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권] Part 01 - Chapter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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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1.03.01
[2권] Part 01 - Chapter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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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1. 생명으로 이르는 길

Chapter 1. 무엇 때문에 예수를 믿는가?

 

 예수를 믿는 목적에 대하여는 여러분들이 알고도 남을 듯하지만 사실은 그렇지도 않으므로, 오늘은 이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2:10) 이 말씀은 우리가 예수를 믿는 목적과 이유를 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생명의 면류관이란 실제로 머리에 쓰는 관, 즉 모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영생에 이르는 성도가 누릴 영광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습니다. 우선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의 편에서 보면, 인간은 죽으면 그것으로 끝나지 그 후의 일에 대하여 이러니저러니 떠드는 것은 독단적인 이야기가 아니냐, 하고 반박할 것입니다. 이것은 영의 세계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소리로, 이런 사람들은 오늘날 신문지상에서도 때때로 보도되고 있는 심령과학(心靈科學) 같은 것이라도 좀 들여다보면 배우는 점이 많을 것입니다.

 

 다음에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성경 끼고 단지 교회 문을 드나드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요컨대, 자기가 예수의 인격으로 화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생활의 주인공이 자기가 아니라 예수가 되는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주님 본위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가리켜 주가 내 안에 있고, 내가 주 안에 있도다.”라고 합니다. 이때 비로소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자격을 가졌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성경을 읽고, 기도를 드리며, 교회 일을 열심히 하고, 연보를 드리고, 설교를 듣고, 안찰을 받는 모든 것은 이 자격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생명의 면류관을 얻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성경에도 죽도록 충성하라.”고 하였습니다. 뜨뜻미지근하게 예수를 믿어서는 구원을 바랄 수 없는 것입니다.

 

 요새는 소위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말세를 운운하며, 믿노라하는 사람, 좀 더 정확히 말해서 믿으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은 2천 년 전 초대교회 당시에 마가의 다락방에서 내렸던 불과 같은 성령의 역사를 그리워하고, 또 갈망하기도 합니다.

 

 여러분,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오늘날 이 땅에서 당시보다 몇 갑절이나 강한 세 증거(, 생수, 이슬)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 그대로, 2천 년 전 옛날의 역사를 그리워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가 앉았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이한 낫을 가졌더라.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가로되, ‘네 낫을 휘둘러 거두라. 거둘 때가 이르러 땅에 곡식이 다 익었음이로다.’ 하니,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니 곡식이 거두어지니라.”(14:14-16)

 

 하늘과 땅 사이에 떠 있는 구름 위에 금 면류관을 쓰고 손에 낫을 든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는 천사의 지시를 받는 것으로 보더라도 주님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천사의 지시에 따라 낫으로 땅의 곡식을 거둬들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여호와의 부리는 영인 천사의 지시를 받아 움직이는 자를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며, 마지막 때 땅에서 알곡을 거둬드리는 하나님의 종이 곧 이긴자입니다.(2, 3장 참조)

 

 그리고 이 알곡은 성전에서 익게 되어 있으며, 이 천사는 성전을 주관하는 임무를 맡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긴자와 가장 긴밀한 사이입니다. 그리하여 이긴자가 나타나 성전에서 뭇 심령들을 다듬어 세울 때 그 역할을 거들며, 거둬들일 때가 되면 이긴자에게 지시하여 추수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는 추수하는 일을 맡고 있습니다. 씨를 뿌리는 종은 따로 있는 것입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4:7-8)

 

 일찍이 오호라, 나는 괴로운 사람이로다.” 하고 주의 뜻 가 운데 살기가 극히 어려운 것을 고백한 바울은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나를 본받으라.”(고전4:16)고 떳떳이 외칠 경지에 이르러 의의 면류관을 기다리게 되었으며, 이 면류관은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을 굳게 믿고 꾸준히 주를 사모하는 자들이 모두 차지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즉 이 면류관은 바울 한 사람만 받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에게도 해당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를 위해 죽도록 충성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게끔 되어 있습니다.

 

 다니엘서에도,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것이며,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12:2-3)고 하였습니다.

 

 이들은 마지막 심판대 앞에서는 홀연히 변한 영체(靈體)로 서게 되며, 각자 서열에 따라 받는 면류관, 즉 영광이 다르게 됩니다. 계시록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은 많은 비밀이 담겨 있기에 아무나 읽는다고 해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며, 알지 못하니 지키지 못할 것은 정한 이치입니다.

 

 그것은 드러낼 때가 따로 있습니다. 즉 추수 때가 되어 이한 낫을 든 이긴자가 나타나야, 예언의 내용이 속속들이 풀려 나가게 되어 있고, 올바로 들을 수 있으며, 따라서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모든 기독교인들은 입으로만 말세를 운운할 것이 아니라, 어디서 추수가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알아봐야 할 것입니다.

 

 이번 성별 9월호에 우리 에덴성회에 대한 소개가 단편적으로 실린 기사 내용을 읽고 기성교회에 나가는 생면부지의 독자들로부터 격려의 편지가 날아오고, 일선에서 근무하는 어느 군목(軍牧)이 내 설교집 에덴의 메아리1집을 읽고 찾아오는 등, 각처에서 많은 기대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내가 부탁하고 싶은것은 신학자 할아버지라도 옳은 말은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설교집에 담은 글은 내가 사사로이 지어낸 것이 아닙니다. 그 글을 읽고 은혜를 체험하게 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나는 워낙 글과는 인연이 먼 사람으로, 신학교 문 앞에도 못 가봤으며, 성경도 한 시간 이상 계속해서 읽어본 예가 없습니다. 어떤 분이 내 설교를 듣고, 얼마나 많이 공부했으면 저렇게 잘 알까하는 호기심에서 우리 집에 찾아와서 내 방을 구경하고 간 일이있는데, 내 책상 위에 놓인 책이라야 성경과 찬송가, 그리고 몇 권의 잡지책까지 합쳐서 모두 여남은 권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실토한 일이 있습니다.

 

 나는 워낙 책을 읽지 않는 성미입니다. 나는 성경이나 가끔 들여다볼 뿐, 그 밖에 내가 읽은 책이라고는 10년 전에 본 인간의 조건이라는 일본 소설 한 권 정도입니다. 이처럼 무식한 내가 이 단상에서 떠들어대는 것은 주께서 보여주시고 가르쳐 주시며, 또 내 입을 주께서 기계로 사용하시기 때문입니다.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14:8)는 말씀도 주께서 가르쳐주셨기 때문에 그것이 오늘날 해당되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 방방곡곡에 기독교가 크게 전파되고 있습니다. 금세 교회가 새로 들어서고 교인들이 모여듭니다. 그러나 주님의 영광은 이런 겉모양에 의해 드러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물질을 앞세우고 주의 이름을 팔아 인간이 영광을 누리는 폐단이 일어나기 쉽습니다. 이것도 주께서 실제로 나에게 그 광경을 보여 주시고,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스룹바벨이 여호와의 다림줄을 잡은 것처럼 튼튼한 은혜줄을 잡아야 합니다.(4:10)

 

 할례를 받아야 여호와의 백성으로서 그 섭리 가운데 거하여 은총을 받을 수 있다고 배운 베드로나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에게도 구원의 길이 열려 있다는 하늘의 새로운 법도를 알려면 불가불 바울의 입을 통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당대에 주님의 뜻을 전해 주는 종의 말을 듣기 전에는 주께서 움직이는 내막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식자(識者)들은 저마다 말세를 운운하지만, 그 참뜻을 똑바로 인식하고 있지 못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것은 하나님의 숨은 경륜으로 흰 돌을 받은 자밖에는 모르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2:17)

 

 나는 앞에서 구원을 얻기 위해 예수를 믿는다는 의미의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구원을 얻는 자에 두 부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빛나는 세마포 옷을 입는 어린 양의 아내, 곧 멜기세덱의 반열에 참여하는 하늘의 군대요, 또 하나는 심판을 거쳐 구원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이 중에서 직접 마귀를 소탕하는 마지막 전쟁에 참여하는 것은 전자(前者)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가장 원하시며, 주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것도 결국은 이 때문입니다. 어린 양의 아내의 수가 차야만 새 하늘이 열리게 마련이므로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주의 아내는 되고 싶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세마포 옷은 입게 하는것입니다.(19:8) 그러므로 이런 세마포 옷을 입을 수 있는 은혜 가운데 거해야 합니다. 우리가 오늘날 예수를 믿는 최대의 목적은 어린 양의 아내가 되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