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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0.07.13본문
Part 01. 아기별이 눈뜰 때
Chapter 02. 여호와를 경외하라
오늘날 전 세계의 기독교계에서는 초대교회의 성령의 역사를 동경하며,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120문도들에게 내린 불과 같은 성령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오늘날 어디에서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날 이 사람을 통하여 내리는 성령의 은혜와 근 2,000년 전, 오순절 날에 마가의 다락방에서 내린 성령이 같은 하나님의 영이지만, 어떻게 다른지 알 턱이 없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모세 당시에 계명과 율법이 주어졌습니다. 계명이란 헌법과 같은, 가장 기본이 되는 법도이며, 율법이란 구체적인 상황에서 지켜야 할 법도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계명과 율법을 주셨지만, 주의 피로 새로운 언약이 맺어지고 나면, 그 계명과 율법은 필요 없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구약시대에 여호와께 어떻게 제사를 드렸는가를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시에는 여러 가지 제사가 있었습니다. 모세는 여호와께서 하늘의 광경을 보여 주시고 가르쳐 주신 대로, 지상에 장막을 세우고, 성소와 지성소를 마련하여 진설병을 차려 놓고, 등대에 불을 켜 놓고 하나님에게 경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당시에 제일 중요시한 제사는 ‘번제’로,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예물로 드리는 제사입니다.(레1:2) 대개 송아지나 양 같은 짐승을 잡아서 그 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 경우에 잡은 송아지나 양은 장작불에 완전히 태워서 드리며, 그 제사가 하나님에게 상달이 되어야 제사를 드린 성과가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제사법은 물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일이 지시하였으며, 따라서 그 지시대로 제사를 드려야지,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이렇게 제사 지내야겠다.’는 생각에서 제사를 지내서는 그 제사가 여호와에게 상달되지 않고 헛수고에 그치고 맙니다.
상달이 되지 않는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30년 동안 예수를 믿었네, 모태에서부터 믿었네, 하고 아무리 떠들어도, 자기와 하나님 사이에 아무런 접촉이 없고 냉랭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것은 제사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지 않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는 하나님과 연결이 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연결을 시켜 주는 사명을 맡은 사람이 하나님의 종입니다. 하나님의 종이 귀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다음에 ‘소제’라는 것이 있습니다.(레2:1) 이 제사는 사람들이 거둔 곡식을 가지고 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리는 제사입니다.
이 경우에도 짐승을 잡아서 제물로 삼는데, 기름기만 태우고 나머지 고기는 제사장과 제사 드린 사람들이 먹습니다. 그러면 그 제물인 고기를 먹은 만큼 정결함을 얻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제사장들이 짐승의 고기를 제물로 드려 그 제사가 상달되면, 그 고기가 거룩해지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그 속에서 영생이 있다.”(요6:54)고 말씀하였는데, 이 살이나 피는 산 제물로 드려진 주님의 몸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 제사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질 혜택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실제의 살이나 피를 먹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것은 주님과 하나님 사이에 맺은 새 언약에 의해 되는 일입니다.
이날에 여호와께서 애굽의 모든 장자들을 치실 적에, 이스라엘 민족의 장자들은 멸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들의 집 문설주에 피를 바르게 하셨고, 그 집들만은 제외하였던 것입니다.(출12:23)
이것은 피의 원리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그럼 이 원리가 오늘날 어떻게 연결되느냐, 하늘에서 어떻게 인간들에게 은총을 베푸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가 옛날의 아브라함이나 야곱, 모세, 다윗을 아무리 논해 봐야 우리의 현실은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은 유월절에 이어서, 칠 일간 무교병을 먹음으로써, 애굽에서 나와 광야에서 지내게 된 것을 기념하게 하셨습니다.
또 하나의 절기는 ‘맥추절’입니다. 맥추절이란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리를 거둬들이고, 곡식의 십일조를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절기로, 칠칠절 또는 오순절이라고도 합니다. 이때는 또한 모세가 시내산에서 계명을 받아 가지고 내려온 날을 기념하는 기간이기도 합니다.
세 번째는 초막절로, 가을 추수가 끝난 다음에 곡식을 저장하고 드리는 감사제입니다. 그래서 수장절이라고도 하는데, 이 기간동안 광야에서 조상들이 고생했던 것을 기억하도록 초막에서 지내게 하셨습니다.
위에서 말한 세 가지 제사와 절기 이외에 각자 그때그때 개인적으로 지은 죄를 사함받기 위해 매일 드리는 제사가 있었습니다.
가령 누가 남의 돈을 축내었다거나 남을 해쳤을 때, 그 죄를 씻기위해 그 손해를 끼친 것에다가 그 오분의 일을 더한 보상을 갖고 와서 제사장을 통하여 하나님에게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도입니다.
죄상과 형편에 따라서 송아지나 양 또는 비둘기를 잡아서 제물로 드리고 죄 사함을 받아야 하는 번거로운 일을 그래도 당시의 사람들은 곧잘 지켰습니다.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이와 같은 제사를 담당하는 지파가 바로 레위지파였습니다.
앞에서도 잠깐 이야기했지만, 제사를 드릴 때 제물이 가령 다리가 부러졌다거나 눈이 하나 멀었다거나 하면 여호와께서 받아 주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죄 많은 사람의 제사를 받아 주시겠습니까?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좇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별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뇨. 제사 직분이 변역한즉 율법도 반드시 변역하리니.”(히7:11-12)
이에 대해서는 여러분이 다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다른 제사장이란 두말할 것도 없이 주님이요, 변한 율법은 자유의 율법입니다.
이와 같이 율법이 변하고 “나는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하나님 앞에 갈 수 없다.”(요14:6)는 주님의 말씀대로,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아브라함이나 모세와 같은 위대한 선지자일지라도 ‘양의 문’인 주님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로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의 경륜을 헤아리던 다윗은 영적인 단계가 깊었던 고로, “내가 기다리오니, 주께서 다시 이 땅에 오실 적에 내 영혼이 무덤에서 버림을 당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고 말했던 것입니다.(시16:10)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리심으로 말미암아 단번에 죄인들을 대신하여 제사 드린 바가 되어, 더 이상 짐승의 피로 제사를 드리는 구약시대의 제사가 필요 없어졌습니다. 그 피가 마지막때 이긴자를 통하여 생수로 내리게 되어 있으므로 우리는 이 성령의 역사에 동참하여 은혜를 받아야 구원의 큰 길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계21:6-7)
그렇지 않고 지금도 구약시대의 율법이 그대로 존속된다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이 시간에도 각자 자기 죄상에 따라서 어떤 사람은 송아지를 잡아 가지고 나오고, 어떤 사람은 양, 또 어떤 사람은 비둘기를 잡아서 들고 나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와 같이 빈손으로 나와 주의 십자가를 붙드는 심정으로 하나님에게 제사를 드릴 적에 죄가 무너져 나갈 수 있는 것은 주께서 우리 죄인들을 위해 저주받은 바가 되어 대신 제물이 되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 피를 마시고 그 살을 먹으면, 다시 말해서 성령으로 내리는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면 우리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깨끗해질 수 있습니다.
그럼 이 성령을 어떻게 받을까요? 대답은 간단합니다. 그런 은혜를 끼쳐 주는 이긴자를 만나야 합니다. 이 성령이 오면 마귀가 눈 녹듯 녹아 버리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귀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이 성령입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에게 새로운 힘을 주는 주의 보혈의 깊은 사정을 드러내면 마귀는 가만있지 않고, 진리를 논하는 사람을 핍박하고 조롱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갈라디아 교인들아, 너희가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 겠느냐?”(갈3:3) 하고 바울이 한탄한 것과 같은 광경을 오늘 이 땅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