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권] Part 01 - Chapter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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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5.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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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1. 승리의 십자가 아래서

Chapter 04. 주님은 왜 사도 요한에게 계시록을 쓰게 했는가?

 

신령한 영적인 이야기는 한정된 인간의 머리로는 헤아리기 어렵다기보다도 거의 불가능합니다. 주께서 땅에 계실 때 고전하신 것은 이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한다.”는 주님의 말씀 속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영의 세계를 이해하려면 영적인 눈이 뜨이고 영적인 귀가 열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 당시의 사람들은 그렇지가 못하여, 주님은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100% 믿고 따르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육적인 이야기를 많이 섞어가면서 당신의 정체를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기 위해 육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주를 지으신 창조주로 오신 것이 아니라 천사만 못한 존재로 오시고,(2:9) 완전한 조건을 가지고 오신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조건을 가지고 오셨으며, 땅에서 영원히 살아갈 주님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어야 할 주님으로 오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은 인간과 같은 위치에서 피를 흘려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야만 뭇 인간들을 대속하는 제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불리한 여건 하에 움직이신 주님이므로 땅에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당신의 한계를 스스로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14:12) 하고 말씀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땅에 계실 때의 주님의 한계를 알아야 합니다. 그는 하나님과 함께 우주의 창조에 동참한(1:26) 신령한 존재이지만, 육을 입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땅에서는 이런 제약을 받아야만 했던 것입니다.

 

지난 2천 년 동안 기라성 같은 사도나 성자, 대 신학자 할 것 없이 모두가 바울 신학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바울 신학으로 족하다면 주께서 사도 요한에게 새로운 지시를 했을 리가 없습니다. 이 지시의 내용이 곧 계시록입니다.

 

주님은 말씀했습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리라.”(16:12-13) 여기서 주님은 진리의 성령을 충만히 받은 자가 나타나 주께서 못다하신 말씀을 대언할 것을 예고하고 계십니다. 이 대언자가 곧 감람나무요, 이긴자입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2:17) ‘흰 돌위에 기록한 이름은 주께서 하시지 못한 깊은 비밀의 말씀을 의미하며, 돌은 주님을 상징합니다. 이 흰 돌의 내용은 두 감람나무 중에서 열매를 거두는 종에게 가르쳐 주게 되어 있으며,

 

따라서 그 말씀은 오늘날 전 세계의 7억 기독교 신자가 들어야 할 뿐만 아니라, 이미 죽은 수억의 신도와 또 앞으로 탄생될 무수한 신도들이 귀를 기울여야 할 영적인 말씀인 것입니다.

 

주께서 사도 요한을 통해 예언한 지 근 2천 년이 지난 오늘날 그 말씀이 이 땅에서 터져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이긴자가 오늘이 아니라 사도 요한 당시에 출현했다면 지난날의 모든 신도들은 바울의 신학 체계가 아니라 감람나무의 신학 체계에 의해 신앙생활을 해 왔을 것입니다.

 

또 그렇게 되었더라면 만유를 회복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은 벌써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신학으로는 시간만 지연될 뿐, 마귀를 발등상 시켜 하늘나라를 이룩하려는 작업은 본격적으로 진행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나는 주께서 쓰시는 나팔수로서, 내 말이 아니라 주의 말씀을 충실히 대변하고 있습니다. 내가 중학교 3학년 공부밖에 하지 못한 것은 주께서 뜻이 계셔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나도 환경만 허락했더라면 남 못지않게 공부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께서 내 환경을 바꿔 놓으신 것입니다.

 

내가 만일 남들처럼 대학을 나오고 미국 유학을 통해 박사 학위를 따고 나서 이 단상에서 외친다면 듣는 사람들은 저마다 내가 유식해서 저런 말을 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내 이름은 올라갈지 모르지만, 주의 대변자로서 주께 영광을 돌릴 수는 없습니다.

 

이와 같이 인간의 지식은 주의 영광을 가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컨대 바울의 경우가 그러했습니다. 바울은 당대의 대학자로 설교에 자연히 불필요한 지식이 섞여, 듣는 사람들에게 호소력이 약했던 것입니다. 지식이 군더더기가 된 셈입니다.

 

저간의 소식은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2:2)는 바울의 다짐 속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바울다운 현명한 자기 반성이라고 하겠습니다. 참된 주의 종은 그 입술이 주의 마이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앞선 역사의 종도 처음에는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오는 것이 끊기자 자기 생각이 앞서 중구난방이 된 것입니다. 사울 왕의 경우도 이와 비슷합니다. 하나님과 수시로 교류하던 그가 오죽 답답했으면 밤중에 변장을 하고 무당을 찾아갔겠습니까?(삼상28:8)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1:3) 이 예언의 말씀이란 물론 계시록에 예언된 내용을 가리킵니다. 주의 종이 터뜨리는 하늘나라의 비밀도 귀가 열려 자기의 마음에 와 닿지 않으면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에게는 마이동풍, 아무 관련이 없는 것입니다.

 

내가 이 단상에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 승천하신 영광의 주께서 땅에 계실 때 미처 못 한 말씀이 기록된 계시록의 내용을 터뜨리니, 기성교회에서는 이단시하고 있습니다. 2천 년 전의 예수밖에 모르는 저들이 오늘의 예수를 전하는 사람을 탓하여 손가락질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올바로 믿으려면 오늘의 예수가 무엇을 원하고 계시는가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계시록에는 멜기세덱의 반열에 속하는 영들이 지성소에서 주와 함께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6:9-11 참조) 이 단상을 통해 나가는 새로운 말씀은 이 영들이 지성소에서 듣는 내용과 같습니다. 그것을 여러분은 지금 이 자리에서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영의 역사를 오늘날 믿노라 하는 자들이 외면할 뿐 아니라 비방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고로 이렇게 어려운 것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