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Part 02 - Chapter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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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0.10.14
[1권] Part 02 - Chapter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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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2. 성령의 검을 차고   

Chapter 15.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라



 일찍이 주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늘의 도를 전할 때의 애로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주께서 신령한 말씀을 하여도 쫒는 무리들이 육적(肉的)으로만 해석하여 피차에 핀트가 어긋나므로 비유로 가르치셨습니다.  


 그래도 잘 이해하지 못하므로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입증하기 위해 많은 병자들을 고치시고,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덩이로 5천 명을 배불리 먹이고도 남은 것이 일곱 광주리가 되는 등, 많은 이적과 기사를 행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내 살과 내 피를 먹고 마시라.”(요6:53)고 말씀하였을 때 제자들과 많은 무리들은 다시 어리둥절하여 무슨 말씀인지 알아듣지 못하고, 끝내는 주님을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후 2천 년이 지난 오늘은 어떻습니까?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무턱대고 예수만 믿으면 구원을 받는 줄 알고, 또 그렇게들 가르치는 가운데, 이긴자가 나타나 피의 원리를 논하고, 주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실제로 먹고 마시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시점에서 보잘것없는 이 사람의 입과 손길을 통하여 성경에 밝히 기록된 그대로 새로운 이 역사가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소중한 주님의 피는 어떻게 해서 우리에게 주어지게 되었을까요? 나는 이 자리에서 주님이 십자가 지실 때의 환경과 조건 및 주님의 심정을 잠깐 돌이켜 보고자 합니다.  


 모태에서 성령이 충만하여 주의 길 예비자로 온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맡은바 임무를 수행하였고, 주님은 주로 산에서 당신의 역사를 이루셨던 것입니다. 주께서 30년 동안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하신 일도 산에서 자란 나무를 베어다가 깎고 다듬는 목수 일이었습니다. 


 십자가를 지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주님은 당신이 언제 어떻게 죽어야 하고, 어떤 수치를 당하게 된다는 것을 훤히 내다보시고, 죽음을 하루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셨습니다.  


 이때 주께서는 당신의 사명이 무엇이며 당신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 너무나 잘 알면서도, 막상 그 쓰라린 십자가를 지고 그 아픔과 조롱과 멸시를 당할 때가 눈앞에 다가오자 새삼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설사 하나님의 독생자라 하더라도 마리아의 몸을 빌려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당시의 주님의 심경을 ‘고민하고 슬퍼하사’(마22:45)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께서는 당신의 고귀한 사명과 육의 고통 사이에서 영, 육의 치열한 싸움을 치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온 세상의 마귀들이 총공세를 펴는 가운데 주님은 바윗돌을 부둥켜안고 여호와에게 간구하였습니다.  


 “아버지여, 만일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소서!”(마26:39)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이겠습니까? 죽음과 대결하는 주님의 몸부림입니다. 이와 같이 기도를 올리고 좀 떨어진 제자들에게 와 보니, 그들은 마귀에게 사로잡혀 이미 잠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이겠습니까! 주님은 다시 바윗돌을 움켜 안고 하나님에게 같은 호소를 되풀이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아무 응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세 번째로 간청을 드렸습니다. 피가 온통 다 머리에 몰려 소위 고혈압 증세를 일으킨 가운데 전신에서 진땀이 핏방울 흐르듯 떨어지게 되자 여호와께서는 천사를 보내어 힘을 주시매, 그제야 주님은 평온한 마음으로 십자가를 지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순교자들의 경우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스데반이 죽음의 공포를 이긴 것은 아닙니다. 주께서 힘을 주실 때 비로소 자신이 생겼던 것입니다. 성령이 충만히 임하지 않으면 목숨을 내던질 수 없는 것입니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일이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죽으신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을 아신 주님도 죽음의 공포를 느꼈거늘, 다른 사람은 불문가지(不問可知)라 하겠습니다. 당시에 로마에서 이방인을 사형시킬 때 십자가에 사흘, 혹은 닷새씩 매달아 놓고 말라 죽게 하였는데, 손과 발에 쇠못만 박으면 온몸이 축 늘어지므로 미리 쇠고랑으로 손발을 고정시켜 놓고 못을 박았습니다. 


 주님은 되도록 십자가 나무 형틀에서 당하는 고통을 줄이고 빨리 운명하시기 위해 미리 식음을 폐한데다가, 끝에 쇠갈고리가 달린 로마 병정들의 가죽 채찍에 맞아 살이 문드러지고 찢어져 많은 피를 흘렸기 때문에 몸이 극도로 쇠약하고 지칠 대로 지쳐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십자가에 달려 양손과 양발에 쇠못을 박는 순간 부지중에 커다란 신음 소리를 내어, 먼발치에서 지켜보던 마리아와 제자들은 너무나 애처로워 귀를 막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내가 짐작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주께서 나에게 친히 보여 주신 하나의 처참한 광경입니다. 그러면서도 한편 주께서는 당신을 죽이는 무리들을 위해 “저들을 용서하소서!” 또 “아버지여, 내 영혼을 받으소서!” 하고 기도하는 여유도 보였습니다. 이미 죽음을 이길 힘을 갖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양쪽 강도들과는 달리, 십자가에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운명하시기까지 주님은 십자가에 여섯 시간 매달려 계셨습니다. 돌아가신 후 로마 병정들이 창으로 옆구리를 찔러 등 뒤로 창이 삐어져 나오기까지 하였으며, 전신의 피를 모조리 쏟으셨습니다. 그런데 그 피가 지금 우리와 무슨 연관이 있겠습니까? 오늘날 여러분이 그 피를 이 부족한 사람을 통하여 마시고 있는 것입니다.


 즉 십자가의 피는 오늘날 영의 양식으로 화하여, 이 손길을 통해 여러분의 몸에 스며들어 죄를 씻어 주고 있는 것입니다.(슥13:1, 계21:6-7) 구약시대에 죄를 짓고 양이나 비둘기의 피로 여호와에게 제사 드리면 그 피만큼 자범죄(自犯罪)가 깨끗해졌으나, 오늘날에는 다른 보혜사 성신으로 말미암아 이슬과 불과 향취로 여러분에게 임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몸소 경험하였습니다. 


 그런데 앞선 역사에서 주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죄를 범하여 주님의 피가 헛되이 짓밟히게 되자 주께서 크게 노하시고, 얼마 전부터 친히 나에게 강한 성령의 역사로 그들을 다시 씻어 세우라고 명하셨기에, 오늘날 내가 갖은 핍박과 중상을 무릅쓰고 주님의 시키심에 힘을 얻어 순종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바야흐로 영을 가려 다듬고 씻는 새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 전에 은혜를 받은 분들은 이 손길이 눈에 닿아도 별로 큰 고통이 없지만, 다른 데서 오신 분은 고통이 심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혼수상태에 빠지기도 하는 것이 이를 단적으로 입증하고 있습니다.  


 성경 66권이 이긴자로 끝을 맺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쪼록 이 은혜가 무엇인지 아시고, 소중히 간직하여 어디 가나 주님을 중심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직장에서나 다방에서나 부어 주는 주의 피를 헛되이 하지 말고, 은혜를 감사하며 싸워 이겨 나가십시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처럼 부어 주는 은혜만이 아니라, 말씀으로 서야 합니다. 


 성경 말씀은 같은 구절도 풀이하기에 따라 보다 깊은 영적인 뜻을 지니게 되며, 이것을 잘 해독하여 말씀으로 여러분 자신을 튼튼히 무장하지 않으면 이 악한 세대에 신앙을 굳건한 반석 위에 올려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역사는 말씀으로 다듬어 세우고 은혜로 씻어 주는 마지막 주님의 성업(聖業)이라는 것을, 산 체험을 통하여 아실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