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Part 01 - Chapter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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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0.07.06
[1권] Part 01 - Chapter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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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1. 아기별이 눈뜰 때

Chapter 01. 새날의 서장



 오늘 우리가 처음으로 모임을 가진 이 자리에서 나는 감개가 무량함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일찍이 하나님의 많은 은혜를 받은 여러분을 내가 어찌하여 이와 같이 따로 모아, 목이 터져라고 외쳐야 하는가, 그 이유를 간단히 말씀드리고 아울러 주의 종의 위치가 어떻다는 것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의 세력을 꺾어 인류에게 구원의 문을 열어 주는 동시에, 이 죄악 세상에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시려는 당신의 크신 경륜을 이루기 위해, 과거 6,000년 동안 수시로 당신의 사람을 들어 쓰셨습니다. 이들이 맡은 사명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제사 드리는 방법을 스스로 알게 된 것이 아닙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보여 주시고 지시해 주셨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애굽 땅에서 종살이를 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으로 인도한 위대한 영도자 모세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사람을 당신의 종으로 들어 쓰셨지만, 그 종들은 여호와의 지시대로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갖은 환난을 당하고 희생을 치러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모세로 말하자면, 여호와께서 시내산에서 음성을 통해 직접, 하늘의 오묘한 법도와 제사법 등을 가르쳐 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그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당시에 모세밖에는 이 법도와 제사법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모세를 통하여 뭇사람들에게 그러한 제사법을 알게 하는 것이 여호와의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당신의 사람을 통하여 당신의 백성들에게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첫째 장막과 둘째 장막을 치게 하시고, 제사장들에게 제사하는 광경을 본 그대로 전하여 실시하게 한 것이 바로 첫 언약의 제단입니다. 


 당시의 제물은 송아지, 양, 비둘기 등이었습니다. 즉 어떤 죄과에는 어느 제물을 어떻게 바치라는 법도를 정하신 대로 백성들이 제사장을 통하여 제사 드리면, 그 제물의 피만큼 자범죄가(원죄, 유전죄가 아니라) 사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하시고자 하는 뜻이 워낙 방대하므로 한두 사람의 종에게 선포한 법도를 가지고는 다 이루실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시대의 변천에 따라, 또 종의 그릇에 따라, 맡기는 사명이 각각 달랐습니다. 당초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시한 내용은 애굽에 매여 사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땅으로 들어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일은 지연되고, 또 지연되어 장장 40년이라는 긴 세월을 두고 모세는 동족을 이끌고 광야를 헤매야만 했으며, 자신의 불찰로 인해, 영도자인 모세 자신조차도 가나안땅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그 사명을 여호수아에게 넘겨줘야만 했습니다. 


 그럼 어찌하여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내세워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끌어내려고 하셨습니까? 당신의 백성들이 이방 국민에게 매여 사는 것이 가엾어서 그랬을까요? 그것도 물론 하나의 이유는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보다 더 중요한 까닭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애굽은 우상을 섬기는 나라요, 따라서 그 법에 매인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의 자유가 전혀 허용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호와께서는 애굽에서 살아가는 당신의 백성들을 애굽의 사슬에서 해방시키는 한편, 그들을 통하여 영광과 제사를 받으시고자, 모세를 그들의 영도자로 삼은 후, 친히 모세와 같이 하시면서 당신의 백성을 가나안땅으로 이끌어 내려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가 당신의 영광을 가리고 자기 자신을 앞세우는 죄를 범하게 되자(민27:14) 모세를 물러나게 하시고, 대신 여호수아를 내세워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가나안땅으로 들어가게 하신 것입니다. 


 돌에 새긴 10계명, 곧 모세의 율법은 세례 요한 때까지는 유효하였으나(마11:13)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피를 흘려 산 제물이 되신 후에는 하늘의 법도가 마음과 생각에 새기는 자유의 율법으로 바뀌었습니다.(히8:10) 그러면서 짐승의 피로 드리는 제사가 폐지되고, 제사장이 아니더라도 그 누구든지 빈 손 들고 나와 하나님께 산제사를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 승천하신 뒤 보내 주신 성령을 받게 되면, 자유율법에 따라 자신이 선악을 헤아려 행하게 됩니다. 모세는 10계명을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받아서 반포하였지만, 다른 보혜사 성령을 충만히 받아 남에게 부어 줄 수 있는 종, 즉 이긴자가 등장하게 되면 그의 말이 그대로 율법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됩니다. 


 베드로가 불과 같은 성령을 충만히 받아 하루에 3,000명씩 회개시킬 때에도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이 곧 율법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바울의 편지가 오늘날 그대로 성경이 되는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나는 여기서 잠깐 베드로와 바울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천국열쇠를 맡기면서, “네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다.”(마16:19)라고 할 만큼 베드로에게 거의 절대적인 권세를 부여한 것은 가능하면 당대에 뜻을 이루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따로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주님이 하늘에 오르시고 하나님의 뜻을 아신 후에, 이긴자가 나타나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제까지만 해도 당신을 대적하여 기독교를 따르는 사람을 잡아 죽이는 데 앞장섰던 바울을 들어 하나님의 큰 일꾼으로 삼고, 과거 수천 년 동안 실시해 오던 법도와 율례, 즉 할례와 모세의 율법을 완전히 폐지시키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설사 하나님의 뜻일지라도, 땅 위에서는 일이 순탄하지 못했습니다. 할례로 말하자면, 주님도 나신 지 8일 만에 친히 받으셨던 것인데, 이 율례를 바울이 필요 없다고 말하니, 수많은 무리들이 바울을 잡아 죽이려고까지 했던 것입니다.(갈5:11) 


 바울의 이런 주장은 물론 주께서 시키신 일입니다. 즉 같은 성신이 베드로와 바울에게 함께하였지만, 바울에게는 다른 지시가 내려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들이 아는 것만이 주의 올바른 가르침인 줄 알고 있던 사도들과, 그 밖의 은혜 받은 무리들은 바울을 과거의 사울로만 알고, 그의 말을 믿기는커녕 반박하고 반대 하였습니다.

 

 “아니, 저자가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이던 자 아니냐!” 면서 야단들을 하였습니다. “저런 자가 주님과 무슨 상관이 있기에 지시를 받았다는 거야?”라는 등, 별의별 비난의 화살이 바울에게 날아들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누구든지 먼저 예언한 자는 다음에 예언하는 자가 나오면 입을 봉하고 잠잠해야 한다.”(고전14:30)라고 말입니다.


 나는 앞으로 이 단상에서 하나님의 깊은 사정을 드러내어 여러분에게 들려 드리려고 하지만, 내가 이렇게 된 것은 결코 하루아침의 일이 아닙니다. 과거 수년 동안 애써 주께 매달리면서 받은 바 그 은혜를 몰래 간직하고 쌓아 오는 가운데, 주께서 고난당하신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 주시기에, 더욱 주님을 뼈저리게 사모하게 된 결과입니다. 


 부친이 오랫동안 중병에 시달리던 끝에 가산을 탕진하고 세상을 떠나신 후에, 학업도 중단하고 어린 동생들의 입에 거미줄을 치지 않기 위해 갖은 고생을 다 겪으면서도,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참고 견디어 왔습니다. 그러면서도 때로는 너무나 고달파서, “주님, 저는 언제까지 이런 생활의 밑바닥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어야 합니까? 


 제가 이 은혜를 차라리 몰랐었다면 세상에서 원하는 대로 살 수도 있겠는데, 그럴 수도 없고, 이 괴로움을 주님 외에 누구에게 호소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원망 섞인 어조로 주님께 고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주님의 은혜의 사슬에 매어 내 마음대로 살 수 없었습니다. 


 나로서는 생존을 위해 목숨을 유지해 나간다는 것은 여간 고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호소가 흘러나오게 되었습니다. “주님, 저를 자유롭게 살 수 있게 해 주시든지, 그렇지 않으면 길을 열어 주십시오!” 하고 나는 주님에게 간구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던 중에 1973년 3월에 접어들면서 생활에서 오는 고통이 절정에 도달했을 때, 주님께로부터 지시가 왔습니다. “너는 나가서 하나님의 도를 전하여라. 너를 만나는 사람마다 즐거워할 것이며, 네 말을 듣는 자마다 기뻐할 것이다.” 하고 이상 중에 말씀을 주셨던 것입니다. 


 내가 설사 부족하고 보잘것없는 사람이긴 하지만, 마음대로 할 수만 있다면 나도 남부럽지 않게 살 길이 없는 게 아닙니다. 젊은 나이에 할 일이 없어 내가 이 괴로운 멍에를 메고 나섰겠습니까? 주님이 시키시므로 나는 그 기계가 되어 움직일 뿐입니다. 이 단상에서 아무리 핏대를 올리며 외쳐 봤자 허수아비와 같이 은혜가 없으면 누가 따르겠습니까? 


 게다가 여기 모인 분들은 신앙 연조나 은혜 체험에 있어서 거의 다 나보다는 훨씬 선배 되는 분들입니다. 앞으로 시일이 지나면 전국적으로 적대 세력이 몰아치리라는 것을 보여 주심을 받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로서는 주저할 수 없는 것이, 주께서 지시하신 파수꾼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나에게 닥칠 재앙이 무엇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말해 두지만, 이 역사는 인간 이영수가 하는 일이 아닙니다. 나와 여러 해 동안 고락을 같이하던 사람들도 나를 인간 이영수로만 알고 있다가, 나를 통해 은혜 체험을 하고 달리 보는가 하면, 나와 동거하던 청년도 잠자다가 내가 이상 중에 여호와를 뵙고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고 신기하게 여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만일 이것이 이영수 개인의 의사로 하는 일이라면 얼마 못 가서 곧 와르르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그 열매를 보고 그 나무를 알라.”(마7:16)는 말씀 그대로, 앞으로 쏟아져 나오는 진리와 되어 가는 역사를 보면 바보라도 이것이 누가 하는 일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주께서 수십 번 보여 주시고 가르쳐 주셨기 때문에 그 세계의 것을 알고 있으나, 자유롭게 전하지 못하는 입장이라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나 때가 오면 세계만방에 증거할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앞으로 주님께서는 이 사람을 통하여 깊고 오묘한 하늘의 비밀을 여러분들한테 전하여 드릴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 “이 말씀을 듣는 자들이 복이 있다.”(계1:3)고 말씀하신 것처럼, 여러분들은 앞으로 감추었던 하나님의 비밀을 들을 수 있는 복을 받은 분들입니다. (개회 집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