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Part 03 - Chapter 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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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1.01.21
[1권] Part 03 - Chapter 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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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3. 승리의 대열에서 

Chapter 28. 부활에 대하여 (1)

 


1) 인자의 고민

 일찍이, 말씀으로 여호와와 동등한 위치에서 창세의 대업에 동참하시고, 인간의 몸으로 내려가 여호와의 크신 경륜을 이루시기 위해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당하며, 그 결과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잘 알고 계신 주님은 때가 되어 700년 전에 이사야가 예언한 그대로 마리아의 몸을 통해 육신을 입고 이 땅의 가난한 목수의 집에 나셨으니, 이것이 곧 주님의 초림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위대한 하늘의 영체도 일단 죄인의 몸을 갖고 육신을 입게 되자 인간으로서의 모든 요소, 심지어 약점까지도 아울러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에게 기도도 해야 하고, 굶으면 시장하시고, 슬프면 눈물까지도 흘리는 인간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처참한 죽음을 앞둔 주님은 결코 마음이 평탄치 못하였습니다. 목수 일을 하시면서 홀어머니와 어린 동생들의 생계까지 떠맡으면서부터 주님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당신이 언제 어떻게 죽으리라는 것을 환히 내다보고 계신 주님은, ‘내가 과연 죽음을 충분히 이길 수 있을까?’,

 

 ‘마귀의 큰 세력이 닥칠 때 무난히 물리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늘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를테면 날짜까지 받아 놓은 사형수로서의 주님은 심신이 아울러 지칠 대로 지쳐 있었으며, 30세 남짓한 젊은 나이에 이미 50세쯤 되어 보였던 것입니다.(8:57)


 주님은 당신이 짊어져야 할 십자가의 숨은 의미와 여호와의 깊은 사정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즉 인류를 구원하는 길을 트기 위해서는 당신이 불가불 산 제물이 되어 피를 흘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주께서 요한의 세례를 받고 비둘기 같은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후에, 사생활에서 벗어나 공생활에 접어들면서, 얼마 안 되어 맞이할 죽음을 앞에 놓고 착착 당신의 일을 해 나가다가,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간혹 자기의 죽음에 대하여 조금씩 언질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메시아를 육적으로만 해석하는 그들은 주님의 심정을 전혀 알 길이 없었던 것입니다. 만일 주님이 제자들에게 당신의 죽음에 대하여 솔직히 다 털어놓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모두 떨어졌을 것입니다.

 

 날이 가고 달이 갈수록 주님의 죽음은 점점 다가왔습니다. 이윽고 주께서는 일을 차츰 제자들에게 분담시키고, 당신은 죽음을 맞을 준비를 하였습니다. 마음의 각오를 다시금 굳세게 하는 한편, 육적으로도 되도록 십자가 위에서의 괴로움을 줄이고 빨리 운명하기 위해 오랫동안 음식을 거르셨습니다.

 

 드디어 그날이 닥쳐왔습니다. 주님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으로 기도하러 올라가셨습니다. 제자들 중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조금 더 올라갔습니다. 마음이 몹시 괴롭고 슬픔에 가득 차(26:38) 그들에게서 잠시나마 위로를 얻으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물에 빠진 자가 지푸라기라도 붙잡으려는 심정이었다고나 할까요. 그만큼 주께서는 약해지셨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땅에 엎드려,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26:39) 하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싫어했던 것입니다.

 

 당신이 무엇 때문에 십자가를 져야 하며, 이것을 피했을 때 하나님의 경륜과 인류의 운명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면서도, 따라서 그와 같은 기도가 하나님에 대한 무리한 요구인 줄 알면서도, 그 기도가 입에서 새어 나왔던 것입니다. 하늘에서 여호와인들 얼마나 안타까웠겠습니까?

 

 이윽고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 내려와 주님에게 힘을 주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용기를 얻어, “이 잔이 나에게서 그냥 지나갈 수 없으면,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이마에서는 땀이 핏방울 떨어지듯 하였습니다. 이것은 인류의 운명을 판가름하는 아슬아슬한 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님은 끝까지 죽음과 싸웠습니다. 그리하여 드디어 완전히 죽음을 받아들일 각오를 하였습니다. 당신이 은 30냥에 팔리고 십자가에 달리면 관원이 당신의 속옷까지 제비를 뽑아 나눠 갖게 되어 있는 것을 이미 예언의 말씀을 통해서도 익히 알고 있는 터입니다.

 

 주님은 당신을 팔아 버린 장본인이 바로 가롯 유다라는 것도 알고 계셨으므로, 평소에 당신이 자주 드나들어 유다가 잘 알고 있는 장소를 일부러 택하여 팔려 가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주님은 물론 얼마간 몰래 피신하여 죽음을 연장시킬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시지 않고 몸소 죽음의 구렁텅이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2) ‘다 이루었다’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여섯 시간 만에 운명하셨습니다. 워낙 지쳐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마지막 말씀이었습니다. 주님은 여호와의 뜻대로 순종하고 이기셨습니다. 여호와의 기쁨은 말할 나위도 없고, 하늘에서는 천군 천사들이 호산나를 부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한편 마귀도 여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잡아 죽였으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큰 오산이었습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숨은 비밀, 주께서 죽음으로써 저들에게 크게 불리하게 된다는 것을 미처 몰랐던 것입니다. 그러니 비통하게 울어야 할 판인데, 오히려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는 것이었습니다.

 

 네 복음서는 다 주님의 행적에 대하여 기록하였지만,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이 똑같이 주님과 동행하며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것이 아니며, 각자 받아들이는 바와 개성이 다르므로 문맥에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또 거기에는 베드로를 통하여 마가가 들은 것을 기록한 것도 있고, 마리아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먼 후일에 정리한 것도 있습니다. 그러니 약간의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고 만일 네 사람이 쓴 글이 똑같다면 어떻게 될까요? 오히려 그것은 부자연스러운 일로 그만큼 신빙성이 없어질 것입니다.

 

 마태복음에는 주께서 운명하신 당시의 광경을 이렇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고 영혼이 떠나시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서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27:50-53)


 주께서 전신의 피를 다 쏟고 운명하시자 사나운 회오리바람이 불어닥치며 땅이 진동하고 바위가 터지더니 성소의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그러니까 구약시대에 제사장이 죄인을 위해 송아지나 양이나 비둘기의 피로 지내던 성소의 제사는 주님이 드린 피의 제물로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음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마태가 본 이상에, 무덤들이 열리고 자던 성도가 많이 일어나는 광경이 보였습니다.(27:52) 이것이 곧 첫째 부활이며,(20:4) 구약시대의 선지자들과 사사들은 죽었다가 이때에 부활하여 주님을 따라 승천하게 되었던 것입니다.(5:9)

 

 따라서 모세를 비롯하여 아브라함, 다니엘, 호세아, 스가랴 할 것 없이, 모두들 이때에 첫째 부활에 참여하여 순교자 및 이마에 인침을 받은 의로운 자와 함께 나중에 펼쳐질 지성소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운명하심으로써 사망 권세를 가진 마귀의 압력이 제거되고, 하나님의 사람들이 무덤에서 일어나는 권세를 얻게 되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시대의 선지자나 사사, 순교자 이외의 사람이나 신약시대의 순교자, 또는 살아서 인침을 받는 성도 이외의 사람들은 다 이루어지지 못하여, 생명책들에 기록된 사람들은 음부에 가서 기다렸다가, 심판 후에 둘째 부활에 참여하여 구원을 얻되, 왕의 반열에는 서지 못합니다.

 

 앞에 인용한 말씀은 다름이 아니라, 마태가 이상 중에 이 장면을 영적으로 보고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부활하신 후에 무덤에서 자던 자가 깨어나던 광경은 마태가 120문도와 함께 마가의 다락방에서 불과 같은 성령을 받고 나서 본 계시이며, 이것을 마태가 복음을 기록할 때 삽입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운명하실 때에 멀리서 바라보던 마태는, 햇볕이 어두워지고 땅이 갈라지는 소란 중에 무덤에서 자던 성도의 몸이 일어나는 것을 본 것이 아니고,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은 후에 예수님이 보여 주시는 계시로 말미암아 무덤이 열리며 자던 성도들이 일어나는 광경을 본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다른 복음서에도 기록이 되었을 것입니다.

 

 죽은 자들이 무덤에서 나왔다면 당시에 얼마나 놀라운 일이었겠습니까? 그러나 이것은 육적인 내용이 아니고 음부에 끌려간 영들을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업적을 나타낸 것입니다. 성소 휘장이 찢어지는 장면은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순간에 된 것이고, 주님께서 사흘 후에 부활하신 다음에 이루어진 광경을 본 것이, “성도들이 일어나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들에게 보이니라.”(27:53)고 한 말씀인 것입니다.

 

 거룩한 성이라 함은 지상의 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하늘의 세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에, 십자가를 질 때 무덤에서 자다가 일어난 성도들이 하늘나라에 가서 거룩한 성에 참예하는 광경을 마태가 성령을 받고 나서 영적으로 본 것입니다.

 

 그러기에 4복음 중에도 마태만이 기록한 것입니다. 영적으로 이러한 광경을 본 자는 마태뿐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위치에 있는 주님의 제자이므로, 주께서 이상 중에 계시로 보여 줬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