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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0.11.08본문
Part 02. 성령의 검을 차고
Chapter 19. 모세는 왜 가나안땅에 못 들어갔나?
1) 위대한 종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모세는 구약시대의 가장 위대한 종으로, 세상에 있을 때 여호와께서 가까이하시면서 직접 일문일답(一問一答)을 나누었습니다. 이런 큰 종이므로, 성경에 나타난 그의 발자취를 두고 보더라도 여호와께서 당신의 경륜을 이루기 위해 그를 어렸을 때부터 택하여 키워 오면서 연단을 쌓은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즉 여호와께서는 갓 난 모세로 하여금 상자에 담겨 나일 강가에 버려지게 하여 애굽 왕녀의 양자가 되게 하셨고, 고등 교육을 받고 애굽의 고관으로 일하는 동안에 궁중의 모든 풍습과 예의범절 등이 몸에 배게 하였습니다.
그가 40세가 되었을 때 동족인 이스라엘인이 애굽인에게 핍박을 당하는 것을 보고 격동한 나머지 애굽인을 죽여 바로의 노여움을 사고 미디안으로 도망쳐, 제사장 이드로의 딸 십보라와 결혼하고 광야에서 양을 치면서 역시 40년 동안 살았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빈틈없는 여호와의 섭리가 모세에게 가해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는 바로 앞에 가서 여호와의 지시대로 지팡이로 이적을 행하여 자기가 여호와의 종임을 알리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때 여호와께서는 바로의 마음을 완고하게 만들어 그는 모세를 좀처럼 인정하려 들지 않았습니다.(출4:21, 7:13) 자기 나라 술객(術客)들도 이런 이적쯤 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건 사실입니다. 만일 이때 바로가 곧 모세를 인정하고 이스라엘 민족을 풀어 주면, 금세 후회하고 취소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는 그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여 모세에게 자기가 하나님의 종임을 충분히 입증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모세로 하여금 애굽 왕실에서 쫓겨나게 하여 호화로운 궁중 생활과는 전혀 딴판인 양치는 목자의 생활을 시킨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쓸쓸한 허허벌판을 무대로, 양을 치는 원시적인 미개인 생활에서 비롯되는 갖은 고생을 달게 받으면서, 미리 단련을 쌓아 앞으로의 큰일에 대비하도록 한 것입니다.
특히 양치는 목자의 생활은 동족을 인도하는 내일의 영도자로서 안성맞춤인 수련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모세는 40년 동안의 화려한 궁중 생활에서는 상상도 못할, 쓰라린 시련을 견디면서 인생의 안팎을 고루 체험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모세가 80세가 되어 양을 몰고 호렙산에 이르렀을 때 떨기나무에 불이 활활 타오르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떨기나무는 전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 불은 영광 중에 여호와가 나타나신 표시였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불러 “네가 서 있는 땅이 거룩하다.”고 이르시고, “신을 벗으라.”고 분부하셨습니다.
20세 이상의 장정만 해도 60만을 헤아리는, 도합 300만 명가량의 이스라엘 민족들을 거느리고 대이동을 한다는 것은 모세에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유일한 교통수단이라야 수레 정도요, 통신망도 하나 갖추지 못한 당시의 일이라, 앞장선 모세와 대열의 맨 끝까지는 시선이 닿지 않을 정도였으므로, 모세에게 어떤 긴급한 연락을 취하기 위해 말을 타고 달린다 해도 하루해가 모자랄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회중들은 모세가 어디쯤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알 길이 없기에, 여호와께서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일일이 신호를 해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름 기둥이 동쪽에 머물러 있으면 모세가 동녘에서 쉬고 있다는 여호와의 신호요, 서쪽으로 흘러가면 모세가 서쪽을 향해 가고 있다는 신호인 것입니다.
그러나 밤에는 구름을 볼 수 없으므로 불기둥으로 일일이 이와 같은 신호를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홍해를 건너갈 때에는 그 많은 사람들을 배로 건넬 수 없었으므로 모세로 하여금 바다를 가르게 하여 무사히건너가게 하였습니다.
마치 인천 앞바다에 밀물과 썰물이 밀려갔다 밀려오는 것처럼, 모세가 한 번 지팡이를 들어 외치자 바다도 갈라져 길이 마련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당시에 모세의 지팡이는 그의 전 재산으로, 여호와의 큰 권능이 같이하였습니다. 모세가 남달리 잘나서 그랬을까요? 결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민족이 가엾어서 모세를 들어 쓰자니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여호와께서는 이들에게 식량(食糧)이 떨어지면 하늘의 양식인 만나를 내려 배를 채우게 하고, 고기가 먹고 싶다면 사나운 바람에 메추라기 떼를 날려 땅바닥에 주둥아리를 박고 죽게 하여 이들로 하여금 먹게 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모세는 위대한 여호와의 종이었습니다. 그의 권능이 그렇고, 그의 학식이 그렇고, 그의 심령이 또한 그러했습니다. 그는 신학자로서 이른바 ‘모세5경’을 저술했으며, 자기 자신보다도 겨레를 위해 살았던 것입니다.
그는 주님의 출현을 예고하여 “나 같은 선지자가 나타난다.”(신18:15)고 했는데, 이것은 첫째 율법(律法)의 주인공으로서의 자기와 새 율법의 주인공으로서의 주님을 비교하여 언급한 것으로, 주님도 당신에 대하여 “모세가 기록했다.”(요5:46)고 말씀하고, “너희 죄를 송사할 자는 모세”(요5:45)라고 말씀했던 것입니다.
또한 주님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권능으로 눈을 뜬 소경에게, “넌 그의 제자이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요9:28)라고 빈정댈 정도로, 모세의 권위는 대단하였습니다.
2) 하나님의 종의 법도
그런데 그랬던 모세도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구약시대의 가장 위대했던 하나님의 종 모세는 무엇 때문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을 눈앞에 바라보면서도 그 땅에 들어가지 못했을까요?
모세는 여호와께서 미리 당신의 큰 종으로 들어 쓰시려고 정해 놓으셨던 인물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 땅에서 건져 내는 직분을 80세 난 그에게 줄 때에 모세가 자기는 입이 둔해 말을 못한다고 하자, 여호와께서 “네 손을 품 안에 넣어 봐라.” 하기에 모세가 그대로 했다가 빼 보니 손에 문둥병이 생기고, 다시 품 안에 넣으라 하기에 또 그대로 했다가 빼 보니 문둥병이 깨끗이 나았던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네 입을 누가 지었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네가 입이 둔하여 말을 못하더라도 내가 있으니 네가 믿고 하라.”고 말씀했을 때, “주여 내가 주의 말씀을 믿으니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하나이다.” 했다면,
즉시 하나님의 권능이 모세와 같이하여 모세에게 훌륭한 언변을 허락했을 터인데, 그가 자기 본위의 생각을 하고 딴 사람을 애굽에 보내 달라고 하였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노하시고 모세의 형을 그의 대변자로 삼았던 것입니다.(출4:11-14)
여호와께서 사자를 시키지 않고 몸소 강림하여 이야기를 주고 받을 정도로 큰 은혜를 받은 모세는 불꽃 가운데 나타나신 여호와의 뒷모습을 바위틈에서 눈으로 목격할 만큼 여호와를 가까이 모셨던 인물입니다. 여호와는 그런 모세에게, 너는 가나안땅에 들어갈 수 없다, 다른 사람은 되어도 너만은 안 된다고 말씀하였습니다.
웬일일까요? 흔히 하나님의 종이라면 하나에서 열까지, 열에서 백까지, 마음대로 되는 줄 알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구약시대에 된 일을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나중에 깊은 영의 말씀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종이라도 여호와께서 쓰시기 위해 친히 보여 주시고 가르쳐 주시는 것 이외에는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전무후무한 하나님의 종 모세도 여호와의 깊은 사정은 미처 몰랐습니다.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 이것이 구약시대 율법의 기본 입장이며, 이와 같은 율법주의의 조상이 모세였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죄인을 쳐 죽이는 직분을 맡은 모세보다는 죄인에게 성령을 부어 의(義)의 길로 인도하는 자의 직분이 더 크지 않느냐고 반문했던 것입니다.(고후3:7-8)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성경을 통해 잘 알아 두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종, 즉 선지자의 법도(法度)와 하나님의 백성, 곧 일반 신도의 그것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혼동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일반 백성들에게 죄가 되는 것도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죄가 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적용되는 법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특권이 부여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세를 비롯한 구약시대의 하나님의 종들의 움직임에 대하여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신약시대의 하나님의 종들이 여호와와 어떻게 교류하는가를 잘 알 수 있으며, 이것을 잘 알면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하나님과 가까이할 수 있는가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나는 단지 말씀으로 여러분을 주와 가까이 연결시켜주는, 이를테면 영적인 뚜쟁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밖의 것은 여러분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를 제대로 믿어야 합니다. 구원이란 누워서 떡 먹기와 같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덮어놓고 주를 믿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산아, 바위야, 날 가려라.”(계6:16)라고 겁에 질려 외치게 될 마지막 날의 환난을 빛의 아들들은 벗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죄를 어떻게 씻고, 어떻게 의로워져 구원에 이르게 되는가를 잘 알아야 합니다. 모르고 있으면 헛수고를 하기 일쑤기 때문입니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은 믿음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 직접 대화를 나누시면서 들려준 것도 많지만, 이상 중에 보여 준 것은 더 많습니다. 모세는 여호와께서 기뻐하는 인물이었습니다. 내가 주를 아는 것보다, 주가 나를 알아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나는 주를 이렇게 열심히 섬기고 있는데, 왜 이렇게 냉랭하고 맨송맨송할까? 하고 자문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거기에는 어딘가 잘못된 데가 반드시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디가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그것부터 찾아내야 합니다.
모세는 제사 지내는 방법을 백성들에게 소상히 가르쳐 주었습니다. 제단은 어떤 나무로 어떻게 짓고, 예물은 어떤 것을 어떻게 드리고, 제물은 어떤 죄를 지었을 때 어떤 것을 바치고, 장막을 만들 때 가늘게 꼰 베실은 청색, 자색, 홍색실로 어떻게 하고, 아무튼 그렇게 자상할 수 없었습니다. 모세가 어떻게 이처럼 자상히 알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그만큼 하나님과 가까운 교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보잘것없는 이영수가 여호와의 깊은 사정을 드러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무슨 수로 어떤 신학자도 지적해 내지 못하는 것을 드러낼 수 있겠습니까? 주께서 보여 주시고 가르쳐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드러내기 전까지는 비밀이지만, 일단 입 밖에 나오면 세상이 알게 되며, 때로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며, 또 되고 싶어 되는 것도 아닙니다. “힘으로도 능으로도 안 되고, 오직 하나님이 신으로”(슥4:6)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였거늘.”(요10:35)
나는 앞에서 하나님의 종이 지켜야 할 법도와 일반 백성들의 법도가 다르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구약시대의 하나님의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세상에 나갔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율법을 지켜 축복을 받게 되었지만, 이 율법을 전하는 장본인 모세에게는 이 율법이 해당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그 실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구스의 여인을 아내로 취했을 때, 모세의 형 아론과 누이 미리암이 이방 여인을 아내로 삼은 동생을 책망하였는데, 여호와께서는 오히려 이들에게 벌을 내렸던 것입니다.(민12:8-16)
당시에 아론이나 미리암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가장 측근자로서, 모세에게 좋다, 나쁘다 하고 직언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으며, 따라서 당시에 그들은 상당한 비중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아론으로 말하면 여호와께서 당신의 사람 모세의 대변자로 내세운 사람으로, 광야에서 회중에게 하는 말은 일일이 아론의 입을 빌려야 했던 것입니다. 아론이 모세 옆에서 “우리가 지팡이로 반석을 쳐서 너희에게 물을 내어 먹일 테다.” 하고 말하면, 모세는 지팡이로 반석을 때리기만 했던 것입니다.
이런 아론이 여호와께서 싫어하는 이방 여인을 취한 아우를 책망했다고 해서 하나님은 오히려 그에게 벌을 내리고 모세의 비행을 눈감아 주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