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권] Part 02 - Chapter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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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5.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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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2. 새벽종이 울리면

Chapter 12. 빛과 어둠(2)

 

1) 빛이 어둠에 비취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말씀이 육을 입고 빛의 존재로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말씀의 존재로 계실 때의 주님과 육을 입었을 때의 주님은 하늘과 땅 만한 차이가 있습니다. 전자는 창조주이시고 후자는 천사보다 조금 못한 존재’(2:9)인 것입니다.

 

주께서 이런 존재로 오시게 된 것은 인간에게 빛을 심어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속에 빛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말이 쉽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말씀의 존재가 육을 입고 오셔서 직접 작업을 해야 할 정도라면 그 어려움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세상은 어둠이 주관하고 있습니다. 이 어둠을 구석구석 밝힐 수 있는 빛이 곧 144천의 하늘 군병입니다. 그것은 어둠을 완전히 물리칠 수 있는 전력입니다. 주께서는 이 전력이 마련되기를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에는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2:35) 기다린다고 표시하고 있습니다. 어둠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다시 침투할 여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안찰을 받는 것은 빛을 심는 직접적인 방법이지만, 어둠이 주관하는 세상에서 살아가므로 간직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릇부터 마련하라는 것입니다. 그릇이란 신앙 체계를 튼튼히 세우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은 이 그릇을 준비하는 단계입니다.

 

지금은 인간이 하나님을 좇을 수도 있고, 마귀를 택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찬양하건 마귀를 찬양하건 자유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죽으면 자동적으로 지성소가 아니면 음부로 가게되어 있습니다.(6:8-10 참조)

 

내가 옥중에서 신곡을 읽어보았더니 이 책을 쓴 단테는 음부가 땅 속에 있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음부는 마귀의 세계입니다. 우리는 이 우주를 어마어마하게 생각하지만, 영의 세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 우주밖에 하나님의 나라와 마귀의 세계가 있는데, 이 영계는 우주보다 훨씬 광대합니다. 그러므로 육적으로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엄청난 세계입니. 하나님의 나라는 빛에 싸여 그늘이 없고 모든 물체가 투명하지만, 마귀의 세계는 어두컴컴하고 불투명합니다.

 

죽는 순간 이 마귀의 세계인 음부에 가면 생전에 마귀와 가까이 지낸 사람일수록 환영을 받고 마귀와 멀리 지낸 사람일수록 푸대접을 받게 마련입니다. 흔히 마귀가 죄지은 자를 불 구렁텅이에 쓸어 넣는 줄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마귀가 무엇 때문에 자기편을 처벌하겠습니까?

 

성경에 나오는 불 구렁텅이는 이른바 지옥으로, 이것은 하나님이 당신의 역사를 가로막고 마귀의 편에서 움직인 죄인을 처벌하는 곳입니다. 따라서 지옥은 하나님의 세계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 음부의 식구 중에 마귀가 미워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생전에 하나님의 편에 온전히 서지 못했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위해서 많이 움직인 자들입니다. 이들은 천년세계가 지나 마지막 영의 일대 격전을 마친 다음 심판을 거쳐서 하늘나라로 옮겨지게 됩니다. 심판이란 이들을 건지기 위한 절차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들은 음부에서 천년세계가 이루어지기를 고대하는 반면에, 마귀의 편에서 움직인 자들은 천년세계가 이루어지는 것을 가장 두려워합니다. 이들 중에서 마귀와 가까이 지낸 자일수록 같은 불 구렁텅이에서도 큰 형벌을 받게 됩니다. 즉 고통의 감도가 심한 것입니다. 이것이 곧 지옥입니다.

 

그러므로 음부의 권세를 잡은 마귀를 발등상 시켜 천년 세계가 이루어지고 세 번째 큰 영의 싸움을 마치기 전에는 누구도 지옥에 가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어둠의 자식은 당신의 나라에 데려올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무자비하다고 원망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런 일면을 이해해야만 성경66권을 올바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 당신의 백성들을 정착시키기 위해 원주민을 어린아이에서 어른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도 남기지 말고 몰살하라고 여호수아에게 지시했습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이럴 수가 있나, 같은 인간인데, 이렇게 불공평하고 무자비할 수 있나,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기독교는 윤리나 도덕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마귀와 싸우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 의문은 풀리고 맙니다.

 

세상은 빛과 어둠의 싸움터입니다. 이 어둠을 빛으로 완전히 물리쳐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언제나 빛에 어둠이 깃들 소지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처럼 놀랍던 앞선 하나님의 역사도 어둠이 깃들기 시작하여 우리의 새 역사가 그 뒤를 이어 복구하게 된 것입니다.

 

빛이 어둠으로 바뀌면 그 자리에는 일곱 배의 어둠이 깃들게 마련입니다.(21:45) 앞선 역사를 수보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발족된 우리 역사가 고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2) 마귀를 대적하라

하나님은 하늘나라의 보좌에 평안히 앉아 계시는 것이 아니라 전쟁 중에 계십니다.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또 앞으로도 당신의 나라가 이루어질 때까지 그러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전쟁에서 이를테면 최고 사령관의 위치에 계십니다.

 

성경은 이 전쟁사요 또한 작전 계획서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군데군데 감춰진 비밀이 있으며, 이것은 인간의 머리만으로는 알 길이 없습니다.

 

일곱 우레가 발할 때에 내가 기록하려고 하다가 곧 들으니, 하늘에서 소리 나서 말하기를 인봉하고 기록하지 말라.’ 하더라.”(10:4) 주께서 사도 요한에게 말씀의 기록을 보류시킨 것입니다. 작전상의 깊은 비밀이기 때문에 숫제 기록을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내용은 개봉하기 전에는 알 길이 없습니다. 이것은 누가 개봉할까요? 적절한 시기에 주께서 당신의 종을 통해 터뜨리게 되어 있습니다.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10:7) 여기에 나오는 하나님의 비밀은 영원한 하늘나라가 이루어지기까지 마귀가 알아서는 안 되는 전략입니다. 이 하늘나라는 천사가 일곱째 나팔을 불 때 비로소 이루어집니다. 하늘의 3수와 땅의 4수가 합쳐져서 7수로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왜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그것쯤 한꺼번에 후딱 해치지 못하고, 순서니 절차니 비밀이니 하고 복잡하게 말하느냐고 나에게 항의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기성교회의 교인들은 거의 다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지난 6천년 가까운 긴 세월을 전쟁 중에 계셨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하나님은 어디나,

 

또 언제나 무소부재하고 전지전능한 줄로만 배워왔고, 따라서 그렇게만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물론 무소부재하시고 전지전능하십니다. 그러나 마귀가 아담, 하와에게 침투한 이후의 땅의 세계에서는 그렇지 못합니다. 그래서 6천 년이라는 오랜 장기전을 계속해 오신 것입니다. 그만큼 대적하는 세력이 만만치 않은 것입니다.

 

성경에서 마귀가 주님을 시험하는 장면을 한 번 상기해 보십시오. 이것은 신약의 성경 기자들이 주님의 간증을 기록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마귀가 주님 앞에서 얼마나 거드름을 피우는가를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주님은 말씀으로 마귀를 물리쳤지만, ‘마귀는 예수를 떠났을뿐 결코 발등상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마귀를 발등상 시키는 작업은 오늘날까지도 하나의 숙제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피를 흘리시고 하늘나라에 오른 후의 주님은 또 다른 위상에 계십니다. 주님은 멜기세덱의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을 대신하여 마귀를 발등상 시키는 총사령관의 직책을 담당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 사이에 교류의 형상이 판이하게 달라집니다. 바울의 소명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주께서 직접 택해 세운 종을 통하여 역사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 역시 결국은 마귀를 발등상 시키기 위한 하나의 포석입니다.

 

그렇다면 마귀를 발등상 시킨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마귀의 세력을 밟아서 뭉개버린다는 비유입니다. 마귀를 발등상 시킨다는 것은 어둠을 빛으로 몰아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령 캄캄한 교실을 밝히기 위해 적어도 촛불 다섯 개가 필요하다면 우리는 이 촛불을 확보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이 어둠의 세계도 환히 밝힐 수 있는 최소한도의 영적 촉불이 필요합니다.

 

그 촛불의 수가 곧 144천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6천 년 역사는 요컨대 이 영적 촛불의 수를 채우기 위한 사전 작업인 것입니다. 감람나무 시대 이전에는 순교자들이 이 촛불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순교를 원하시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디까지나 마귀와 싸워 이길 수 있는 정예부대를 원하십니다. 땅에서 수억이 하나님을 찾아도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자가 얼마나 되느냐가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