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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0.07.27본문
Part 01. 아기별이 눈뜰 때
Chapter 10. 시대와 예언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과거 6,000년 동안에 수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나타나 그 시대에 알맞은 예언을 하고, 각자 여호와로부터 맡은바 사명을 이룬 것을 보아 왔습니다. 그리고 그 사명도 사람에 따라 다 이룬 분, 덜 이룬 분, 또는 이루지 못한 분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노아의 때와 아브라함 당시를 비교할 때 인지와 사회 발달에 차이가 많았으며, 아브라함으로부터 약 700년 후의 모세 당시와 그 후 약 500년이 지난 이사야 때도 문명의 차이가 많았습니다. 그러므로 당시의 형편에 맞게 이루어진 일들을 성경에 다 소상히 기록할 수 없었습니다.
에녹이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였지만 성경에는 단지 “에녹이 300년간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하나님이 데려가시니, 세상에 없더라.”(창5:24)라고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엘리야도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선지자 엘리야를 다시 보낸다.”(말4:5)고 하였는데, 세례 요한은 엘리야와 같이 약대 털옷을 입고 가죽 띠를 띠고, 자신을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라고 하였습니다.
‘크고 두려운 날’, 즉 메시아가 태어나는 날보다 6개월을 앞당겨 주님의 길 예비자로서 엘리야, 곧 세례 요한이 왔지만 그는 주님을 의심하여 떨어졌습니다.(마11:11)
이사야서에 보면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7:14)고 하였는데, 이것은 하나님과 멀어졌던 인간이 하나님과 가까워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세상을 사는 동안에 여호와께서 이들을 내버려 둔 것이 아니고 계속 돌봐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아담과 하와가 낳은 가인과 아벨 당대에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고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창4:14)
당시에는 사람의 수명이 매우 길어 보통 몇 백 살을 살았으며, 오늘날처럼 산아 제한도 하지 않았을 뿐더러, 별 노력도 하지 않고 자연이 주는 것만으로 넉넉히 살아갈 수 있었으므로 이들이 하는 일이란 남녀가 사랑하는 것이 업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하여 인간들이 자기네들끼리 사랑하는데 열중한 나머지 하나님은 안중에 없었으므로 하나님께서 인간의 수명을 120세로 줄였습니다.(창6:3) 가인, 아벨 시대에는 사람들의 수명이 무척 길어, 이미 인구 가 어마어마하게 늘었지만, 성경에는 가인과 아벨 두 사람에 대해서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전부 기록할 수도 없었지만, 또 그럴 필요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는 모세가 40주야를 산에서 기도할 때 수천 년 전의 일들을 여호와로부터 계시로 받아서 기록한 것이며, 모세 때는 아브라함 때보다 문화가 상당히 발달했지만 자세한 내막을 알려 주시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모세 때보다도 한결 문화가 발달한 이사야 선지자 때는 주님이 나시기 약 700년 전이요, 지금부터 약 2,700년 전이므로 모세 당시보다 조금 나을 정도였습니다.
선지자들이 기록한 것 중에는 당대에 해당되지 않은 먼 장래의 예언도 들어 있습니다. 예컨대 “수많은 사람들이 지식이 더해지고 빨리 왕래한다.”(단12:4)는 다니엘의 말은 이사야나 예수님 당시에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마지막 때에 이루어질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에는 지상에 어떤 사람들이 어디 살고 있는지 방향도 알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사야 이후 약 2,700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는 전파 신호가 1초에도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이나 도는 빠르기로 소식이 전해지는 형편이며, 무전기 하나만으로도 세계 방방곡곡에 새로운 소식을 얼마든지 전할 수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700년 전, 미개한 시대에 예언한 것과 오늘날 현대 문명 시대에 이영수가 마이크를 통하여 말씀을 전하는 것 사이에는 방법상에도 큰 차이가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문화나 문명이 이와 같이 다르면 하늘에서의 움직임도 자연히 달라지게 마련입니다. 여러분은 먼저 이런 원리부터 알아야 합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7:14)고 기록되어 있는 이사야서의 말씀은 이사야 당시로서는 기적이 되지만, 인공 수정이 발달된 오늘날에는 처녀가 임신하는 것이 하나의 상식적인 일밖에 되지 않습니다.
모세 당시에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 군대와 싸울 때 지팡이를 들고 나가 싸웠으나, 지금은 그것으로는 안 됩니다. 총으로 쏘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모세 당시는 지팡이로 홍해를 갈랐지만, 지금은 큰 배들이 있으므로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이사야는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권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사11:1-2)하고 메시아가 나타날 것을 예언하였으며, 나아가서는 “외치는 자의 소리여,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사40:3) 하고 길 예비자가 나타날 것도 예언하였는데, 모두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주님이나 세례 요한이 나타난 것은 하나님이 이사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 그대로 나타날 만한 시대가 된 고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여호와가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예언한 것은 그 말씀이 이루어질 세대가 지나가도 안 되고, 그전이어도 안 됩니다. 그러니까 바로 그 세대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사야가 예언한 대로, 광야에서 외친다고 한 것은 곧 세례 요한이 자기를 가리킨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요1:23) 그러니 그는 메시아가 아니고, 메시아가 나타날 징조요, 그 예비자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일을 ‘예비’한 사람이, “내가 가서 무엇이라 외치리까?” 하고 물으니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아름다움은 꽃과 같으니, 풀이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불기 때문이라.”(사40:6-8) 즉 하나님의 신이 그 위에 불면 꽃은 시든다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시들어 버리는 보잘것없는 인간이란 광야에서 외치는 자가 나타날 때의 백성들입니다. 즉 세례 요한이 증거하는 주인공이 나타나면 모든 사람의 가치도 보잘것없는 풀과 꽃 같아서 시들어 버리지만 여호와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동산에서 예루살렘을 내려다보시면서 “내가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 하였으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도다.”(마23:37, 눅13:34) 하셨고, 설교하실 때에는 성경에 예언된 것을 지적하여 당신 자신을 증거하였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청년이 구약성경을 가르쳐 주시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이 뜨거워졌다고 하였습니다.(눅24:32)
하나님의 크신 종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덮어놓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갈 길을 밝히 알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주님과 친척 관계에 있었으며, 주님보다 6개월쯤 먼저 세상에 태어났으므로 이를테면 형뻘이 됩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부유한 집안에 태어났고, 주님은 가난한 목수의 집에 태어났으므로 자라는 동안에 서로 내왕이 별로 없었습니다. 환경이 너무나 달랐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한쪽은 억 대의 부자이고 한쪽은 매우 가난한 두 친척이 있어, 전자는 고급 요정에 드나들고 후자는 50원짜리 국수집을 찾는 처지라면 서로 어울릴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세례 요한과 주님은 피차 서먹서먹한 사이였지만, 모태에서부터 성령이 충만한 터이므로 주님은 자기보다 먼저 올 자가 있다는 것을 알았으며, 세례 요한도 자기 후에 올 자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때가 되어 광야에서 물세례를 주면서 외치는 자를 보고 주님은, ‘아하 저이가 그로구나.’ 하였으며, 세례 요한도 자기가 세례를 주는 자 중에 머리 위에 비둘기 같은 성령이 내리는 자를 보고 깜짝 놀라 그가 메시아인 것을 알아차렸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천 년, 수백 년 전부터 여호와께서 계획하고 열심히 움직이시는 것입니다. 즉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하고 지시를 하시는 것입니다. 주께서 길 예비자도 없이 혼자서 역사하시려면 일이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주님의 제자가 된 안드레나 사도 요한도 다 세례 요한의 제자였습니다. 세례 요한을 통하여 귀가 아프도록 주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먼저 온 자가 나중에 온 자를 증거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 어렵습니다.
주님 당시에 그 시대 조건이 맞아야 여호와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처럼, 마지막 때에도 다니엘 선지자가 예언한 네 짐승이 바다에서 올라오는 조건이 맞아떨어지는 세대라야 여호와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네 짐승이라 함은 세상에 일어날 네 왕들이라 했습니다.(단7:17) 세상을 지배하는 세력이 넷으로 갈라질 때가 되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정한 때가 왔다는 뜻입니다. 이때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다니엘이 말한 하나님의 묵시를 터뜨릴 자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지구상에 4대 강국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 불과 3년 전의 일입니다. 저 역시 3년 전부터 하나님께 상세한 가르침을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뜻을 이루시는 때가 되었기에 감추었던 하나님의 비밀을 전하는 자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하리오.”(롬10:15)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런 조건이 맞지 않고서는 그 예언을 잘 알 수 없으며, 또 설사 내용을 알고 그대로 외쳤다 해도 그 세대가 아니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 세대에 하나님의 사람이 나타나서 말을 해야 어울리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늘에서는 언제든지 조건을 맞춰 주는 것입니다. 만일 이사야에게 하나님이 “네가 나가서 핵폭탄 소용없다고 전하여라.” 하고 지시하여 이사야가 그대로 해 봐야 당시의 사람들은 핵폭탄이 무엇인지 알 턱이 없으므로 이사야를 가리켜 미친놈이라고 욕할 것입니다.
반대로 오늘날 이영수가 나가서 이사야처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를 운운하거나 지팡이와 창과 칼을 들고 나가서 싸우라고 한다면 오늘날 사람들은 나를 정신병자라고 욕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