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정보
DATE. 2025.01.22본문
Part 01. 승리의 십자가 아래서
Chapter 02. 하나님의 책략
하나님은 우리와 멀리 동떨어진 아득한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우주의 대자연 속에서도 하나님의 손길과 그림자를 엿볼 수 있지만, 하나님은 한 걸음 나아가서 우리와 호흡을 같이하여 일상생활에 직접, 간접으로 간섭하십니다. 그 이유는 우리들의 또 하나의 배후 조종자인 마귀의 손에서 우리를 건져내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곧 과거 6천 년에 걸친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마귀에게 빼앗긴 인간을 당신의 품으로 돌이키기 위해 그렇게 오랫동안 역사해 오신 것입니다.
오늘날 과학이 극도로 발달되어 기계로부터 인간을 회복해야겠다는 소리가 높지만, 참된 인간회복은 인간이 마귀의 사슬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에덴동산을 되찾으려는 하나님의 꾸준한 노력은 이를 훼방하는 마귀라는 적수 때문에 쉽사리 매듭을 짓지 못하여, 하나님은 이모저모로 책략을 세우시게 된 것입니다. 그 구체적인 예를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시한 내용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하나님은 모세를 내세워 애굽에 가 있는 당신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내게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400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 네 자손은 4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창15:13-16)라는 언약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여기서 말씀한 ‘이 땅’은 가나안 땅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고로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모세가 애굽 왕 바로의 치하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모조리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당시에 애굽 인구는 약 700만 가량 되었으며, 이 중에 이스라엘 사람은 장정만 해도 60만이나 되었다니까, 남녀노소를 합치면 약 300만쯤 되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당초의 70명에서(창46:27) 400년 동안 하나님의 축복으로 말미암아 급속도로 번식하여, 애굽 인구의 절반 가까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들 이스라엘 백성은 주로 목축을 비롯한 막노동에 종사하고 있었으나, 일부는 장사로 한 밑천 잡기도 하고, 또 국무총리 요셉의 직계 후손
은 관공리로 출세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바로가 애굽에 막대한 인적 자원이 되어 소중한 노동력을 제공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줄 리가 만무했으며, 한편 애굽에 생활 기반을 닦아놓은 일부 이스라엘 백성들도 애굽을 좀처럼 떠나지 않으려고 할 것은 빤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거짓말을 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즉 애굽의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가서 사흘 동안만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려고 하니 허락해 달라고 말하라는 것이었습니다.(출3:18)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이 남에게 거짓말을 해도 무방하냐 하는 것입니다. 주의 종이라도 때로는 거짓말도 해야 합니다. 이 경우에 거짓말을 하는 것이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모세가 하나님의 지시를 곧이곧대로 백성에게 알린다면 그것은 마귀와의 싸움에서 패배를 스스로 불러들이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러니까 이 경우에 부정직이 선이 되고, 정직이 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거짓말을 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일단 애굽에서 탈출시키는 데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또 하나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랫동안 감수해야 할 광야 생활을 어떻게 지탱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즉 경제적인 밑받침이 문제가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미리 손을 써서 이 문제를 해결해 놓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의 장자들을 죽이자 그들이 두려워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요구하는 대로 금은 패물을 주게 했던 겁니다.(출12:35-36) 애굽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단 탈출로 말미암아 경제적으로도 막대한 타격을 입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각자 주머니를 털어 금송아지를 만들 수 있었던 것만 보아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로는 허겁지겁 군대를 풀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뒤쫓게 했습니다. 여기에도 하나님의 속셈이 있었던 것입니다. 즉 당신의 백성들로 하여금 적의 창검의 위협을 받게 하여 애굽 시절에 대한 미련을 갖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이런 적의 위협이 없었던들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는 광야의 유랑생활에 지친 나머지 애굽으로 되돌아가려는 자들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내세워 마귀와 싸울 때 매우 조심스럽게 지모를 짜내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마귀쯤 휙 불면 대뜸 날아가는 것으로 알았다가는 오산입니다. 우리는 마귀에 대해 경각심을 잠시도 늦춰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