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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1.06.15본문
Part 02. 여호와의 비밀을 깨칠 때
Chapter 12. 하늘의 법도와 비밀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혔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다시 임하니라. 가라사대,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보이리라.’”(렘33:1-3)
예레미야는 이사야보다 약 100년 후의 사람으로, 주전 626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사야는 앗수르의 손에서 예루살렘을 구했으나, 예레미야는 바벨론의 침공으로부터 예루살렘을 구출해 내는 데 실패하여 그를 가리켜 ‘슬픔의 선지자’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여호와의 부르심을 받고 그 사명을 이루지 못하면, 선지자 장본인은 물론이고, 그를 따르던 무리는 운명을 함께 나누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무엇 때문에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이루지 못했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백성들이 그가 전하는 말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는 제사장 힐기야의 아들로, 여호와께서 예레미야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이미 택하여 세운 선지자이지만, 여호와의 지시를 백성들에게 전하면 백성들은 그의 말을 우습게 여겼던 것입니다. 땅에서 이처럼 여호와의 뜻을 좇지 않을 때 여호와께서는 가만히 보고만 계시지 않고, 응분의 벌을 내리게 마련입니다.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부르심을 받아 일을 하고 있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에게 패하여 큰 곤욕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찌하여 그처럼 적에게 크게 패하는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예레미야 선지에게 그 이유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말하노라. 무리가 이 성읍의 가옥과 유다 왕궁을 헐어서 갈대아인의 흉벽과 칼을 막아 싸우려 하였으나, 내가 나의 노와 분함으로 그들을 죽이고 그 시체로 이 성에 채우게 하였나니, 이는 그들의 모든 악을 인하여 나의 얼굴을 가리워 이 성을 돌아보지 아니하였음이니라.”(렘33:4-5)
이 말씀에는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한 측면이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하나님은 무조건 자비하시기만 한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당신의 명령을 어기거나 순종치 않으면 징계를 내린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가 자식을 끔찍이 사랑하는 것은 고금의 공통된 혈육의 정이지만, 자식이 잘못했을 때에는 꾸짖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매를 얹기도 합니다.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렇게 엄하게 다스리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고 목이 곧아 여호와 당신께서 세우신 예레미야의 말을 청종치 않아 여호와의 영광이 가려질 때 여호와께서는 노와 분함으로 얼굴을 가리시고, 저들이 적의 손에 죽임을 당하여도 돌아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결과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시체로 성을 채우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등을 내게로 향하고 내가 부지런히 가르칠지라도 그들이 교훈을 듣지 않고 받지 않으며,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집에 자기들의 가증한 물건들을 세워서 그 집을 더럽게 하며….”(렘32:33-34)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에게 지은 죄상입니다. 여기 그들이란 이스라엘의 임금들과 그 방백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 및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민을 다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여호와께서는 큰 선지자 예레미야를 들어 쓰시고, 그에게 당신의 백성들이 저지른 과거의 잘못을 일일이 이와 같이 가르쳐 주실까요?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저들이 저지른 이러저러한 잘못을 시정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의사가 병을 고치려면 어디가 나쁜지 먼저 진단을 해야 하는 것처럼, 당시의 폐단이 무엇이며 그 까닭이 어디 있는지 알아야 예레미야가 고쳐 나갈 수 있기 때문에 일일이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즉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에게 ‘이런 이유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되었으니, 너는 그것을 저들에게 알려서 시정케 하여라. 그러면 내가 다시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고 분부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 다시 은총을 베푸실 때에도 조건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이것은 우리 인간의 심리와 비교해 말할 수도 있습니다. 가령 내가 어떤 여자를 사랑하고 그 여자도 나를 사랑하였는데, 여자 쪽에서 마음이 변하여 나를 일단 멀리했다가 생각이 달라서 나에게 되돌아왔다면 나는 그 여자를 전과 같은 심정으로 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녀를 달리 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여호와의 심정에도 이와 같이 인간의 감정과 일맥상통하는 데가 있습니다. 전에 무조건 베푼 은총을 백성들이 짓밟아 버린 후에 다시 베풀 때에는 전과 달리 반드시 조건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그럼 여호와의 부름을 입고 지시를 받은 예레미야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여호와의 노여움을 풀어드리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여호와의 뜻을 받들어 나가야 합니다.
이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경우에 하늘에서는 언제나 땅의 움직임에 따라 거기 합당한 은혜를 내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힘써야 합니다.
믿음은 하늘의 선물이라고 해서 낮잠만 자도 된다면 이 더운 날씨에 교회에 나올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나는 지금 이 단상에서 “나의 자랑은 성도들뿐이다.”(살전2:19)라고 말한 바울의 심정을 상기해 봅니다.
여호와의 지시에 따라 불붙기 시작한 이 성령의 새 역사가 흥하고 쇠하는 것이 여러분의 어깨에 달려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성경은 “침노하는 자가 천국을 빼앗는다.”(마11:12)고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