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권] Part 01 - Chapter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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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5.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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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1. 승리의 십자가 아래서

Chapter 05. 영적 가나안을 향하여

 

오늘날 교계에서 볼 수 있는 큰 폐단의 하나는 주여하고 부르며 믿기만 하면 다 되는 줄 아는 안이한 신앙 태도입니다. 이것은 말씀을 종합적으로 연결해 생각하지 않고, 어느 한두 구절을 따로 떼어서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상고하면 구원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속 사업에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늘 말하지만,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가로막는 세력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아담과 하와는 죄를 짓기 전에는 하나님과 방불한 존재였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영체로, 번개보다 억만 배나 빨리 움직이면서 우주에서 주인 행세를 했으며, 하나님과 대면하여 능히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빛나는 광휘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감히 정면으로 대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모세나 바울과 같은 큰 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담, 하와가 죄를 지어서 마귀의 형상을 닮게 되었으며, 그 후손이 오늘의 인간으로서 진화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마귀의 존재를 도외시하고는 성경을 제대로 해석할 수 없고, 올바른 신앙관을 가질 수 없습니다. 흠과 티가 없는 영체인 아담, 하와도 마귀에게 넘어가는 판국에, ‘주여, 주여한다고 마귀가 건드리지 못하겠습니까? 우리가 아무리 경계해도 못 당하는 것이 마귀의 농간입니다. 하나님은 당신 편에 선 자를 마귀가 채어가도 당장은 방관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신 것을 후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6:6 참조) 앞선 하나님의 역사에서 주의 생기를 불어넣은 것이 9만의 성도 였습니다. 그런데 그 성도들이 마귀의 밥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알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것을 되찾으려는 섭리가 우리의 역사입니다.

 

노아의 홍수에 대해 잠깐 생각해 봅시다. 노아의 홍수는 오늘날 잘 알려져 있지만, 당시에 노아는 미친 영감으로 따돌림을 받았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자비하신 하나님께서 수천 만 명의 백성들을 홍수로 쓸어버리고 노아의 식구 여덟 명만 구원하기 위해 배를 지으라고 지시했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의 지시를 철석같이 믿고 시키시는 대로 하였더니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은 마귀의 밥이 되어 당신을 거역하는 무리는 가차 없이 쓸어버립니다. 하나님을 무작정 자비하신 줄만 알았다가는 오산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두렵게 섬겨야 합니다.(14:7) 하긴 내 말이 얼른 납득이 가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날 수억의 신도들은 믿기만 하면 구원 얻는 줄로 생각하고 있는데, 내가 불과 몇백 명을 앞에 놓고 그렇지 않다고 떠드니 말입니다. 나도 하나님의 깊은 내막과 마귀의 정체에 대해 주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기 전에는 구원이 쉽지 않다는 것을 미처 모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쓸모 있는 하늘 군병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안 되면 대한민국의 4천 만이 다 믿어도, 아니 세계 50억 인구가 다 신자가 되어도 하나님은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믿는다고 하면서도 마귀의 밥이 된다면 하나님은 그들을 쓰시고 싶어도 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원죄, 유전죄, 자범죄가 누적된 인간이 주의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깨끗이 소멸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한평생 새벽 제단을 쌓고 철야하면서 기도하며 몸부림을 쳐도 안 되는 것이 불과 3, 4초 동안에 씻음을 받는 길이 있다면, 처음 듣는 사람은 코웃음을 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역사입니다.

 

이것은 주의 보혈의 은총이지만, 주님 당시에는 되지 않던 일입니다. 주님은 반신반인으로, 인간을 대할 때에는 인간으로, 하나님을 대할 때에는 신으로 행세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주께서 땅에 계실 때에는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끝까지 따른 자는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부활하신 후 곧 승천하지 못하고 40일 동안이나 지상에 머물면서 이모저모로 번거롭게 당신의 부활을 증거하였습니다.

 

일찍이 주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당당히 입성하실 때에는 큰 소리로 호산나를 외치며 따르던 수많은 무리들이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자 저마다 예수가 별것 아니었구나!’ 하고 뿔뿔이 흩어졌던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수천 명이 아니라 몇 백 만이 있으면 뭐 합니까? 그것은 주님에게 있으나 마나한 숫자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자들에게 주님은 인을 칠 수 없습니다. 유사시에는 모두 마귀의 밥이 되기 때문입니다.

 

앞선 하나님의 역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 안에 부름을 받아 귀한 성령의 은사를 받고도 다 쏟아 버렸던 것입니다. 그것은 주의 피를 짓밟은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앞선 역사는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주님 이후 가장 화려한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그런데 왜 저 모양이 되었습니까? 그들에게 은혜가 없었습니까? 사람이 없었습니까? 돈이 없었습니까? 열성이 없었습니까? 그들에게는 이 모든 것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체계를 몰랐습니다. 감람나무의 역사가 무슨 역사인지 몰랐기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그들의 위치를 저버리고 방향감각을 잃은 채 우왕좌왕하다가 결국 저 지경이 되고 만 것입니다.

 

저들은 주께서 무엇을 원하고 계시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주께서는 하늘 군병을 원하고 계십니다. 이 군병들에게 주님은 세마포를 입혀 주시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19:8 참조) 세마포란 말하자면 갑옷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군대란 무엇입니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군대입니다. 여차하면 도망칠 궁리나 하는 자를 군병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하늘 군병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 가나안으로 가는 길은 험하고도 좁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처럼 하나님의 크신 은혜 가운데 부르심을 받았으니, 어떤 시련이 닥치더라도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라는 찬송가대로, 끝까지 참고 견디며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이 길을 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