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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0.07.27본문
Part 01. 아기별이 눈뜰 때
Chapter 07. 보혜사 성령에 대하여(1)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거하느니라.”(요15:26-27) 이 말씀은 주께서 평소에 하지 않고 계시다가,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이 실족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미리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오셨다가 십자가에 처형당하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메시아가 나타나기만 하면, 마치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의 땅에서 벗어나게 한 것처럼, 로마에 눌려 사는 이스라엘을 독립시켜 줄 것으로 알고있었던 것입니다.
요한 1서에 보면, 증거하는 이가 성령인데, 성령은 곧 진리라고 하였습니다.(요일5:7) 그리고 다시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그것은 성령과 물과 피라고 하였습니다.(요일5:8) 그러면 이 중에서 주님이 말씀하신 보혜사 성령은 어느 성령에 속할까요? 그것은 피의 성령입니다.
이 피의 성령이야말로 다른 세대에서는 볼 수 없고, 주께서 피를 흘려 승리하신 까닭에 오실 수 있는 것입니다. 보혜사 성령을 피의 성령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 보혜사 성령, 즉 피의 성령은 주께서 흘리신 승리의 핍니다. 그럼 2,000년 전에 흘리신 피가 오늘날 어떻게 성령으로 내리는가?
그것은 주의 종을 통하여 이슬과 같이 내리게 되어 있습니다.(호14:5) 이 이슬과 같은 성령이 오늘날 이긴자를 통하여 내리며, 마음문을 열고 예배 보는 여러분에게도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이 보혜사가 사람에게 연결되면 어떤 작용을 할까요? 모세 때에 하나님께서 광야를 헤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만나는 먹으면 배가 부르고 힘이 났으나, 결국에는 그것을 먹어도 다 죽음에 이르렀고, 오늘날 주께서 주시는 감추었던 새 만나는 먹어도 배는 부르지 않지만, 그것을 먹음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차지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육의 양식이고 또 하나는 영의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나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요16:12-14)
보혜사 성령이 오시면 주님 생존 시에도 깨닫지 못하던 것을 깨닫게 하고, 진리 가운데 이끌어 살게 한다고 했으니, 이 보혜사 성령이 어떻게, 또 누구에게 혜택을 주는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에서 여호와의 큰 종들이 많이 나타난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가령, 아브라함이나 야곱, 소돔성의 롯, 모세, 다윗, 엘리야와 같은 종들에게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거나 천사가 나타나 말씀을 전했습니다. 구약시대에 성령이 지시하였다는 말씀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신약시대에 들어와서는 주님이 일일이 나타나서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습니다. 여호와께서 친히 모세를 택하였을 때 하나님이 불꽃 중에 나타나신 것은 꿈이 아니고 현실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육적으로 이적을 행할 수 있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가령 모세가 홍해를 갈라 길을 만든 것이라든지, 광야에서 만나가 내리게 한 것이라든지, 모두가 육을 살리기 위한 역사였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부지런히 움직이셔야 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보혜사 성령에 대하여 제자들에게 처음으로 말씀을 터뜨린 것은 주님이 그들과 헤어져야 하므로 혹시 실족이라도 할까 염려해서였습니다. 주님이 제자들과 함께 계실 동안은 눈만 뜨면 주님을 마주 대할 수 있었으므로 염려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떠나가시면 주님의 대리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실상은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혜사 성령이 오지 않을 테지만, 내가 가면 그를 보내겠다. 그가 와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리라.”(요16:7-8)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실 당시에는 보혜사 성령이 제자들과 함께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주님 앞에서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장담했다가 하룻밤 사이에 세 번씩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던 것입니다. 주님이 자기 옆에 계시지 않으니 자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부활하시고 제자들에게 나타나시니 용기가 생겼습니다. 문을 잠가 놓은 방에 주님이 척 나타나시자 자신을 얻어 겁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웬걸, 주께서 하늘로 올라가시니 또 겁이 더럭 났던 것입니다.
이런 경향은 구약시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윗이나 엘리야 혹은 다른 선지자들이 여호와를 대면한 후 얼마 지났을 때 그들의 마음이 자연히 약해지므로 여호와께서 또 가까이해 주셔야 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 직접 분주히 움직이셔야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여호와께서 인간을 통하여 마귀와 몸소 싸우셨던 것입니다.
당시에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들에게 능력과 권능을 주신 신도 성신이라고 합니다. 솔로몬이 거룩한 성전을 지어 놓고 하나님 앞에 간구하여 여호와의 영광을 직접 보았을 때에는 주위가 훤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물론 성신의 조화입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열심히 기도하면 천사들이 와서 그에게 힘을 주거나 어떤 지시를 내리는 경우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 와서는 “너희가 주께서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기름 부음이 너희를 가르치리라.”(요일2:20,27)고 하신 말씀 그대로, 이젠 천사가 그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의 율법이 달라진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보혜사는 성신과 물과 피, 셋 중에서 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며, 이 피는 짐승의 피가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의 피, 곧 주의 보혈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주께서 속죄의 제물이 될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여 ‘어린 양’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직접 일을 하셨으나, 주님이 피권세로 이기고 하늘에 오르신 후에는 보혜사 성령이 와서 모든 일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물로 사람들에게 정결함을 준 요한의 물세례는 신, 구약시대를 연결하는 과도기의 역할을 하였는데, 그것도 여호와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내 뒤에 오실 이는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다고 말하였는데, 이는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가신 후에 다른 보혜사 성령이 와서 역사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주께서 “나를 믿는 자는 그 속에서 생수가 강같이 흐른다.” (요7:38)라고 하였는데, 주님 당시에 이것이 되지 않은 것은 ‘주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은 연고’이며, 따라서 주께서 영광을 받은 후에야 되는 역사입니다. 성신으로 역사한 구약시대나, 물세례로 역사한 과도기나, 또는 신약시대에 보혜사로 내린 성령의 역사가 다 세대에 따라 다른 형태로 왔을 뿐, 모두 여호와의 것이므로 셋이 합하여 하나라고 한 것입니다.
이 보혜사 성령은 이 땅에 와서 점잖게 가만히 팔짱을 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의와 죄와 심판에 대하여 책망을 하는 신입니다. 모세가 받은 성신은 모세가 사명을 다하도록 인도하는 데만 유용한 성신이지, 마귀를 건드리지는 못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는 마귀 새끼 한 마리도 이길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세가 영적으로 마귀와 싸워서 이겼다는 구절을 본 적이 있습니까? 그러나 주님이 부활 승천하신 후에 사귀 들린 자들이 성신을 받은 사람들을 만나기만 하면 거품을 물고 쓰러졌습니다. 술객들의 마귀도 내쫓지 못한 모세와는 매우 대조적이라고 하겠습니다.
홍해를 가르거나 태양을 멈추게 한 선지자라고 해도 죽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죄 가운데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죄를 소멸할 수 있는 것은 다른 보혜사라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보혜사를 받을 수 있는 세대에 사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세대에 사는 사람 사이에는 은혜에 큰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다른 보혜사 성령을 받았다고 해서 육이 죽지 않는다는 말은 아닙니다.
주님은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다.”(요14:9)고 말씀하셨는데, 다른 보혜사를 받으면 주님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 안에 거하고, 너희가 내 안에 거한다.”(요14:20)는 것도 보혜사 성령의 조화입니다. 즉 보혜사 성령을 받으면 그리스도와 한 신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신을 받으면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해지고 정하면 정해진다.” (요20:23)는 말씀도 이 경지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에는 사람이 육으로 돌아가 성신이 떠났다고 했는데, 신약시대에는 거꾸로 성신이 사람에게 임하여 한 신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그 속에서 신과의 교류가 이루어지며, 그릇이 깨어져도 그 속에 담긴 보화는 그대로 있는 것처럼, 육의 장막은 없어져도 그 속에 거하는 영혼은 영생하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