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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1.01.24본문
Part 03. 승리의 대열에서
Chapter 29. 아론의 반차와 멜기세덱의 반차(2)
3) 위대한 경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 즉 아브라함의 후손이 모세요, 그의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민족들이 숭상하는 법도이며, 아론을 통하여 제사장의 직분이 생기면서 레위 자손인 역대의 제사장들은 이 아론의 반차를 좇아 하나님에게 제사를 드려 백성들의 죄를 사해 주는 직분을 맡아 왔습니다.
즉 믿음의 조상은 아브라함이요, 율법의 조상은 모세이며, 제사장의 조상은 아론으로, 이들 중에서 굳이 서열을 구분하자면 아론보다도 모세는 더 큰 존재이며, 모세보다도 아브라함은 더 큰 존재였습니다. 아브라함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상징적인 인물로, 모세도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났기 때문입니다.
구약시대에 아브라함과 모세와 아론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로, 아브라함의 자손은 누구나 할례를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모세의 율법을 지키며, 아론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을 통하여 여호와에게 제사를 지내는 이 세 가지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 되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할례와 율법과 제사는 믿음의 3대 요소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 오면 이 믿음의 3대 요소가 십자가와 보혈과 부활이며, 이것은 세 사람이 아니라 주님 한 분이 담당하신 것이었습니다. 주께서 십자가를 지시지 않으면 죄를 씻는 보혈을 흘릴 수 없고, 보혈을 흘리지 않으면 부활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십자가, 보혈, 부활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신약시대에 와서 주님, 즉 멜기세덱의 영원한 대제사장을 따르는 성도들은 이 세 가지를 언제나 명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거기 구원의 원리가 집약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시대의 율법은 처음에 돌에 새겼으며, 제사장들이 읽어 주면 듣고 외워서 지켜야 했지만, 신약시대의 율법은 마음과 생각에 새겨 스스로 간직하여 지켜 나가는 것입니다.(히8:10-11) 그런데 구약시대의 모든 율례와 법도는, 따라서 모세의 10계명도, 세례 요한 때까지 유효하다고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마11:13) 그럼 세례 요한 이후에는 어떻게 되느냐? 자유 율법을 지켜야 합니다.
대체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번거롭게 이랬다저랬다 하실까요? 거기에는 당신의 깊은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즉 만유를 회복하여 새 역사와 새 나라를 이룩하려는 당신의 뜻을 성취하시기 위해 그렇게 예정하신 것입니다. 당초에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당신의 백성으로 삼고, 이들을 통하여 이 뜻을 이루려고 이들이 지켜야 할 10계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율법에 매인 자는 다 저주 아래 있다고 하였습니다.(갈3:10) 그러니까 아브라함을 비롯하여 모세, 여호수아, 다니엘 할 것 없이 다 저주 아래 있으며, 죽자마자 곧 하나님의 품 안에 안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오시기 전에는 음부에 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구태여 그런 율법을 백성들에게 주어 지키게 하였을까요? 율법으로는 아무도 온전케 할 수 없으며 신약시대에 가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어 버릴 율법을 지키게 하고, 지키지 않으면 뭇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돌로 쳐 죽이기까지 했으니, 이런 해괴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모세의 율법은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의 몸가짐을 단속하여 신앙 자세를 바로잡아, 곁길로 흐르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필요했던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들이 마귀의 상징인 우상을 섬기는 것을 금하고, 눈에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는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들이 되도록 하는 것이 모세의 율법인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율법으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또 제사장을 통하여 아무리 정성껏 제사를 드려도 육의 허물은 어느 정도 사함을 받을 수 있었지만, 영이 사는 것은 아닙니다.
왜? 법도와 율례가 온전치 못할 뿐더러 제사 드리는 제물, 즉 송아지나 양의 피가 깨끗하지 못하고, 심지어 아론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 자신도 죄에서 놓여나지 못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구약시대에는 죄에서 완전히 놓여난 사람이 있을 수 없습니다. 모세, 여호수아, 이사야, 그 밖의 어떤 위대한 선지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욥15:14)라고 말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구약시대에는 의인이 될 수 있는 길이 완전히 두절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깨끗한 주의 피로 제사 드리는 신약시대는 이야기가 달라졌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온전치 못한 것은 폐하고, 온전한 것으로 대치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대치는 하나님의 깊으신 예정 가운데 이루어지며, 따라서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율법에 매어 저주 아래 있는 백성들을 건지시기 위해 주님을 이 땅에 보내어 길을 열어 놓은 것입니다.
즉 주님이 십자가에서 단번에 드린 제물이 되심으로써 ‘모세의 율법’을 폐하고 ‘자유의 율법’으로 대치하는 동시에, 아론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의 제사를 폐하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의 제사로 대치시킨 것입니다.
4) 영광에의 길
히브리서에서도 주위 사람들이 “젖이나 먹고 단단한 음식을 먹지 못하는 자들”(히5:12)이라 상세히는 이야기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율법이 달라짐과 때를 같이하여 불완전한 아론의 반차를 좇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다른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는 까닭을 대충 설명하였습니다.(히7:11 이하 참조) 그리고 “옛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고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간다.”(히7:18-19)고 덧붙여 말하였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바울과 견해를 달리하였습니다. 그는 성신을 받으면 된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매우 소박한 목회자였으나, 바울은 말씀으로 다듬어 세워 믿음을 튼튼히 다져 가는 목회자로 볼 수 있습니다. 성령을 받고서도 폐지된 모세의 율법을 지켜 나간다는 것은 마치 양복을 입고 갓을 쓴 격이라고 하겠습니다.
하긴 베드로 이후 2,000년 가까이 지난 오늘날에도 많은 교인들이 모세의 율법을 여전히 숭상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성령을 받아 율법이 마음과 생각에 기록되면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대제사장과 연결됩니다. 다시 말해서 주와 연결되어 은혜를 받으면 반드시 율법이 마음과 생각에 기록되며, 은혜를 많이 받을수록 이 율법이 더욱 세밀히 기록됩니다. 그리하여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자기의 신앙생활을 잘 이끌어 나가게 됩니다.(약2:12)
반대로 마음과 생각에 율법이 기록되지 못한 사람은 주님과 연결되지 못하고 있으며, 따라서 모세의 율법 아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의 율법을 충실히 지켜야 합니다. 이 단계를 거쳐서 자유의 율법에 이르게 되기 때문입니다.(갈3:24) 주께서 율법을 더욱 온전케 하러 왔다는 것은 이를 가리키는 것입니다.(마5:17)
그러나 일단 성령을 받은 다음에는 자기 마음과 생각에 새겨진 율법, 즉 자유의 율법을 지켜야 합니다. 그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대제사장과 연결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예정하신 뜻이며, 이 뜻 가운데 거하는 자가 복이 있는 것입니다.
그가 설사 본의 아닌 잘못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은혜 받고 회개하면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은혜, 즉 기름 부음을 받아 스스로 선악을 분별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전 세계의 기독교인들을 크게 둘로 나눠서, 율법에서 벗어난 자와 율법 아래 있는 자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에게 멜기세덱의 반차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터놓았으나, 그렇다고 신약시대에 와서 누구나 주님을 믿기만 하면 그 반열에 들어서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부르심을 받고 빼냄을 얻어 진실하게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라야 합니다. 이런 성도와 순교한 자 및 주님께서 부활하셨을 때 무덤에서 일어난 구약시대의 선지, 성인들, 도합 14만 4천 명이 이 멜기세덱의 반열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