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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4.01.19본문
Part 04. 예루살렘의 별
Chapter 28. 영의 양식에 대하여
아담과 하와는 처음에 하나님의 형상을 닮고 있었으므로, 인간의 육안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보는 순간 강한 빛에 눈이 멀어 죽게 마련입니다. 바울이 다메섹에 가는 도중에 주의 밝은 빛을 보는 순간 졸도하다시피 한 것을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상 중에도 호화찬란한 빛을 발산하여 정체를 볼 수 없습니다. 주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주님이 육을 입지 않고 그냥 땅에 오셨다면 사람들은 주님을 보는 즉시 그 강한 빛으로 말미암아 까무러쳤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아담, 하와도 이런 빛의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주의 아내가 입는 ‘빛나는 세마포 옷’이란 요컨대 이 빛의 옷을 가리킵니다.
아담, 하와가 하나님을 대면하여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은 형상이 하나님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빛나는 흰 세마포 옷을 입으면 이와 같이 하나님과 주님을 직접 대면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사도 요한이 이상 중에 본 주님의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추는 것 같더라.”(계1:16-17)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육을 입으신 주님은 빛이 사라지고 마리아의 아들 시골 목수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아담, 하와도 선악과를 먹고 육신을 입은 죄인의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그래서 육의 눈이 밝아지고, 수치를 느끼고, 추위를 탔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아담, 하와의 후손들을 죄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근 6천 년 동안 애쓰고 계시며, 에덴동산을 회복하시면 인간은 아담, 하와와 같은 빛의 존재로 되돌아갑니다. 이를 위해 영의 양식이 필요한 것입니다. 아담, 하와에게는 옷이 없었습니다. 그럼 발가벗었느냐? 아닙니다. 빛이 곧 그 옷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벗어도 벗은 줄 모릅니다.
멜기세덱의 반열에 참여하는 자가 입는 빛나는 흰 세마포는 당 시에 제일 값진 옷감을 상징해 말했을 뿐, 실은 일곱 가지 무지갯 빛으로 찬란히 영체를 휘감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광채의 강도(强度)에 따라 서열(序列)을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마귀도 영체이므로 옷이 없습니다. 자주 빛이 마귀의 옷을 대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쪽과는 매우 대조적입니다.
기독교는 육보다 영을 중요시하는 종교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 람들은 영의 세계를 모르므로 육의 것을 더욱 존중합니다. 그것 이 훨씬 실감이 나기 때문입니다. 같은 하나님의 역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팡이로 홍해를 가르고, 해를 정지시키며, 소경의 눈을 뜨게 하면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그러나 영의 세계에서는 주의 형상을 입는 것이 유일한 목표입니다. 그러므로 그 형상을 갖출 수 있는 하늘의 은총이 가장 귀 한 것입니다. 혼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40 일 단식하고 산기도 100번 해 보십시오. 되는 것 같아도 되지 않 습니다. 주께서 이긴자를 내세워 크게 역사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요컨대 하나님께서는 이긴자를 통해 멜기세덱의 반열에 참 여할 수 있는 수를 단시일에 늘리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수공업을 하다가 기계를 발명하여 대량 생산을 하는 것과 흡사합니다. 그 기계의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이긴자입니다.
아담, 하와는 빛 가운데 거하다가 어둠 속에 떨어졌습니다. 이번 에는 어둠 속에 있는 그 후손들을 빛 가운데로 인도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전에는 마귀가 하나님에게 도전했는데, 이 번에는 하나님이 마귀에게 도전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유리한 고지(高地)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어려운 이 유가 여기 있습니다. 이 고지를 탈환하는 것이 곧 에덴동산의 회 복입니다.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을 유업으로 얻으리라.”(계21:6-7) 오늘날은 이 말씀이 응해지는 때 입니다. 이긴자란 말로 되는 게 아니라, 이것이 그대로 행동에 나타나야 합니다. 일찍이 선지자 이사야는 주님을 염두에 두고, “갈한 자에게 물을 준다.”(사44:3)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 ‘물’이 바로 생명수입니다. 그러나 주님 당시에는 생수를 주지 못하고,(요7:39) 이긴자가 나타나면 유업으로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이 오늘에 와서 이 땅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주께서 땅에 계실 당시에 생수를 주실 수 있었던들 구태여 사도 요한을 통해 다시 이런 약속을 했을 리가 만무합니다. 주님도 그 당시에 생수의 은혜는 주시지를 못했습니다. 피 흘리시기 전의 주님은 약속을 했을 뿐 실천은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마가의 다락방에서 불의 성령을 받은 분입니다. 즉 성령이 그의 온 몸에 불과 같은 뜨거움을 느끼게 하면서 임했습니다. 이것은 성령을 받은 증거를 남기기 위해 감각적인 느낌을 준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생수가 뭔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생수를 만드는 것은 주님이지만, 생수를 주는 것은 이긴자인데, 당시에 이긴자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즉 계시록의 주인공 인 이긴자가 생수를 유업(遺業)으로 받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독교 역사상 생수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 습니까? 모세 시대는 물론이고, 생수에 대한 예언을 한 이사야나 스가랴와 같은 선지자 시대에도 생수는 없었으며, 주님 당시나 사 도 시대에도 목마른 자에게 생명수를 값없이 마시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오직 이긴자가 나타난 시대라야 비로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앞에 인용한 본문 말씀이 이 땅에서 응해진 것을 그대로 인정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엄연한 사실로 나타나 있으니까요. 이 생수로 말미암아 썩을 것이 썩지 않고, 죽을 것이 죽지 않는 생명으로 화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생수 한 방울이 얼마나 귀한가를 잘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실로 하나님의 역사에 서 처음이자 마지막 은혜인 것입니다.
이것은 한 마디로 말해서 우리에게 빛나는 흰 세마포 옷을 ‘입 혀 주기’ 위한 영의 양식입니다. 그리하여 이 빛나는 옷을 입고 멜기세덱의 반열에 참여할 때, 하나님을 뵐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에덴동산이 회복될 때 모든 것이 다시 원점(原點)으로 돌아 가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는 알파와 오메가’(계1:8)라고 말씀했던 것입니다. 이것을 굳이 어떤 형태로 표시하자면, 시작도 끝 도 없는 원이 됩니다. 즉 사태가 360도로 전환된 것입니다. 이것이 곧 에덴동산의 회복입니다.
그리고 그 급속한 회복을 위해 주님은 이긴자를 필요로 합니다. 하나님의 소원을 풀어 드리는 것이 주님이라면 주의 소원을 풀어 드리는 것이 이긴자입니다. 주님은 하나님 대신 움직이고, 이긴자는 주님 대신 움직이는 것입니다.(계3:21) 이것이 실제로 되지 않으면 가짜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한 역사가 사라져갈 때 다른 종을 내세워 복구할 것을 당부하시겠습니까? 한 번밖에 없는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이 역사가 지나가면 여러분은 주의 종이 입김을 부는 쉭쉭 소리도 다시는 듣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역사의 귀중함을 절실히 느낍니까?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초청해 놓고도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귀한 것을 귀한 줄 모르는 것처럼 딱한 일은 없습니다. 주님도 당신을 믿어주지 않는 사람에게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하물며 이영수야 말해 뭘 하겠습니까?
문제는 그 속에서 하나님이 역사하느냐, 역사하지 않느냐의 여부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성경이 사실을 입증할 때 여러분은 믿고 따라야 합니다. 이 역사에 한번 발을 들여놓은 것을 우연한 일로 간단히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