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정보
DATE. 2024.01.19본문
Part 04. 예루살렘의 별
Chapter 30. 시대와 축복
하나님께서 시대마다 당신의 백성들을 성령으로 치리하시지만, 거기에는 경중(輕重)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독교의 역사를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가 지닌 귀중성에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비중에 따라 크고 작은 당신의 사람을 보내어 역사하셨으며, 또 오늘날도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차지하는 시대의 비중은 주께 서 정하시는 멜기세덱의 반열에 상당한 영향을 주게 됩니다. 인간 의 육을 다스리는 성령이 역사하는 구약 시대와 인간의 혼을 다스리는 성령이 역사하는 신약 시대는 하나님의 섭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다르므로, 하나님께 똑같은 충성을 했을 경우에 전자보다 후자의 성도가 서열에서 앞서게 되는 것입니다.(계20:4 참조)
그리고 육을 다스리는 성령이 역사한 같은 구약 시대에 있어서 도 모세 시대의 사람과 이사야 시대의 사람, 아모스 시대의 사람 은 설사 하나님에 대한 충성도가 같아도 그 시대의 비중에 따라 서열에 차이가 생기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혼을 다스리는 신약 시대에 있어서도 불의 성령이 역사하는 한 증거 시대에 하 나님께 충성을 다한 사람은 불, 생수, 이슬의 성령이 역사하는 세 증거 시대에 하나님께 똑같이 충성을 다한 사람보다 서열이 자연히 처지게 마련입니다.
같은 하나님을 섬겨도 시대를 잘 타고나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고생을 많이 해도 구원 얻기 어려운 시대가 있고, 고생을 덜 해도 구원 받기 쉬운 시대 가 있는 것입니다.
세상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는 한 시간 일해서 1,000원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10시간 일해야 1,000원 받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인간이 지닌 능력에 따라 이런 차이가 생기게 되지만, 하나님의 역사에서는 그 섭리가 지닌 비중에 따라 차 이가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하나님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같은 시대의 백성에게 이런 차별 대우를 한다면 모를까, 시대와 장소와 여건이 달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처사이므로 불공평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대로 뜻이 따로 계신 것입니다.
또 설사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우리에게 불공평하게 보이더라도, 그 지음을 받은 질그릇인 우리로 서는 왈가왈부할 처지가 못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리한 시대 에 태어나 구원을 얻지 못했다면 하나의 불가항력으로 돌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람을 세워 역사하실 때에는 으레 어떤 조건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이것은 주님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즉 주님도 멜기세덱의 첫 열매가 되어 대제사장의 위치를 차지하려면 십자가를 져야만 했던 것입니다.(히5:8-10)
그리고 주님은 당신을 따르는 백성들에게 영생을 주되, 하나의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아비나 어미 또는 아들이나 딸’을 당 신보다 더 사랑하지 말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제시한 조건은 무엇이었겠습니까? 그것은 한 마디로 요약하면, 당신의 명령에 순종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즉 모세가 당신의 명령에 순종하고, 모세를 따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명령에 순종하면 가나안 복지로 인도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와 그 백성들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여호수아와 갈렙 이외에는 그 땅을 밟지 못했습니다.
이 경우에 ‘이러저러해서 순종 못했습니다.’ 하고 이유를 내세울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결과를 중요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결과적으로 불순종했다면 하나님과의 언약을 일방적으로 저버린 데 대해 응분의 책벌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바울의 경우를 살펴봅시다. 주님께서 바울에게 제시 한 조건은 할례를 폐지시키고 하늘의 새로운 법도를 선포하여 이 방인에게까지 전도의 문호를 넓히면 하늘나라에서 영광의 면류관을 차지하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굳게 믿고 주를 위해 기꺼이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는 부르짖기를,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은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 나를 위하여 의(義)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다.”(딤후 4:7-8)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지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그 나라에서 상이 크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천국에 가는 길이 쉬운 줄 알고 그렇게 가르치는 교역자들이 많지만, 그것은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르는 소치입니다. 즉 하나님의 은총만 알고 마귀의 역사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긴자의 경우는 어떨까요? 이긴자에게도 요구 조건이 있습니다. 즉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릴 권세를 준다.”(계2:26)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긴자가 만국을 다스릴 권세를 맡으려면 주의 뜻을 이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 이 주 의 뜻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마귀를 발등상 시킬 수 있는 하늘군병의 수를 채우는 것입니다.(계6:11 참조)
그러므로 이긴자도 이 주의 뜻을 이루지 못하면 겨우 자기 하나 구원을 얻을 뿐, 약속된 영광의 자리에 이르지는 못합니다. 그리고 이 경우에 이긴자를 따르던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은 헛수고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에는 이런 냉엄한 일면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잘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을 무조건 자비하신 줄 알고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베푼 은혜의 보상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보상을 해드려야 합니다. 구원은 거저 되는 것이 아니라, 응분의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입니다.
믿으면 되려니 하고 안이하게 생각한 나머지 믿음을 가꾸는 일을 등한히 하면 게으른 종이라는 책망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그런 신앙 자세를 갖는 사람은 구원을 얻으려니 하고 위안은 받겠지만, 하나님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렇게 쉽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면 천국은 벌써 차고 넘쳤을 것입니다.