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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1.01.03본문
Part 03. 승리의 대열에서
Chapter 23. 남방여왕(南方女王)이란?
주님은 이 땅에 오시기 전에 말씀의 존재로 계셨고,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셨다가 승천하신 후에 스데반이 순교할 때 여호와의 우편에 계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에 대하여 한 가지 더 알고 지나가야 할 것은 주님의 육적인 족보와 지파에 대한 것입니다. 사가랴와 세례 요한은 제사장 직분을 맡을 수 있는 이른바 아론의 반열에 속한 레위지파이고, 요셉과 예수님은 유다지파로서 제사장직을 맡을 수 없는 입장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레위지파에 속한 제사장들의 위치에서 보면 존재가 없는 비천한 자였던 것입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사53:2)라는 말씀 그대로, 주님은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인 줄 알기 때문에 우러러보이지만, 당시의 인자(人子)이신 주님은 볼품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제사장의 가정에서 태어난 귀한 신분으로, 그의 권위와 발언의 공신력(公信力)은 대단하였던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메시아의 길 예비자로 등장하여 외칠 때 사람들이 그에게 와서, “당신이 메시아입니까?” 하고 물은 것으로도 우리는 당시의 처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세례 요한이 증거한 메시아가 나사렛 동네의 목수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실망하여 외면한 것도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구세주요, 메시아인 주님은 당신의 크신 사명을 성취하기 위해 모든 율법은 세례 요한 때까지로 끝난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이 하늘의 제사장의 위치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법도를 뒤집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주님은 아론의 반차보다 차원이 높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로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아론의 반차를 통하여 된 제사장이라 하더라도 땅에 속한 제사장밖에 될 수 없었으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세운 제사장은 하늘에 속한 제사장의 직분을 맡게 되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가버나움회당을 본거지로 하여 하늘의 도를 전하실 때 당신을 증거하기 위해 많은 이적과 기사를 행하였습니다. 그중에는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덩이로 5,000명을 먹이고 남게 한 이적도 들어 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과연 놀랐습니다.
그리하여 마치 모세가 광야에서 40년 동안이나 만나를 내리게 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먹여 살린 것처럼 계속해서 떡을 배불리 먹여 줄 것이라는 생각에서 많은 무리들이 주님을 따랐습니다.
이적과 기사는 당대의 사람들에게 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켜 저마다 이 신기하고 놀라운 하나님의 권능에 감탄했으며, 주님 편에서는 이렇게 함으로써 당신이 메시아임을 입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주님께서 당신을 증거하는 하나의 방편으로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면 그들의 관심은 이적 자체에 집중되고, 소중한 설교 말씀은 귀 밖으로 흘려버리기가 일쑤였습니다. 당시의 사람들이, 특히 믿노라 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주님의 기적과 기사에 대하여 얼마나 흥미를 느끼고 있었던가를 성경은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에서 누가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이적을 보고자 하나이다.’ 예수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이적을 구하나 … 심판할 때 남방 여인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들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 여왕이 땅 끝에서 나와서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음이어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마12:38-42)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과 행동을 낱낱이 책잡고 비방하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이와 같이 주님에게 이적과 기사를 더 보여 달라고 요구하자, 주님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이적을 구한다고 음성을 높이셨습니다.
하나의 방편으로 행하는 이적을 저들은 끝까지 목적으로 오인하여 진리의 말씀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주님은 요나의 전도를 듣고 죄과를 뉘우친 니느웨 사람들이 오히려 세상을 심판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여,
성실치 못하고 믿음이 없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책망하고 나서, 마지막 심판 때 남방 여인이 일어나서 너희를 심판하리라고 비꼬아 주었습니다. 즉 니느웨 백성들은 고사하고 스바 나라의 여왕에게 오히려 심판을 받아 마땅하다고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무성의를 호되게 책망하였던 것입니다.
이방 여인에게 심판을 받을 정도라면 구원이 있다는 말이겠습니까? 그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입니다. 여기 나오는 ‘남방 여인’은, 솔로몬 왕 당시에 남방의 스바라는 작은 나라의 여왕으로 지혜롭게 국정을 다스린 미모의 소유자였습니다.
당시에 이스라엘의 솔로몬 왕이 총명하고 지혜로워 백성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솔로몬을 시험하기 위해 황금 마차를 타고 금은보화를 예물로 갖고 예루살렘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리하여 까다로운 질문 공세로 솔로몬 왕을 시험하려고 했습니다.(왕상10, 대하9 참조)
그래서 주님은, 말세에 남방 여왕이 나타나 실제로 심판한다는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도 큰 존재인 당신의 말씀을 믿지 않고 시험하려고만 드는 당시의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향해, 나한테서 심판을 받기 전에 먼저 우상을 섬기는 이방 스바의 여왕에게서 심판을 받아도 싸다고 쏘아붙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으로서는 하나의 풍자였습니다.
이들은 주님을 점점 더 적대시하여, 주께서 무수한 병자들을 고쳐 주자, 주님이 바알세불의 힘을 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비방하였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나무를 비유로 들어, “나무가 좋으면 거기서 열리는 실과도 좋다. 실과는 좋은데 나무가 좋지 않다고 한다면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공박하고 나서, “사단이 어찌 사단을 쫓아낼 수 있느냐?”(막3:23)고 반문하였습니다.
바알세불이 사귀 들려 앓는 자의 악령을 몰아내고 병을 고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마귀 대장이 자기편인 마귀를 내쫓을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