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권] Part 04 - Chapter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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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4.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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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4. 우리도 이기리

Chapter 23. 하나님은 왜 인간을 지으셨는가?

 

나는 오늘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신 목적에 대하여 말씀드리고 자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성경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43:7) 즉 하나님은 영광을 받기 위해 인간을 지었습니다. 나는 이에 대해 전에 간단히 언급한 적이 있지만, 오늘은 좀 더 깊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계시록에 이런 말씀이 쓰여 있습니다. “내가 보니 어린 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144천이 서 있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144천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14:1-3)

 

내가 이 말씀을 여기 인용하는 것은 이 말씀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신 목적과 긴밀한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144천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정예 부대의 숫자로, 이들은 마귀의 세력을 온전히 무찌르기 위한 아마겟돈 전쟁에서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과 싸우게 됩니다. 그럼 무엇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런 정예 부대를 필요로 하실까요? 일찍이 잃어버린 에덴동산을 되찾으려는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가 구세주임을 믿기만 하면 족한 줄 알고 있지만,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데 그치는 관념적(觀念的)인 신앙의 차원에서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나도 전에는 하나님의 뜻이 예정대로 쉽게 이루어지고, 인간은 주여!” 하고 한 마디 부르기만 하면 원하는 대로 다 되는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 중에 주님의 설명을 자세히 듣고 하나님의 깊은 사정을 알고 보니, 그게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말할 수 없이 복잡하며, 우리의 생각과는 거리가 멉니다. 하나님의 뜻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땅에서 합심하여 이루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자면 물론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인간의 노력도 필요합니다.(11:12 참조)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인간의 사명이 얼마나 큰가를 알아야 합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땅 위에 사람을 지으셨음을 한탄했다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6:6) 우주의 삼라만상을 창조하신 위대한 하나님께서 왜 보잘것없는 인간 때문에 한탄까지 하였을까요? 하나님께서 창업의 여섯째 날에 당신의 형상대로 아담, 하와를 지으시고,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들을 다스리라.”(1:28)고 말씀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세상의 통치권을 부여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마귀의 꼬임에 빠지자 이 통치권도 자동적으로 마귀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습니다.(4:6 참조)

 

그러므로 이 통치권을 회복하려면 우선 마귀의 편이 된 인간을 하나님의 편으로 다시 돌이켜야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마귀에게 빼앗긴 인간을 도로 빼앗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회복(人間回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회복하기 전에는 만물을 회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물을 치리하는 인간의 권한이 마귀에게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을 회복하면 만물은 자연히 회복되게 마련입니다.

 

마귀가 창세 이전부터 존재하였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천하 만물을 짓자마자 마귀가 인간으로부터 그 통치권을 빼앗은 것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벧후 2:4) 라는 베드로의 말에 의하여, 천사가 타락한 것이 마귀라고 해석하고 있지만, 천사가 타락하기 전에 천사를 타락하게 한 존재가 있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바로 마귀입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을 섬겨서는 안 된다고 당부하시고,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3, 4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20:5-6)고 했습니다.

 

또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가 여호와를 능히 섬기지 못할것은,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오,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니,”(24:19)하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인간에게 질투를 느낄까요? 질투란 라이벌(경쟁자)이 있을 때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라이벌이 시시하거나 무능하면 질투를 느끼지 않습니다. 쉽사리 물리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누가 라이벌의 편이 되더라도 눈 하나 깜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라이벌이 강하여 누가 그쪽 편이 될 경우에 자기가 불리하게 된다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그때에는 질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질투를 느낄 정도라면 라이벌이 강자일까요, 약자일까요? 만일 약자라면 누가 그쪽 편이 되던 내버려 둘 것입니다. 얼마든지 처단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자기가 라이벌에게서 도전을 받아 위협을 느낄 때에는 그렇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마귀를 섬기는 것을 몹시 싫어하는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하나님에게는 마귀라는 강적이 도사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을 로봇으로 지은 것이 아니라 당신의 영광스러운 형상대로, 즉 당신과 흡사하게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무엇으로든지 마음대로 지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인간을 당신의 형상과 같게 지으셨을까요? 마귀에게 도전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통해 마귀에게 싸움을 걸려고 했던 것입니다. 누구나 싸울 때 주먹으로 상대방을 치는 것보다 망치로 치는 편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하나님은 이를테면 인간을 당신의 망치로 지으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마귀가 이것을 보고만 있을 리가 만무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사전에 봉쇄하기 위해 하나님의 망치인 아담, 하와를 꼬여낸 것입니다. 아담, 하와는 결국 마귀의 손에 떨어졌습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지은 것이 당신에게 유리하기는커녕 마귀에게 유리하여, 차라리 인간을 짓지 않은 것만 못한 결과가 되어버립니다. 소중한 무기를 적에게 빼앗긴 격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신 것을 한탄할 만도 합니다.(6:6)

 

아담, 하와가 마귀의 손아귀에 떨어지는 순간 하나님을 보기가 두려워 숨은 것은 이미 자기는 딴 패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부득이 에덴동산에서 그들을 쫓아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음에 하나님께서 하실 일은 그 무기를 마귀의 손에서 다시 빼앗는 일입니다. 이것이 인간 회복이자 에덴동산의 회복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빼앗길 때에는 아담과 하와 둘뿐이었으나, 그 후 점점 마귀의 세력이 팽창하여 이를 도로 빼앗으려면 적어도 아담, 하와의 72천 갑절의 수가 필요했습니다. 그것이 곧 144천의 하늘 군대입니다.

 

예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자처하는 바리새인들을 마귀에게서 났다.”(8:44)고 비난한 데는 그만한 깊은 사연이 깃들어 있습니다. 저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귀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주께서 70문도를 각지에 전도하러 내보낼 때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내는 것과 같다.”(10:3)고 말씀하신 것도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세상은 그만큼 악한 것입니다. 이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세상을 주관하신다면 그럴 리가 만무합니다.

 

주님은 당신을 알파와 오메가라고 했습니다. 알파는 희랍어 알파벳의 첫째 글자 이름이고, 오메가는 마지막 글자의 이름으로,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거기에는 나중 에덴동산을 회복하면 처음 에덴동산으로 돌아간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예정하신 깊은 경륜입니다. 하나님의 예정설은 이런 각도에서 해석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담, 하와를 마귀에게 빼앗기고 이어서 천하만국이 마귀의 손에 들어갔다고 해서 하나님이 속수무책인 것은 물론 아닙니다. 즉 하나님은 마귀를 끊임없이 처단합니다.

 

그러나 일단 천하만국을 손에 넣은 마귀의 세력은 자꾸만 팽창해 나가므로 하나님으로서는 날로 불리한 입장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귀를 본격적으로 소탕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하기 위해 당신의 독생자를 이 땅위에 보내어 피를 흘리게 하신 것입니다.

 

마귀는 주께서 십자가에 달려 흘린 피가 자기를 멸망시킬 큰 무기가 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감춰진 비밀이었기 때문입니다.(2:2) 만일 마귀가 이 비밀까지 알아내었더라면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144천이라는 하늘 군대는 배출될 수 없게 되며, 따라서 마귀는 영원히 세상을 자기 손아귀에 넣고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는 말로만 144천 운운할 때는 지났습니다. 아마겟돈 전쟁에서 짐승과 싸울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 곧 주의 아내를 단시일에 배출시켜 그 수를 실제로 채우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아내란 무엇입니까?

 

남남끼리 만나서 누구보다도 흉허물 없는 제일 가까운 사이가 되는 것이 아내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도와 짐승과 함께 싸울 하늘 군병의 명칭을 어린 양의 아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여자가 출가하면 남편의 호적에 오르게 됩니다. 이와 같이 어린 양의 아내가 되면 주님의 호적에 오르게 마련입니다. 이 호적이 바로 어린 양의 생명책입니다. 마지막 아마겟돈 전쟁이 벌어질 때에는 이 어린 양의 아내 이외에는 모두 짐승을 경배하게 됩니다.(13:4) 그만큼 짐승의 권위와 세도가 당당한 것입니다.

 

이때 어린 양의 아내의 이마에는 주님과 하나님의 인침을 받고,(14:1) 그 밖의 무리들의 이마에는 짐승의 표를 받게 되므로(13:17) 적과 자기편을 확연히 분간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