤치고
Chapter 28. 방언(方言)에 대하여 (1)
1) 방언의 유래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 노아 때까지 인간들은 한 마디로 말해서 미개인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대체로 움막이나 토굴에서 살면서 생식(生食)을 하며 연명하였습니다. 그들이 하는 일이란 먹고 자고 애기를 낳는 정도로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성격이 거칠며, 옳고 그른 것을 잘 분간하지 못하고, 사용하는 연장이라야 돌그릇 정도에 그쳤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단순하고 순박한 생활을 하던 그들도 하나님을 공경할 줄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삼라만상이 신기하고 두렵기만 했습니다. 하늘에 별들이 반짝이거나 땅에서 꽃이 피어나는 것이 신기하고, 번개가 비치고 천둥이 울리는 것도 짐승의 습격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척 두려웠습니다.
그들은 인지가 발달되지 못한 만큼 자연으로부터 받는 위협에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비가 조금만 많이 와도 손발이 묶여 며칠씩 굶기가 일쑤요, 배탈이 나도 약 한 모금 마셔 볼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이런 재앙들을 고스란히 당하는 수밖에 없었으며, 찾는이는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 이 화를 좀 면케 해 주옵소서!" 하고 그들은 무릎을 꿇고 하나님에게 호소했던 것입니다. 한편 하나님께서도 이런 단순한 동기에서 당신을 찾는 이들의 간구를 기특하게 여겨 가까이하시면서 보호해 주기도 했으나, 본격적으로 이들을 치리하여 당신의 뜻을 펴기 위해 역사할 단계에는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여자를 좋아하여 죄악의 도가니에 빠지게 되자 하나님의 신이 이들을 외면하고,(창6:3) 하나님께서 땅 위에 사람을 지으심을 한탄하신 나머지 홍수로 사람들을 멸한 후에, 의로운 노아의 후손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살아남은 노아와 그 일가족, 여덟 사람에게는 파격적인 대우를 해 주었으니, '이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고기를 이들의 손에 붙인 것이 곧 그것입니다.(창9:1-3) 이때부터 짐승들도 성미가 한결 유순해져서 전과 같이 사람을 위협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노아는 아들 셈과 함과 야벳, 이렇게 삼 형제를 낳았는데, 이들은 각각 황인종과 흑인종 및 백인종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즉 셈은 동양 사람의 조상이 되고, 함은 아프리카 사람, 그리고 야벳은 유럽 사람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함)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는 의인 노아의 기도가 그대로 응해져서,(창9:26-27)
대체로 오늘날 백인이 세계를 지배하게 되고, 흑인이 그의 종노릇을 하게 되는 한편, 황인종은 비교적 성격이 온순하여 예의바르고 하나님을 공경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비롯하여 이삭과 야곱, 그 아들 12지파와 그 육적인 후예인 주님, 그리고 역대의 하나님의 위대한 종들이 다 셈족에서 배출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인류는 백인종, 황인종, 흑인종으로 피부 색깔이 각각 다르지만, 이것은 물론 환경에서 오는 것입니다. 즉 셈은 동방의 온대지방으로 이동하고, 함은 남방의 열대지방으로, 야벳은 북방의 한대지방으로 흩어져 사는 동안에 주로 기후의 차이에 의해 그렇게 된 것입니다. 이들이 각각 사방으로 분산하여 살게 된 데는 이런 사연이 있습니다.
"온 땅의 구음(口音)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이었더라.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하고, 서로 말하되 …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말)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창11:1-8)
하나님의 특별한 택하심을 받아 살아남은 노아의 자손들은 "우리의 이름을 내고 지면에서 흩어짐을 면하자." 하여 하나님을 멀리하려 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말을 혼잡하게 만들고 지면에서 흩어져 살게 했습니다. 땅 위에 거하는 인류의 피부 색깔이 크게 셋으로 갈리고, 말이 수백 가지로 달라진 연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의 법도를 전하는 데는 큰 장애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지역마다 말이 달라, 몇 백 리 밖에만 나가도 의사 소통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권능으로 이들 하늘의 도를 전하는 사람이 외국어를 하게 하여 듣는 사람이 알아듣게 한 것입니다. 이것이 곧 방언입니다.
이런 방언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성령의 은사입니다. 가령 베드로의 경우를 보면, 그가 하루에 3천 명을 회개시킬 때 그 3천 명 가운데는 멀리 떨어진 여러 이방 지역에서 모여들어 제자들이 하는 방언을 듣고 놀라서 이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방언을 할 능력을 주지 않았던들 전도에 큰 애로가 생기며, 따라서 하나님의 일이 그만큼 지장을 받게 됩니다. 바울이 방언을 받으라고 말한 것도 이런 의미의 방언입니다. 이것은 물론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방언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성령을 받은 증거이기도 합니다.
2) 방언의 의미
하늘에서 하나님이 이 땅의 인간에게 이모저모로 역사하시는 것은, 전에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요컨대 잃었던 에덴동산을 되찾기 위해서입니다.
구약시대에는 많은 선지자와 사사들을 들어쓰시고, 그래도 여의치 않아 당신의 독생자까지 보내어 그런 끔찍한 희생의 제물을 드리게 하시고, 또 오늘날 이긴자에게 다른 보혜사 성령을 보내어 특별한 은총 가운데 역사하시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모든 하늘의 움직임은 앞에서 말씀드린 여호와의 크신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태초의 에덴동산에 마귀가 검은 마수(魔手)를 뻗쳐 아담과 하와를 꾀어낸 후로는 세상과 인간을 마귀가 차지하고(마4:9) 공중 권세까지 잡고는(엡2:2) 하늘문을 멋대로 닫아 버리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귀도 이렇게 힘이 대단합니다.
다만 하나님은 능히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 내시지만, 마귀는 모방할 뿐 창조는 하지 못합니다. 이에 대한 해명은 출애굽기 7장 이하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지만, 우리는 산 체험을 통해서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마귀의 꼬임에 빠진 후, 인간들이 무지할 뿐만 아니라 날로 죄악에 크게 물들어 가므로 홍수로 멸하고, 의로운 노아의 자손으로 당신의 경륜을 이루는 일꾼을 삼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도 여호와를 멀리하므로(창11장 참조)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삼고, 그 자손들에게 할례를 시켜 당신의 백성으로 택하고, 이들이 지켜야 할 하늘의 법도를 주셨습니다.
이 백성이 이스라엘 민족이요, 이 법도가 모세의 율법입니다. 그러니까 여호와께서는 이 백성들만 유심히 살피시며 큰 은총 가운데 다스려 왔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민족, 곧 이방인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마귀가 시키는 대로 우상을 섬기며 여호와를 외면하고 살았던 것입니다.
여기서 어떤 분은, 그건 하나님께서 너무나 편파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게 아니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렇게 된 경위를 안다면 이해가 갈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일부러 그런 차별을 두신 것이 아니라, 당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는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선민(選民)을 내세워 특별한 은총 가운데 당신의 군병을 키우려 해도 일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드디어 주님은, "내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마21:48)고 말씀하였습니다. 이것은 주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것을 보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에 얼마나 애로가 많은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가로막는 악의 세력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여호와의 움직임을 이해하려면 언제나 그 대적 마귀의 존재를 계산에 넣어야 합니다.
하늘의 도를 전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좀처럼 먹혀 들어가지 않습니다. 본인은 모르고 있지만, 마귀가 어느새 딱 가로막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 새 역사에 대해서도 하나님께서 보여주실 만큼 보여주셨으므로 이것이 보통 은총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도 남지만, 전하면 금세 호응할 것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실망하지 말고 꾸준히 전해야 합니다.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불러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단술에 배부를 생각을 말아야합니다. 하나님께서도 당신이 크게 들어 쓰시는 에스겔에게 이상중에 지시를 내리시고,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겔3:11)고 일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전하는 데 마귀의 훼방 이외에 현실적인 애로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곧 방언입니다. 즉 같은 이스라엘 사람들도 사방에 흩어져 살아가는 동안에 말이 달라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오묘하고 신령한 하늘의 가르침이라도 상대방이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면 이것은 돼지에게 진주를 던지는 격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 당시에는 오늘날과 달리, 문명이 발달되지 못하여, 의사 전달의 수단이라야 사람이 직접 말로 전하는 것이 고작이어서 전도에 큰 지장을 받았습니다. 현재 이 지구상에는 사람들이 약 150개 국가를 이루고, 450여 가지 말을 하면서 살아가는데, 어느 구석에서 무슨 색다른 일을 하였다 하면 몇 시간 이내로 전 세계에 퍼지게 됩니다.
가령 월남에서 공산군이 성도(省都) 하나를 점령했다면, 그 소식이 매스컴을 타고 금방 온 세계에 뉴스로 보도됩니다. 일본쯤은 점심 먹으러 왔다 갔다 할 수 있을 정도로 지구가 좁아진 셈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가리켜 '지구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옛날에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은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그나마 언어때문에 많은 애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권능으로 이 언어의 장벽을 헐어 버렸습니다. 여기에 사용된 것이 방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